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기 16경기에서 2승을 거둔 신한은행이 후반기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구나단 감독이 이끄는 신한은행 에스버드는 15일 용인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 우리WON 여자프로농구 4라운드 삼성생명 블루밍스와의 원정경기에서 43-35로 승리했다. 양 팀 합산 78점이라는 WKBL 역대 최소득점 기록이 나온 이날 경기에서 신한은행은 삼성생명에게 승리를 거두며 5위 BNK 썸과의 승차를 반 경기로 좁혔다(3승 14패). 반면에 삼성생명은 시즌 최소득점으로 심한 득점력 부재에 시달리며 5할 승률이 무너졌다(8승 9패).

신한은행은 에이스 김소니아가 12득점 15리바운드 5어시스트 1스틸로 공수에서 신한은행을 이끌었고 김진영과 맏언니 이경은이 나란히 8득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신한은행은 시즌 2번째 승리를 따냈던 2023년 크리스마스 이브 삼성생명전(69-65)에 이어 이날도 골밑을 사수해준 이 선수의 알토란 같은 활약이 돋보였다. 6득점 7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삼성생명의 골밑을 괴롭혔던 신한은행의 센터 김태연이 그 주인공이다.

박지수 이전 WKBL를 거쳤던 장신 센터들
 
 김태연은 2020년 여름부터 3년 넘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

김태연은 2020년 여름부터 3년 넘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현재 박지수(KB스타즈, 196cm)라는 기둥이 있는 것처럼 1984년 LA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한국 여자농구는 박찬숙(190cm)과 고 김영희(205cm)로 이어지는 강한 더블포스트가 있었다. 두 선수 이후에도 한국 여자농구는 성정아와 조문주, 정은순 같은 좋은 센터들이 배출됐지만 신장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이후 여자농구에도 장신 센터 유망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WKBL의 경기운영본부장을 역임하고 있는 정진경은 숭의여고 시절 '제2의 박찬숙'으로 불리던 대형 유망주였다. 하지만 1996년 실업팀 코오롱이 해체된 후 실시된 드래프트를 거부하면서 5년의 자격정지처분을 받았고 대만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신세계 쿨캣에 입단한 정진경은 WKBL에서 네 시즌 동안 활약하다가 2007-2008 시즌이 끝난 후 다소 일찍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198cm의 좋은 신장을 자랑하는 강지우는 신장 대비 긴 슛거리까지 갖추고 있었던 보기 드문 센터 유망주였다. 1999년 겨울리그에서 9.4득점 8.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잠재력을 폭발했던 강지우는 총 5차례에 걸쳐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하는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하지만 뛰어난 피지컬을 활용한 골밑 플레이보다는 미들슛을 즐겼던 강지우는 여자농구가 기대했던 센터자원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2012-2013 시즌이 끝난 후 유니폼을 벗었다.

삼성생명과 우리은행, 신세계를 거치며 활약했던 김계령(190cm)은 그나마 화려한 기록을 남기며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했던 장신 센터였다. 1998년 삼성생명에 입단한 김계령은 우리은행 시절이던 2008-2009 시즌과 2009-2010 시즌 두 시즌 연속으로 득점왕에 올랐을 정도로 리그에서 알아주는 뛰어난 득점력의 소유자였다. 김계령은 현역 시절 대표팀에도 꾸준히 선발되면서 세 번의 아시안게임과 두 번의 올림픽에 출전했다.

202cm의 신장에 통산 63.1%의 2점슛 성공률을 자랑했을 정도로 발군의 골밑 마무리 능력을 가졌던 '거탑' 하은주는 신한은행 통합 6연패의 중심에서 활약한 주역이었다. 하지만 학창시절 농구포기각서까지 썼던 하은주는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 없어 일본으로 건너가 선수생활을 이어갔을 정도로 학원스포츠 병폐의 대표적인 희생양이기도 했다. 따라서 하은주가 농구를 위해 일본국적을 선택했을 때도 이를 비난하는 농구팬은 아무도 없었다.

건강만 허락되면 좋은 활약 가능
 
 김태연은 이번 시즌 단 4경기에 출전했지만 출전하는 경기마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김태연은 이번 시즌 단 4경기에 출전했지만 출전하는 경기마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김태연은 선일여고 시절부터 189cm의 좋은 신장을 가진 재목으로 주목 받았지만 전국대회 우승컵을 쓸어 담으며 고교무대를 평정했던 '특급유망주'는 아니었다. 김태연은 2014-2015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안혜지(BNK)와 김진영(신한은행), 이하은(하나원큐)에 이어 전체 4순위로 신한은행에 지명됐다. 당장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선수라기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키울 가치가 있는 '원석'이었던 셈이다.

프로 입단 후 첫 두 시즌 동안 3경기 출전에 그쳤던 김태연은 2018-2019 시즌 32경기, 2019-2020 시즌 26경기에 출전하며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2019-2020 시즌이 끝난 후 WKBL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폐지되면서 박지수 다음으로 신장이 좋은 김태연을 보유한 신한은행의 약진을 예상한 농구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태연은 2020년 여름 3대 3 대회에 출전했다가 무릎을 다치면서 2020-2021 시즌을 통째로 결장했다.

김태연은 2021-2022 시즌 코트로 돌아왔지만 무릎부상에 대한 부담과 재발위험성 때문에 2021-2022 시즌 평균 8분 35초, 2022-2023 시즌 평균 12분 3초 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건강하게 코트를 누비면 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언제나 부상이라는 시한폭탄이 김태연의 앞을 가로 막았다. 김태연은 이번 시즌에도 개막 2경기 만에 무릎을 다쳐 두 달 가까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신한은행은 속절없이 최하위로 추락했다.

2023년 12월 24일 삼성생명과의 크리스마스 이브 매치에서 복귀전을 가져 18분 19초 동안 코트를 지켰던 김태연은 15일 삼성생명과의 후반기 첫 경기에서 다시 코트를 밟았다. 복귀전보다 조금 많은 22분 25초를 소화한 김태연은 3번의 2점슛을 모두 성공시켰고 수비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보이면서 6득점 7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선보였다. 스크린 플레이 등 공 없는 곳에서의 움직임도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신한은행에는 안혜지나 허예은(KB)처럼 어시스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없지만 강계리, 이경은, 김지영 등 돌파와 패싱센스를 겸비한 포인트가드 자원이 즐비하다. 김태연이 골밑에서 자리만 잘 확보하면 충분히 확률 높은 득점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시즌 7.5득점 5.5리바운드로 프로 데뷔 8시즌 만에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김태연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한 가지는 다름 아닌 '건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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