▲<악마와의 토크쇼>영화의 한 장면
찬란, (주)에이유앤씨
<악마와의 토크쇼>의 생방송 형식은 1992년 BBC에서 방송한 핼러윈 스페셜 <고스트 워치>와 닮았다. 허구를 사실인 양 보이게끔 제작한 장르를 일컫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모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평범한 가정집에 일어나는 심령 현상을 보여준 <고스트 워치>는 방영 후 영국에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흥미롭게도 캐머런 케언즈, 클린 케언즈 형제 감독은 대본을 쓸 때까지 <고스트 워치>를 몰랐다고 한다. 뒤늦게 <고스트 워치>를 본 두 감독은 "멋진 영화"라고 평가하며 "<악마와의 토크쇼>로 인해 <고스트 워치>가 재발견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규칙을 엄격하게 따르진 않는다. <고스트 워치>가 철저히 생방송 영상만을 보여주었던 것과 달리 <악마와의 토크쇼>는 생방송에 해당하는 심야 토크쇼 영상(컬러)뿐만 아니라 극 중 광고 시간엔 세트 뒤편에서 잭이 물을 마시거나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담은 영상(흑백)을 보여주어 TV 송출 화면만을 보여줄 거라 예상한 관객의 장르적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버린다. 기실 파운드 푸티지 장르보다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느낌이다.
세트 안과 바깥을 비추는, 외적으론 자신감이 넘치고 매력적인 잭이 내적으론 불안과 슬픔에 시달리는 모습을 잡은 <악마와의 토크쇼>의 시각은 텔레비전 혹은 시청자의 이중적인 성격과 맥을 같이 한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베트남전, 석유 위기, 워터게이트, 맨슨 패밀리, 사탄주의의 증가 등 그 무렵의 다양한 풍경을 몽타주로 보여주며 미국의 1970년대가 폭력이 난무한 시대이자 불신의 시기였으며 심령술사, 점쟁이, 퇴마사 등 오컬트의 부흥기였다고 설명한다. 1970년대를 추억과 낭만이 가득한 시각으로 보길 거부하겠다는 선언이다.
시청률을 위해 현실을 자극적으로 포장하여 방송한 텔레비전은 미국 대중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베트남전의 폭력이나 맨슨 패밀리의 공포를 생생히 목격했다. 한편으로는 심야 토크쇼 등 오락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일상의 문제들을 애써 외면했다.
미디어의 이중적인 속성이나 대중의 이중적인 태도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결국 극 중에서 소환한 '악마'는 시청률에 목맨 나머지 어떤 오락거리라도 만들어내려는 미디어의 광기이자 볼거리에 미쳐있는 대중의 탐욕을 의미한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악마와의 토크쇼>는 미국의 1970년대를 비판했던 <네트워크>(1976), <코미디의 왕>(1982), <비디오드롬>(1983)을 잇는 매스미디어 비판 영화인 셈이다.
▲<악마와의 토크쇼>영화의 한 장면찬란, (주)에이유앤씨
주연을 맡은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의 탁월한 연기는 영화의 다양한 요소를 하나로 묶어내는 힘이다. <다크 나이트>(2008)로 데뷔한 이후 <프리즈너스>(2013), <앤트맨>(2015),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19), <듄>(2021), <오펜하이머>(2023), <부기맨>(2023)에 출연하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드니 빌뇌브 감독 등 세계적인 거장 감독이 선택한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1970년대 토크쇼 진행자를 연기하기 위해 그 당시에 활발히 활동했던 자니 카슨, 데이비드 레터맨의 토크쇼를 시청하며 그들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과 언어의 리듬감에 대해 연구했다는 후문이다.
"내 입을 통해서 당시의 토크쇼를 시청했던 사람들에게 진정성이 전달될 수 있도록 많은 연습을 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다소 정형화된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개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시도가 돋보인다. 토크쇼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가진 사실적인 화법에 오컬트의 신비로운 공포를 이식하여 이전에 본 호러 영화와는 다른 결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전한다. "<블레어 윗치> 개봉 25년 후 다시 시작된 공포의 혁신", "1970년대 쇼 비즈니스와 <엑소시스트>식 악마적 행위를 혼합한 완전 신선/독특한 결과물"이란 해외 매체의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호러 장르의 팬이라면 꼭 보아야 마땅하다. 독창적인 영화가 점점 사라지는 작금의 극장가에서 아주 신선한 영화를 만났을 때 느끼는 짜릿한 충격을 경험할 좋은 기회다. 시체스국제영화제 '오피셜 판타스틱' 각본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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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