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LG 윤원상
KBL
18경기에 10분 29초 출전, 평균 2.6득점, 2023-2024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남긴 윤원상(창원 LG)의 성적이다. 누가 봐도 팀내 비중이 미미한 전형적인 백업 선수의 기록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즌의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순간에 터진 무명 선수의 기적같은 '만화샷' 한 방이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며 봄농구의 판도까지 뒤흔들었다.
20일 경기도 수원 kt아레나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PO) 3차전에서 창원 LG가 종료 직전 윤원상의 극적인 버저비터 위닝샷으로 수원 KT에 76대 73의 짜릿한 대역전승을 거뒀다. LG는 시리즈 전적 2승 1패를 기록하며 대망의 챔피언 결정전 진출까지 단 1승만을 남겼다.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하며 4강에 직행한 LG는, 6강 플레이오프를 승리하고 올라온 KT를 상대로 2차전까지 1승 1패로 팽팽하게 맞섰다. 5전 3선승제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1승1패로 맞선 경우는 총 21회가 있었기, 이중 19번이나 3차전을 승리한 팀이 기세를 타고 챔프전까지 오른 바 있다. 치열한 접전 끝에 3차전에서 LG가 승리를 따내며 90.5%의 챔프전 진출 확률을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플레이오프에서 LG의 최대 고민은 공격력이었다. LG는 정규리그에서 리그 최소실점(76.9실점)의 강력한 수비력을 자랑했지만, 득점은 84.5점으로 리그 5위에 그쳤다. KT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3경기 연속으로 70점대- 3할대 야투율에 그치며 극심한 난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국내 선수들의 부진이 심각하다. 지난 2차전에서는 아셈 마레이를 제외하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선수가 전무할만큼 극심한 부진을 보이며 KT에 20점차(63-83)로 대패하고 시리즈 흐름을 내줬다.
3차전에서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마레이가 홀로 25점 23리바운드의 괴력을 발휘하며 분전했지만, 양홍석(5점), 이재도(9점) 등이 한 자릿수 득점에 묶이며 고전했다. 패리스 배스(21점 11리바운드)와 허훈(12점), 문성곤(9점, 3점슛 3개)를 앞세운 KT와 저득점 경기 속에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접전을 펼쳤다. 4쿼터 한때 LG는 KT에 8점차까지 끌려가며 패색이짙었다.
그런데 LG에서 뜻밖의 선수가 '신 스틸러'로 나서면서 분위기를 바꿨다. 바로 지난 1, 2차전에서 12인 출전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던 윤원상이었다.
3차전에서 드디어 라인업에 포함되며 올시즌 첫 봄농구 무대를 밟게 된 윤원상은 18분 24초를 출전하여 팀 내 최다인 3개의 3점슛 포함 11득점의 깜짝 활약을 펼쳤다. 득점은 이날 팀 내에서 마레이 다음으로 높았다.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순간에도 코트에는 윤원상이 있었다. 4쿼터 막판 73-73으로 맞선 상황에서 LG가 마지막 공격 기회를 잡았다. KT의 단단한 수비에 막혀 LG가 좀처럼 슛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승부는 그대로 연장으로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
다급하게 공을 돌리던 상황에서 마지막 패스가 돌아온 곳은 코너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원상이었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연결된 공을 이어받은 윤원상은 수비를 한번 제치고 사이드에서 무빙 3점슛을 던졌다. 그리고 공은 기적처럼 종료 버저와 동시에 그대로 림을 갈랐다.
윤원상은 버저비터가 적중하자 동료들과 함께 코트를 질주하며 포효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공은 0.1초 찰나의 차이로 버저가 울리기전에 윤원상의 손을 떠난 것이 확인됐다. 윤원상의 슛이 그대로 인정되면서 LG는 천금같은 승리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윤원상에게는 지난 1년간의 한을 모두 풀어낼만한 '인생샷'이기도 했다. 윤원상은 무룡고와 단국대를 졸업하고 202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 LG의 유니폼을 입었다. 꾸준히 경험을 쌓은 윤원상은 3년 차였던 지난 2022-23시즌 최초로 54게임 전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5분을 소화하며 평균 6.4점, 3점슛 1.3개로 개인 커리어 하이기록과 함께 LG의 주축 멤버로 성장했다.
하지만 2023-2024시즌에 접어들며 윤원상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했다. LG는 이재도-이관희-구탕 등 가드 자원이 풍부한데다 포지션과 역할이 거의 겹치는 '신인왕' 유기상까지 입단하면서 3&D 전문 자원으로서 윤원상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프로 데뷔 이후 최소 경기 출전에 그친 윤원상은 결국 올시즌의 대부분을 D리그에서 보내야했다.이날 플레이오프 3차전 출전은 지난 3월 5일 정규리그 대구 한국가스공사전 이후 약 한 달 반 만의 복귀전이기도 했다. 조상현 LG 감독은 성실했던 윤원상에게 그동안 출전 기회를 많이 주지못한 데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원상은 자신에게 돌아온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랜만의 출전이라 경기감각이 완전하지않았고 중요한 플레이오프 단기전이라 부담이 클 법한 상황이었음에도, 윤원상은 자신이 팀에서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윤원상은 자신의 자리를 꿰찬 포지션 경쟁자 유기상과 함께 공존하면서도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4쿼터 대역전극을 주도했다. 특히 버저비터 직전에는 아쉬운 수비 실수로 실점의 빌미를 내줬기에 심리적으로 위축될만도 했지만, 전혀 흔들림없이 곧바로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슛을 책임지는 강심장까지 보여줬다.
경기 후 윤원상은 "농구 인생에서 첫 위닝샷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행복하다. 중요한 경기에서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LG로서도 모처럼 단기전의 '새가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만한 경기였다. LG는 전통적으로 봄농구에 무척 약했다. 지난 시즌에도 2위를 차지했으나 3위팀 SK에게 3연패로 무기력하게 업셋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올시즌도 KT에 3차전을 내줬다면 벼랑 끝에 몰리며 지난 시즌의 재탕이 될 뻔 했으나, 백업 멤버 윤원상의 극적인 한방 덕분에 기사회생하면서 10년만의 챔프전 진출을 향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의 활약으로 윤원상은 자신이 중용되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증명했다.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도 윤원상의 플레이를 더 자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는 격언을 행동으로 보여준 윤원상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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