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특급 신인 황준서가 3월 31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kt와 한화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나서 역투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2000년대 후반 이후 긴 암흑기
한화는 2000년대 후반 이후 긴 암흑기를 보내왔다. 2008년부터 최근 16시즌 동안 가을야구에 나간 것은 딱 1번(2018년) 뿐이고, 꼴찌만 무려 8번이나 기록했다. 최근 5년간 팀순위는 전체 10개 구단 중 '9, 10, 10, 10, 9위'로 내내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도 이 정도로 오랜 기간 꾸준히 못한 팀도 전례가 없을 정도였다.
우승만 놓고보면 1986년 전신인 빙그레로 창단한 이래 통산 38시즌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은 1999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벌써 25년전이다.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도 류현진의 데뷔시즌이던 2006년으로 벌써 18년 전의 이야기였다. '보살'로 불리우던 한화 팬들은 지난 시즌 29년 만에 정상을 탈환하는데 성공한 LG 트윈스의 우승을 바라보며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한화의 위상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지난 시즌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성장한 노시환과 문동주를 필두로, 안치홍, 채은성, 펠릭스 페냐, 리카르도 산체스, 요나단 페라자, 문현빈, 김강민 등을 차곡차곡 끌어모으며 신구조화를 바탕으로 전력이 크게 향상됐다. 여기에 11년간의 메이저리그 경력을 마감하고 KBO리그로 돌아온 원조 에이스 류현진의 복귀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전문가들은 올시즌 한화가 모처럼 5강 후보로 거론될만한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한화의 전력은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한화는 팀 평균자책점 2위(3.17), 팀 OPS(출루율+장타율) 1위(.875)를 기록했고 54득점 29실점으로 득실점 마진 +26로 타격과 마운드에서 모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 시즌 팀 OPS 꼴찌(0.674) 팀 평균자책점 8위(4.39)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환골탈태한 모습이다. 심지어 상대는 지난해 1~3위에 오른 팀들이었고 이중 5경기가 원정이었음에도 7연승 행진을 달리며 아직까지 루징시리즈가 없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선발 야구'의 힘이다. 한화가 현재까지 거둔 7승 중 6승을 선발승으로 따냈다. 펠릭스 페냐(2승), 김민우, 산체스, 문동주, 황준서(이상 1승)까지 5명의 투수가 5이닝 이상을 책임지며 선발승을 맛봤다.
공교롭게도 하필 한화 선발진에서 유일하게 승리가 없는 투수는 에이스 류현진 뿐이다. 류현진은 12년 만의 KBO리그 복귀전이자 LG와의 시즌 첫 개막전에서 3.2이닝 5실점(2자책점)으로 부진하며 지금까지 한화의 유일한 퀵후크와 패전투수에 이름을 올리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두 번째 등판인 29일 KT와의 홈 개막전에서는, 비록 노디시전이 되었지만 탈삼진 9개를 뽑내며 6이닝 2실점으로 복귀 후 첫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는 호투로 팀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전문가들도 승운만 따르지 않았을뿐 류현진의 구위나 경기운영 능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기에 첫 선발승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평가다.
선발만이 아니라 불펜도 막강하다. 한화 구원진은 팀 홀드 3위(5개), 평균자책점 3위(4.03)를 기록하고 있다. 한화 불펜진의 핵심은 주현상과 한승혁은 나란히 올시즌 등판한 5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든든하게 뒷문을 틀어막아주고 있다.
타선에서는 새 외국인 타자 페라자의 활약이 돋보인다. 몇 년간 외국인 타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한화는 페라자가 올 시즌 8경기에서 벌써 타율 .517에 4홈런, 7타점의 맹타를 휘두르면서 순조롭게 연착륙하고 있다. 벌써부터 한화 역사상 최고의 외인타자로 꼽히는 '제이 데이비스의 재림'이 거론될만큼 페라자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페라자가 테이블세터인 2번 타자임에도 사실상 중심타선같은 역할을 수행해주면서 한화 상위타선의 파괴력이 더욱 배가됐다. 페라자, 채은성, 노시환, 안치홍으로 이어지는 한화의 '2024년판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어디에서 한 방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새로운 얼굴들의 약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얼굴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지난해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황준서는 3월 31일 KT전에서 당초 선발등판이 유력했던 김민우의 결장으로 대체선발의 기회를 잡았다. 예상보다 이른 프로야구 데뷔전이었지만 황준서는 5이닝 동안 3안타 5탈삼진 1실점이라는 기대 이상의 호투를 펼치며 프로 첫 승을 신고했다. 한화 고졸 신인이 선발 데뷔전에서 승리힌 것은 2006년 류현진에 이어 두 번째였다.
또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외야수 임종찬이 예상을 뒤엎고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한 데 이어, 29일 KT전에서는 끝내기 결승 2루타를 기록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영웅이 됐다. 내야수 이도윤, 외야수 김태연 등도 출전기회가 주어지자마자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렸다. 이처럼 기존의 주전이나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어도 이를 대체할 자원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화의 두터워진 선수층을 증명한다.
한화는 내친김에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한화는 이번주 롯데(홈)-키움(원정)과 6연전을 치른다. 두 팀 모두 올시즌 하위권 전력으로 분류되는 팀들이며 로테이션상 이번주 한화전에는 주력 1,2선발이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한화가 2일 롯데전에서 승리하면 지난 시즌 세운 8연승 기록과 타이를 이룬다. 또한 롯데와의 3연전마저 모두 싹쓸이한다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1999년 수립한 구단 역사상 최다인 10연승 기록도 재현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테이블세터진에 비하여 아직은 조금 떨어지는 중심타선의 타격감, 3번째 등판이 유력한 류현진의 시즌 첫 승 달성 여부가 연승행진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만년 꼴찌 취급을 받던 한화 이글스의 선전은 KBO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한화 팬들은 더이상 '졌잘싸(졌지만 잘싸웠다)'로 위안을 삼는 대신, 모처럼 '이기는 재미'를 되찾아가고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온 한화의 봄날은 정말 현실로 찾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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