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도시의 뒷골목 풍경, 점점 닮아간다
 
세계 주요국가 대도시들은 국경을 넘어 점점 닮은꼴이 되어간다. 적당히 세계 공통의 편의성과 공공서비스가 통용되면서 일정하게 해당 국가/도시만의 특색이 묻어나도록 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공통된 흐름이라 하겠다. 이국적인 풍광과 휴양 위주가 아니라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연계성이 좋은 대도시 여행은 많은 이들에게 '로망'이 되어간다.
 
하지만 굳이 '오버투어리즘'이란 신조어를 대입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일상을 살고픈 이들에게 외부 방문객은 자부심인 동시에 낯설고 부담스러운 존재들이기도 하다. 일시적으로 다녀가는 관광객, 혹은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가는 유학생이나 전문직은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된 1세계 권 국가의 대도시로 스며드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 미등록 이주노동자나 난민은 대도시의 단면 중 하나가 되어간다. 비단 합법의 경계선에 속한 이들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저개발국,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들은 도시기능 유지에 기여하면서도 이등/삼등 시민 취급을 당한다. 그런 이들이 뒤섞여 도시 내 구도심 혹은 외곽 변두리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게 마련이다.
 
해당 공간들은 부정적으로 언급할 때는 '슬럼', 순화시키면 '다문화타운' 등으로 불리곤 한다. 흔히 우리는 도입하고 싶은 부분만 들여 오고 꺼리는 건 보기 싫어하지만 이는 애초 불가능한 소망이다. 서울에서 가리봉동이나 대림동의 (몇몇 영화에서 '범죄도시'로 취급되는) 풍경과 마라탕이나 양꼬치 맛집은 떼어낼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태원, 홍대권이 '핫 플레이스'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와 혼란은 함께 들어온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관찰하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현재와 근미래를 일정부분 유추할 수 있기도 하다.
 
프랑스 수도 파리는 세계의 대도시 중에서도 상징적인 공간으로 치자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명소다. 많은 이들이 파리 여행을 꿈꾼다. 그렇지 않아도 '대 여행시대'를 맞이한 한국에서 해마다 수많은 이들이 공들여 파리를 방문한다. 물론 여행의 기억은 동일하지 않다. 어떤 이는 '파리지앵'의 꿈을 이루고, 누군가는 불유쾌한 경우를 당하거나 기대와 다르다며 실망하게 된다.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쥐 떼가 득시글거리는 등 거리가 지저분하다거나, 한국의 친절한 공공서비스에 익숙했다 느려터진 일 처리에 진저리를 내거나, 소매치기와 좀도둑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는 인터넷 검색하면 잔뜩 볼 수 있다. 그중 유명 관광명소 혹은 구도심 일대에서 이주민 출신들에게 봉변당했다는 사연은 흔하디흔하다. 작은 사고라면 다 경험치라 치부하고 추억으로 삼겠지만 범죄에 노출되는 건 다른 문제다.
 
파리를 무대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공간과 상황을 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시민들의 의견도 나눠진다. 비합법 이민자나 난민들이 치안을 어지럽히고 도시 이미지에 악영향을 준다는 소리는 이제 세계 어디에서나 목격된다. 특히 관광 가이드북에도 언급되듯이 파리 시가지 내에서도 저녁 시간 이후엔 출입을 삼가라거나 대낮에도 혼자 다니지 말라는 경고가 표시된 10구나 18구는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된 지 오래다. <썬 오브 람세스> 역시 그런 계보를 잇는 독특한 변주의 작업일 테다.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파고드는 '람세스 식 영업'
 
"썬 오브 람세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썬 오브 람세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뷔트몽마르트르', 파리를 구성하는 행정구역 중 '18구'의 어지로운 풍경이 가득 펼쳐진다. 서민 거주지역에 속한데다 유명 관광지와 인접해 있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 가득히 넘쳐나는 동네다. 어지럽게 호객행위를 일삼거나 수상해 보이는 무리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그야말로 혼란 자체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 와중에 허름한 다세대 건물 속 어느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파리의 옥탑방 아파트 같은 비좁은 공간 속으로 안내된 사람들은 차례로 오랜 시간 대기하다 밀실로 안내된다. 방 안은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신비감이 감돌기까지 한다. 그곳에서 영매 '람세스'가 가까운 이들을 잃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다.
 
람세스는 조수들의 안내로 자신과 일대일 상담차 방문한 이들이 보여주는 사진을 확인한 후 사람들을 위로하고 영혼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대가는 100유로 가격으로 지불된다. 상처 입은 이들은 영매가 전해주는 죽은 이들의 전갈에 매달리며 눈물을 흘리거나 감격하곤 한다. 대기실에서 4-5시간씩 하염없이 기다리는 걸 기꺼이 감수한다. 그만큼 이곳을 찾는 이가 많고 영업은 잘된다. 하지만 과연 람세스가 그만큼 영험한 영매가 맞을까?
 
대기실에서 상담실로 이동할 때 람세스의 조수는 영혼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자성'을 띤 소지품을 떼어내야 한다며 귀중품과 휴대전화 등을 보관하게 만든다. 귀중품은 고객의 형편을 파악하기 위해, 휴대전화는 몰래 내부의 정보를 들여다본 뒤 조력자를 통해 원래는 파악하기 불가능한 신상을 알기 위해서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휴대전화에 내밀한 정보를 가득 채워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람세스는 고객이 가져온 사진과 휴대전화 내 관련 정보를 대조해서 시나리오를 준비한 다음에 비로소 상담에 임한다. 힘든 일을 겪은 이들에게 선문답하듯 달콤한 위로와 함께 (죽은 자가 확인해줄 수 없는 노릇이니) 두루뭉술한 조언을 전달하니 책임질 일도 안 생기고 영험하다는 소문만 파다하다. 조력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하고도 수익은 짭짤해 보인다.
 
하지만 어느 날 람세스의 오래된 아파트에 침입한 소년 강도가 칼을 들이대고 패물을 강탈해 간다. 기분 나쁘고 손해를 봤지만 이 거리에서 살아가려면 감수할 몫이다. 문제는 그 소년의 무리인 모로코 계 청소년 무리가 거듭 들이닥치면서 커진다. 그 범인이 무리의 돈을 들고 튀는 바람에 람세스가 행방을 알 거라며 쳐들어온 것이다. 영험한 점쟁이이니 찾아내라는 협박은 덤이다. 10대 무리에게 '삥'을 뜯기는 신세가 된 셈이다. 람세스가 치안 괜찮고 평범한 이들이 생활하는 동네에 산다면 경비원과 경찰에게 의지하면 될 테지만 이 동네 룰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범인 찾아서 귀찮고 위태로운 상황을 해결하려는 람세스의 노력은 하지만 점점 더 그를 위태로운 지경으로 끌어들인다.
 
빈민가의 숨겨진 질서와 풍속이 넘쳐나는 요지경
 
"썬 오브 람세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썬 오브 람세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썬 오브 람세스>는 파리18구의 '와일드'한 일상을 독창적으로 그려내는 영화다. 이 지역의 독특한 풍광을 주변 배경으로 삼을 때 고려하는 주요 소재들, 이민자와 난민, 범죄, 다문화, 빈곤, 공권력의 방치 혹은 억압 같은 요소가 동일하게 동원되지만 이를 갖고 풀어내는 방식은 스릴러 장르의 문법 + 판타지 분위기를 풍기는 미스터리의 조합으로 독자적인 개성을 선보인다. 전자인 범죄 스릴러 형태는 근래 프랑스 장르물에서 쉽게 목격 가능한 구성이지만 후자의 몽환적 판타지 요소와 결합되면서 모호한 심리극으로 변환된다. 일단 색다른 퓨전의 맛이다.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화면으로 간접 체험하기에 안전모드인) 18구의 이국적 풍경이다. 해당 지역은 이중적 특징을 지니는데 (영화 속에선 언급되지 않지만) 이 구역 주변에는 저 유명한 몽마르트르가 있다. 당연히 관광객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경로다. 하지만 이곳은 파리에서도 손꼽히는 이주민 거주구역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도 좁은 구역을 세분화해 여러 커뮤니티와 조직이 경합하며 사건사고가 숨 쉴 틈 없이 터지는 곳이다. 경찰들의 표정엔 피로감이 묻어나고 짜증과 체념이 뒤섞여 있다. 아무리 단속하고 잡아가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자조감이 가득하다. 유치장엔 범죄자가 가득 들어차 있다.
 
그런 극악의 치안인 동네에서 주인공 람세스는 사실상 사기극에 가까운 영업으로 생계를 영위한다. 돈벌이가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떼돈 버는 것도 아니다. 먹고 살 정도에 연로한 아버지 생활비 가끔 보탤 정도다. 그런 정도라면 돈 좀 모아 좀 더 평범한 동네로 이주하면 될 것 아니냐 싶지만 람세스의 돈벌이 수단은 이 동네의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게 의지해야 하므로 떠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동네 룰 지켜가면서 이웃들과 충돌하지 않고 몸조심해야 되는데 람세스는 '자유경쟁' 체제 신봉자인지 그런 조화에 무관심하다. 이 때문에 지역의 동종 경쟁자들과 사이가 불편하다.
 
사이비 영매, '점쟁이'라 불리는 이들 사이에도 영역 분쟁이 존재한다. 점쟁이들만의 경우는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파리로 몰려든 가난한 이민자들로 가득한 18구는 얼핏 무정부주의적 혼란으로 충만해 보이지만 오히려 세분화된 질서로 간신히 유지되는 공간이다. 초반에 람세스의 자유영업으로 손해를 본다고 여긴 경쟁자들이 소환한 협상 자리에서 그런 집단별 구분이 대번에 확인된다. 협상을 주관하는 원로는 람세스의 부친은 질서를 존중하며 존경을 받았는데 아들은 동업자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며 힐책한다. 이 동네에서 점을 보려는 고객은 삼국지처럼 구분된 영역으로 분산되어야 한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출신 고객은 해당국 출신들에게, 인도아대륙 출신은 역시 그 동네 출신, 그 외 중동과 유럽 고객은 람세스에게 배당되는 체제다. 하지만 람세스는 능력껏 벌고 고객이 모이는데 뭐가 문제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이 남자가 사는 법,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필사적 변화
 
"썬 오브 람세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썬 오브 람세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그럼에도 람세스는 자신의 조력자나 도움을 청해야 할 이들에겐 일정한 분배를 통해 편의를 도모한다. 우정을 나누는 이는 없지만 오직 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람세스가 바라보는 18구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한 '정글'과 다르지 않다. 오직 돈만이 지고의 가치이고 나머지 친분이나 전통 같은 건 의미가 없다는 게 '신자유주의' 점쟁이 람세스의 사상이라면 사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의 신념은 거리의 질서를 교란하는 모로코 청소년 갱단에 의해 균열을 맞는다. 낡은 다세대 건물의 창문과 옥상으로 종횡무진 활보하는 이들은 람세스가 아무리 문단속을 해도 투명인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그의 일상을 어지럽힌다. 고작해야 10대 초반 애들이라지만 칼이나 곤봉을 휴대하고 폭력을 구사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건장한 성인남성이 중학생 정도의 소년들에게 둘러싸여 무릎 꿇고 괴롭힘을 당하는 꼴이다.
 
경찰이 소년들을 체포해 가지만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쉼터로 보낼 수밖에 없단다. 유치장도 아니고 쉼터에서 탈출하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건물 경비원인 건장한 청년과 그의 경비견은 소년 갱단이 겁내지만 따로 수당을 챙겨주지 않으면 경비원은 움직이지 않는다. 주변 이웃들은 람세스와 다들 사이가 좋지 않기에 돈을 미끼로 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를 위해 나서지 않는다. 람세스가 서 있던 사상누각이 무정부주의 소년 갱단에 의해 무너져내리는 중이다.
 
결국 람세스를 돕는 이는 구식 점쟁이라며 본인이 무시하고 반목하던 그의 부친뿐이다. 가족이나 이웃과의 교류는 돈 버는 데 쓸모가 없다던 람세스가 온갖 사건에 시달리다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아버지의 집은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정작 자신의 아파트조차 소년 갱단과 경비원에게 수시로 침범당하는 상황은 18구의 불안정한 상황과 함께 람세스의 처지를 상징하는 기제로 효과적인 활용을 선보인다. 거리를 활보하며 어른들에게 위협적인 욕설과 폭력을 거리낌 없이 행사하는 청소년 갱단이 람세스를 둘러싸고 밤거리를 활보하는 순간은 초현실적인 혼돈 자체로 보인다. 기존의 거리 질서를 위협하는 이들의 행태는 역시 파리 교외 빈민가의 위태로운 상황을 압축한 레쥬 리의 <레미제라블> 후반부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하지만 교외 동네를 분할해 권력을 나눠가진 공권력과 지역 갱단들을 향해 실업자 청소년들이 폭발하는 봉기로 치닫던 <레미제라블>과 달리 거리의 숨겨진 권력구조 하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선'을 넘기 시작한 모로코 10대들의 난리는 경고를 받기에 이른다. '밀리유'라 불리는 프랑스 마피아가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면 어떻게 된다는 본보기를 지독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보인 것이다. 그 결과 때문에 위기에 처한 람세스와 소년들은 어쩌다 보니 한 배를 타고야 만다. 어떻게든 사태를 해결해야만 한다.
 
파리 18구에서 살아남는 법 가이드북 같은 영화의 매력
 
"썬 오브 람세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썬 오브 람세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여기에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람세스의 필사적인 노력은 몇 개의 실패와 성공으로 드러난다. 우선 람세스가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돈과 인맥의 힘은 통상적인 궤를 벗어난 상황에서 무의미해진다. 신용과 신뢰 없이 쌓아 올린 람세스의 영업조직은 본인의 수난 앞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축적한 상징적 이미지, 영매 브랜드는 의외로 10대 소년들에겐 잘 먹혀든다. 자신이 이 정글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구축한 가짜 브랜드가 실체화된 격이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저 뻔한 속임수나 거짓말을 대체 왜 신통하게 믿는지 갸우뚱해질 수 있겠다. 정상적인 상식을 지닌 시민이라면 대번에 불신할 얕은 수작에도 본인들 또한 쫓기는 상황에 처한 아이들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매달린다. 소년들의 물불 안 가리는 폭력에 굴복했던 람세스가 성인 남성의 완력으로도, 돈의 힘으로도 이룩하지 못했던 제압은 심리적으로 달성된다. 물론 이는 무차별 폭력으로 어른들을 겁주지만 결국 본질은 청소년에 불과한 데다 교육과정에서 배제된 이들의 상태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댈 구석이 없는 가난하고 불안정한 처지의 10대 북아프리카 소년들은 불안감 때문에 더 마구잡이로 행동한 것뿐이다.
 
결국 이 구역에서 언제든 배제되거나 위해를 당하기에 딱 좋은 하위 존재들인 점쟁이와 거리의 소년들은 기묘한 화해와 우정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자신들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 동시에 같이 죽을 고생을 경험했기에 가능한 동병상련의 감각일 테다. 물론 이는 통상적인 이웃과의 유대나 우애와는 동떨어진 찰나적 감정에 불과할 테지만, 최소한의 공감과 소통이 발생하는 순간은 오직 이익에 의해서만 움직이던 람세스에겐 작은 변화의 시작으로 기능할 게 분명하다. 물론 람세스가 영화에서 처음 보였던 말미의 동정적 행동은 그가 기대한 해피엔딩으로 귀결되진 않을지언정 가능성만은 남기려는 제작진의 취지일 테다. 독신에 애인조차 없는 외톨이 주인공에게 있을 리 없는 '아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영화의 제목은 자연스럽게 결말에서 관객의 뇌리에 새겨질 법하다.

<썬 오브 람세스>는 기승전결이 명확한 서사로 확정되진 않는 모호함을 끝까지 유지한다. 며칠간 주인공이 겪게 된 기이한 모험은 그가 18구에서 생존하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여전히 그는 사이비 점술로 생계를 이어갈 테고, 모로코 10대들은 거리의 아이들로 남게 될 운명이다. 서로가 이웃의 허점만 보이면 속이거나 등쳐먹을 궁리를 거듭할 게 뻔하다. 내 손을 떠난 스마트폰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데이터 싹 지워진 상태로 동네 매장에 전시될 것이고 경찰에 신고해봐야 헛수고일 테다. 그럼에도 영화는 작은 변화는 태도를 바꾸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가능하다는 뒷맛을 전하고자 한다. 명쾌한 결말이나 현실 개선의 목소리를 높이는 작업은 아니지만 그 세밀한 묘사와 함께 분명하지 않기에 다양한 상상을 펼치게 해주는 미덕이 돋보이는 소품을 찾는다면 한번 들여다볼 만하다.
 
<작품정보>
 
썬 오브 람세스 Sons Of Ramses
2022│프랑스│드라마/범죄
2024.02.07. 개봉│99분│15세 관람가
감독 클레망 코지토르
각본 클레망 코지토르
출연 카림 레클루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빅브라더스
 
2022 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공식초청
2022 27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포워드 초청
썬오브람세스 클레망코지토르감독 카림레클루 프랑스영화 파리18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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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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