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요즘 육아-금쪽같은 내 새끼>의 한 장면
채널A
하지만 오은영의 생각은 달랐다. 사춘기 자녀에게 무언가 제안했을 때 따라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요구적인 엄마'에 대해 언급했다. 대답이 시원치 않다면 다음에 들으면 될 일인데, 엄마의 기준에 맞는 완벽한 답을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채근하는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금쪽이의 마음은 조금만 건들려도 터질듯한 상태였고, 엄마에게 날이 서 있었다.
금쪽이는 "엄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라고 하소연하더니, 엄마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간섭하고 괴롭혔다. 마치 엄마가 자신을 통제하려고 했던 행동을 똑같이 재현하는 듯했다. 오은영은 금쪽이가 자신이 힘들었던 상황을 비슷하게 연출해 마음의 응어리를 대갚음하려 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엄마를 향한 복수심이 이렇게 커진 원인은 무엇일까.
다음 날, 금쪽이는 축구를 하러 나가겠다며 집을 나섰다. 엄마는 무릎을 다쳐 안 된다며 만류했다. 현관에서부터 실랑이가 벌어져 엘리베이터 앞까지 이어졌다. 금쪽이는 엄마의 집요한 반대에 "그만 말해"라며 입을 꼬집었다. 엄마도 지지 않고 격한 제스처를 써가며 금쪽이를 제지했다. 갈등은 점차 몸싸움으로 번졌다. 금쪽이는 왜 몸이 아픈데도 억지를 부리며 나가려 한 걸까.
얼마 후, 가족들은 아빠 생일을 맞아 외식을 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이동했다. 금쪽이는 기분이 좋지 않아 혼자 있겠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또, 엄마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며 복수 중이라고 말했고, 게임 무제한을 주장하며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엄마는 지친 마음에 금쪽이 앞에서 보란 듯 신세 한탄을 하더니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금쪽이는 밤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고 버텼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이 장면을 보며 함께 한숨을 내쉬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은영의 반응은 역시 남달랐다. 그는 금쪽이가 보인 반항이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라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솔루션 전까지만 해도 이상 증상을 동원해 힘듦을 표현했던 금쪽이가 더 이상 환청과 망상을 호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기 주관적인 주장을 펼치는 건 희망적인 변화였다.
"원래 청소년 자녀는 엄마 뜻대로 안 돼요." (오은영)
이럴 때는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 '마음의 탈출구'를 만들어 줘야 한다. 우선, 축구를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릎이 아픈 '널 위해서'라고 설명해야 한다. 물론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가 그 단계에서 말을 들를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우기며 축구를 하러 가겠다고 하면 "나갔다가 아프면 '네가' 잘 생각해서 들어와"라고 말해야 한다. 판단과 결정의 주체를 자녀의 몫으로 남겨주는 것이다.
문제는 엄마가 사소한 결정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그렇게 해야 하는 기질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럴수록 금쪽이는 정면으로 반박하고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청소년 자녀가 부모의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아이와의 갈등을 잠재울 수 있다. 그런데 엄마는 답답함을 토로하는 걸 넘어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통제적 성향이 강한 탓이었다.
또, 오은영은 불쌍한 엄마를 자처하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노력하는 엄마를 불쌍한 위치에 두면서 금쪽이가 못된 아이가 되어버렸다며, 아이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건 매우 부정적인 방식이니 고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엄마와 금쪽이 형과의 갈등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형은 자기감정이 중요한 기질이라 자신의 기분을 직설적으로 말했는데, 엄마는 이를 적절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청소년기의 심리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엄마는 첫째와의 소통 문제처럼 사춘기에 접어든 금쪽이와 같은 문제를 겪기 시작한 것이다. 통제적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부모와 감정 소통을 많이 배우지 못한 자녀들은 감정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마음에 쌓인 불편한 감정은 우울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실제로 소통이 안 되자 형은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엄마의 어릴 적 상처를 치유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