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관련 이미지.
영화사 찬란
사랑의 감정은 특별하지만, 반드시 좋은 환경이나 상황에서만 찾아오라는 법은 없다. 여기 두 남녀가 있다. 핀란드 헬싱키를 배경으로 근근이 마트 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여성 안사(알마 포이스티)와 건설 노동자로 하루 벌어 먹고사는 남자 홀리파(주시 바타넨) 각자 일터에서 일을 관두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부정할 수 없을 확실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그 배경과 소재를 떠올리면 아주 건조하고 피폐하게 보이기까지 한 로맨스 영화다. 생의 무게 탓인지 남녀 두 캐릭터도 시종일관 표정의 변화 거의 없이 타인을 대하는데, 대화는 그 누구보다 따뜻하다. 이 역설에서 나오는 코믹함이 영화의 주요 정서 중 하나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엔 남성이 여성을 보호하거나 순정을 바쳐야 한다거나,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흠모한 나머지 헌신하는 묘사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마트 직원에서 주방 보조, 그러다 건설 현장 청소일까지 하게 된 안사는 생계를 위해 거의 모든 일을 해낸다. 현장에서 해고된 홀리파는 안사의 마음을 사는데 성공하지만, 그녀가 남긴 전화번호 쪽지를 잃어버린다거나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와중 기차 사고까지 당하는 등 연속된 불행을 겪는다.
이 정도면 사랑이고 뭐고, 피폐해진 심신을 술로 달래고 말기 십상이지만 두 사람은 기어코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다가 주변 인물의 도움으로 인연을 이어간다. 팍팍한 생활 전선은 오롯이 각자의 몫이고, 사랑의 감정이 싹튼 이상 진심을 다해 서로를 대하는 식이다. 관계에서 유불리를 따지고, 계산적이기 쉬운 요즘 시대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결핍은 곧 다른 결핍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안사와 홀리파는 서로에게 무언가가 있어서, 사랑할 만한 어떤 조건이 성립되어 사랑한 게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없음을 알아보고 서로가 그 결핍을 견딜 수 있게끔 하는 존재임을 깨달은 셈이다. 핀란드 대표 감독인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성찰이 돋보이는 설정이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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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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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특별한 건 사랑의 감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두 사람이 살아가는 핀란드라는 공간과 그 주변을 맴도는 현재의 실상을 감독이 무심한 듯 하면서도 꾸준히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달력을 통해 시간적 배경이 2024년임을 알게 되고, 두 남녀가 종종 듣는 라디오 방송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연이어 나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남녀의 데이트 공간 중 하나인 극장엔 장 뤽 고다르나 로베르 브레송, 짐 자무쉬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있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초현실적인 풍경이다.
해고 당하면 당해야 하는 노동자의 삶도 다루려면 얼마든지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그럼에도 이들 마음에 피어나는 연대와 사랑의 감정에 집중했다. 첨단 기술과 고도화된 자본주의로 가득한 현대 사회지만,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전쟁의 광풍이 불고, 그 틈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약자로 살아간다. 현실 같은 동화일까 아니면 동화 같은 현실일까. 영화를 보다 보면 은연 중에 얼굴에 피어오르는 미소를 감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줄평: 은근한 연대와 사랑은 전쟁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평점: ★★★★(4/5)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관련 정보 |
원제: Fallen Leaves
연출: 아키 카우리스마키
출연: 알마 포이스티, 주시 바타넨, 얀 히티 아이넨, 누푸 코이부
수입 및 배급: 찬란
공동제공: 소지섭, 51k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0분
개봉일정: 2023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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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해고에 기차 사고까지... 두 남녀의 특별했던 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