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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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은 '폭력적'이다. 10.26 박정희 시해 사건을 지나 12.12 군사쿠데타까지 47일 동안 긴박했던 결단들을 탱크처럼 밀어붙인다. 하나회를 통해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하나회 일당을 막으려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의 대립은 무한궤도처럼 이어진다.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 없듯 관객들 또한 그들 중 한 사람의 입장을 선택해야 한다.

전두광은 전두환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외모와 말투, 절친 노태우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심지어 잠깐 등장하는 부인 이순자의 싱크로율까지 우리가 수많은 콘텐츠에서 봐왔던 독재자의 그 모습이다. 외적인 특징뿐 아니라 권력을 향한 탐욕, 하나회를 장악하는 리더십, 쿠데타를 앞둔 불안감, 목적 달성을 위한 무자비함 등 악의 구체성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전두광의 캐릭터는 생생하게 날뛴다.

반면 이태신은 장태완 장군을 모티브로 다시 태어났다. 이태신은 '뼛속까지 군인'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제외하고는 딱히 설명할 게 없는 인물이다. 그가 평소에 뭘 좋아하는지, 쉴 때는 무엇을 하는지, 사적으로 만나는 동료들은 있는지 알 수 있는 근거는 많지 않다. 집에 잘 들어가지 못하지만, 아내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정도. 좋게 말해 우직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평면적이다. 이후 벌어질 일들을 떠나 여러모로 입체적인 전두광과 대척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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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에 대한 편견에 반기를 들다

두 인물의 대비를 통해 <서울의 봄>은 오래된 편견 한 가지에 반기를 든다. 관객은 입체적인 인물에게 이입한다는 편견이다. 편견대로라면 관객은 뻣뻣하고 어딘가 사람 같지 않은 이태신이 아니라 결점도 많지만 인간적인 전두광의 편에 서야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실제 역사를 떠나 전두광이 이끄는 반란군의 선택에 동조하는 관객의 수는 역대 대통령 중 단연 최하위인 전두환의 지지율만큼 많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고 박정희를 죽였다는 김동규(=김재규)의 말에 코웃음 치며 "세상은 그대로"라고 일갈하지만 전두광은 되레 진실을 왜곡해 세상을 바꾼다. 민주화 등의 변화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민주주의 안 하고 살았냐' 겁박하고, 쿠데타 아니냐며 걱정하는 하나회 동지들에게는 '이왕이면 혁명이라는 멋진 단어를 쓰라'고 다그친다. 북한과 마주하는 9사단의 전차부대를 서울로 돌리라는 지시에 노태건이 주저하자 '오늘 밤은 여기가 최전방'이라고 압박한다.

이처럼 진실을 날조하고 시류에 영합해 가며 시시때때로 입장을 바꾸는 전두광은 권력, 출세 등 달콤한 포상을 독식하지 않고 함께 나누겠다며 하나회의 인물들을 포섭해 대한민국을 장악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과 달리 신군부가 주축이 된 5공화국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놨다. 40일간 갖은 방법으로 예수를 유혹한 악마의 현신처럼 보이기도 하는 전두광의 이런 입체성은 관객들을 매력적인 악역에 매혹시키기보다 역설적으로 서울을 사수해야 한다는 이태신의 신념을 도드라지게 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전두광과 달리 이태신은 세상을 그대로 말한다. 자기 편이 되라는 전두광의 제안에 '육군은 다 같은 편'이라고 묵살한다. 전세가 기울고 투항하자는 부하의 말에 ' 수도경비사령관이 서울을 내버려두고 어디를 가라는 거냐'며 마지막까지 전두광에 대항한다. 전두광의 정확한 평가처럼 이태신은 협박을 모른다. 상황만 됐다면 탱크를 몰고 가 반란군들의 대가리를 뭉개버릴 사람이다. 이태신의 평면성이 강조되면 강조될 수록 명예와 충성심, 직업윤리처럼 진정 지켜야할 것들의 위상이 높아진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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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에 대한 강력한 복선

역사가 증명하듯 어쨌든 성공한 쿠데타를 완벽하게 처벌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전두환 시대가 좋았다, (쿠데타와 광주학살 빼고)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말이 나온다. 패자에게 마음을 주는 언더독보다 승자의 편에서 영광을 누리는 밴드웨건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쿠데타의 마지막 9시간 동안 육군참모총장이 납치되고 최전방을 지켜야 할 전차부대와 공수부대가 서울로 진입한다. 군사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을 <서울의 봄>은 그래픽으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마치 전략게임처럼 빠르게 이뤄지는 공수 전환은 두 사람의 지략대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어떻게 쿠데타가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왜 쿠데타를 막지 못했나' 물으며 이런 우려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간다.

쿠데타를 막지 못한 이유는 육군본부에 모여있던 '똥별'들 때문이었다. 수수방관, 책임회피, 판단 오류, 안일주의가 누적되어 결국 육군본부를 버리고 투항하는 최악의 결론을 낳았다. 그렇다고 쿠데타 세력이 치밀한 전략을 세운 것도 아니다. 대통령의 재가부터 받겠다는 계획이 꼬여 총격전이 일어나고 사상자가 발생한다. 단 한 번의 올바른 판단, 단 한 번의 실수만 있었어도 5공화국에서 벌어진 비극이 역사에 새겨질 일은 없었다.

아쉬움과 한숨으로 가득한 영화에서 그래도 인상 깊었던 것은 2공수여단의 서울 진입을 막는 방법이었다. 수적으로 밀리고 시간도 없던 이태신은 묘수를 떠올린다. 퇴근길 시민들을 이용해 한강 다리들을 봉쇄하는 거다. 한강 다리에서 정체된 시민들 덕분에(?) 2공수여단은 탱크를 돌려 행주대교까지 돌아간다. 아군의 지원을 받지 못한 이태신은 기어이 행주대교를 건너오는 탱크들을 몸으로 막는다.

영화적 각색이 가장 강하게 들어간 부분이지만 폭력을 앞세운 탱크부대의 발을 묶어놓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보이지만 무엇보다 강한 시민들. 그리고 굳건한 신념을 가진 소수의 의인이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원히 권력을 누릴 것 같은 신군부도 결국 1987년 6월에 막을 내려야 했던 역사에 대한 복선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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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했다, 이제 시작된 국민들의 사후재가

최후의 수단으로 반란군의 본거지에 포격을 날리려는 이태신에 대항해 전두광은 시민들을 볼모로 삼고 국방부장관을 통해 지휘권을 박탈한다. 광화문 앞에 쳐놓은 바리게이트와 윤형철조망을 넘어 전두광과 마주하지만 이태신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때 후환을 없애기 위해 전두광은 대화를 요청하지만 '대화는 사람끼리 하는 거야'라며 무시 당하고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다'는 최종 판결을 듣는다.

대노(大怒)와 극대노(極大怒)를 오가는 영화답게 혈압이 얼마나 오르는지 보는 심박수 챌린지가 유행이다.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배우 황정민이 괴롭힘당하는 출연작이 어떤 게 있느냐 묻는 사람도 적지 않다. 돈 주고 스트레스를 사다 보니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처럼 가상의 역사를 통해 쿠데타 세력에게 시원한 단죄를 바라는 마음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격한 분노와 욕설 대신 이태신이 나지막이 '인간의 자격'을 물음으로 <서울의 봄>은 패배의 원인을 자세히 규명해 뒤늦은 멍석말이를 하거나 통쾌한 단죄로 스트레스를 푸는 영화와 궤를 달리한다. 인간의 자격을 묻는 말에 전두광은 단연 할 말이 없다. 동료와 친구의 축하에도 '웃지 말라'며 '며 순수하게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그는 어두운 화장실에서 오줌을 싸면서야 동물처럼 광포하고 기괴한 웃음을 터트린다.

쿠데타 성공 후 파티를 하고 의기양양하게 찍은 단체 사진과 탄탄대로를 펼쳐간 실제인물들의 이력으로 영화는 끝맺음된다. '서울의 봄'이 막을 내린 지는 44년이 지났다. 대통령을 지내며 은닉한 수천억에 달하는 비자금은 결국 환수되지 않았고 무자비한 학살이 있던 광주를 비롯해 고통을 받은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천수를 누린 그는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그의 손자는 할아버지의 잘못을 연일 대신 사과 중이다. 북녘이 보이는 땅에 묻혀 통일을 기다리겠다는 유언과 달리 그의 유골은 2년째 연희동 집에 안치 중이다. 장지가 있다는 파주시에서는 강력하게 그의 이장을 반대하고 있다. 악인에 대한 국민들의 사후재가는 이제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영화 서울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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