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컷
영화사 진진
영화는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이 닿은 전국을 4계절에 따라 훑는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에 따라 다양한 옷을 바꿔 있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피어난다. '겨울에 아름다워야 봄도 아름답다'는 말마따나 겨울에도 빛나는 정원을 꾸린다. 꽃과 잎사귀와 열매가 없어 볼품 없어질지라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스크린에 수놓는다.
양평 본가 정원에 심어진 한국의 다양한 야생식물이 이를 증명한다. "아이 예뻐!" 새벽같이 일어나 1년 내내 정원을 돌봐왔다. 누가 조경사 아니랄까봐 손톱에는 늘 흙이 끼어 까맣다. 꽃과 나무, 풀에게 말을 걸어주고 인사를 건넨다. 사람 보다 자연 속에 있을 때 더욱 행복해 보이는 까닭이다. 길가에서 주운 돌이 정원 설계도의 문진이 되고, 파스텔톤의 색연필로 도면을 그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면서도 사랑하는 태도다.
여든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전국을 호미 하나 들고 돌아다니는 강철 체력의 근원은 국토와 자연, 사람의 조화를 생각하는 마음 하나이다. 자연만큼 쉽고 친절한 교과서는 없다며, 아직도 노트를 만들어 자연을 관찰하고 공부하는 모범생이다. 자연이 선사하는 치유와 안정을 믿는 그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온전히 물려주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대표적인 장소가 2002년 만들어진 선유도 공원이다. 선유도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배경이 된 한강의 유서 깊은 섬이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서남부지역의 수돗물 정수장으로 쓰였다. 정수장이 이전하게 되자 시민들에게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했는데 시설을 그대로 살려 큰 주목을 받았다. 선유도 공원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어떤가. 원래 주차장이었던 공간에 병원 건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울창한 숲을 조성했다. 아픈 사람이 마음껏 숲에 숨어 울어도 되고, 아픈 가족을 돌보며 힘들고 지친 가족이 위로받을 수 있고, 시간과 싸우는 의료진이 쉴 수 있는 마법의 공간이다. 왕성한 생명력을 뽐내는 식물 개체를 주로 심어 회복의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의도했다.
조경은 혼자서 안돼, 협력과 조화가 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