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인 서울> 메인 포스터

<싱글 인 서울> 메인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남자에게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여자가 한 명 있다. 그녀의 이름은 첫사랑이다."

언뜻 보면 로맨틱하지만, 상황을 알면 의문스러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속 내레이션이다. 주인공 해태(손호준 분)는 첫사랑과 헤어진 후, 아무 여자와 가벼운 만남을 반복한다. 친구들에게 자신이 만나온 여성들을 낱낱이 품평하다가 "첫사랑은 어땠냐"는 질문에 갑자기 침묵한다. 평소에는 트로피 자랑하듯 헤어진 연인들의 신체 사이즈를 읊었고, 정작 첫사랑과 만날 땐 매일 클럽에 다니고 다른 여자와 미팅을 했다. 헤어지고 갑자기 순정파로 돌변한 해태, 역시 남자의 첫사랑은 다른 걸까.

'남자의 첫사랑은 다르다.' 이 메시지는 <건축학개론> < 500일의 썸머 > 등 이미 수천 편의 영화에서 반복되었다. 사실 첫사랑 영화의 키워드는 순수함도, 아련함도 아니다. 바로 첫사랑에 실패한 뒤 처참해진 감정을 가누고자 얼마나 기억을 오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방어 기제가 만든 첫사랑 신화에 사로잡힐지, 벗어날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그리고 <싱글 인 서울>의 영호는 그 기로에 놓여 있다.
 
내 첫사랑은 분명히 날 버렸어!
 
 <싱글 인 서울> 스틸컷

<싱글 인 서울>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호(이동욱 분)는 싱글 라이프를 즐긴다. 홀로 즐기는 걷기, 먹기, 살아가기의 감각을 느낄 줄 알며 SNS에 일상을 공유하는 파워 인플루언서다. 그러나 영호는 착각한다. 홀로 살아간다는 건 어떠한 대인관계도 맺지 않고 고립되는 것이 아니다. 영호는 친구, 연인 없이 혼자 살아가야만 인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고 열변을 토한다.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무신경한 영호에게도 첫사랑이 있다. 영호가 읽던 고전 소설에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린 게 첫 만남이었다. 시종일관 다정하고 관계에 충실한 영호와 달리, 첫사랑은 무신경하고 냉정하며 끝내 영호를 홀대한 채 말없이 사라진다. 사랑에 실패한 영호는 날을 세웠고 첫사랑을 박제했다.

우연히 영호는 싱글 라이프에 대한 책을 쓰게 되고 스페인에서의 싱글 라이프를 담은 한 작가와 함께 책을 내게 된다. 그 작가도 영호처럼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적어갔다. 영호와 스페인에서 날아온 글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지만, 어딘가 틀어졌다. 알고 보니 스페인에서 온 작가 주옥(이솜 분)은 영호의 첫사랑이었다. 매몰차게 영호를 배신해 놓고 정작 글은 상처 입은 어투였다.

주옥의 기억은 달랐다. 첫 만남에서 영호는 고전 소설이 아닌 만화책을 읽었고, 문예창작과 진학을 꿈꾸는 주옥에게 "가봤자 별거 없다"며 찬물을 끼얹는다. 직장까지 찾아와서 "함께 회식에 가겠다"고 우기고,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걸 아까워했던 건 주옥이 아닌 영호였다. 영호는 부인하고자 책장을 뒤졌지만, 아이스크림 흔적이 남은 건 주옥의 말대로 만화책이었다.

영호는 첫사랑을 왜곡했다. 자신의 실수를 상대에게 전가했고 관계에 선악의 이분법을 적용해 자신을 한없이 억울한 피해자로 위치시켰다. 결국 영호는 자신의 왜곡을 인정하고 주옥에게 사과한다. 주옥은 마지막으로 그와 포옹하며 모두가 첫사랑에 하고 싶은 말을 던진다.

"한 번쯤은 다시 만나고 싶었어. 우리 성장했다."
 
< 500일의 썸머 > 속 썸머는 나쁜 X일까
 
 < 500일의 썸머 > 포스터

< 500일의 썸머 > 포스터 ⓒ Studio dhL

 
첫사랑 영화로 손꼽히는 < 500일의 썸머 >는 인트로부터 심상치 않다. "본 영화는 허구의 내용으로, 생존 혹은 사망한 사람과 어떤 유사점이 있더라도 완전히 우연입니다. 특히 너 제니 벡맨. 나쁜 X." 각본가 스콧 뉴스태터는 이후 인터뷰에서 영화 내용의 75%가 실화라고 고백했다. 영화에서 대놓고 첫사랑을 '나쁜 X'이라 지목한 만큼 여주인공 썸머(주이 디샤넬 분)를 향한 평가는 갈린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조셉 고든 레빗 분)은 회사에서 썸머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와 데이트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가 깊어지자 톰은 썸머와의 다음 장을 꿈꾼다. 하지만 썸머는 이별을 고하며 끝내 다른 남성과 결혼하게 된다. 썸머의 변심을 두고 영화 시작 장면처럼 그를 '나쁜 X'이라 평하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영화는 첫사랑에 실패한 톰의 왜곡된 시점으로 다뤄진다.

영화에선 톰이 썸머를 무시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썸머의 취향을 놀리고, 썸머가 불쾌함을 표해도 바에 있는 여성들의 옷차림을 평가한다. 영화를 보며 우는 썸머를 이해하지 않고, 이해하는 척조차 하지 않는다. 썸머가 톰과 헤어지고 다른 남성과 결혼한 이유는 간단했다.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던 그에게 내용을 물어봤기 때문.

톰은 자신이 기억을 왜곡했고 썸머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더는 썸머를 욕하지 않고 새로운 사랑을 찾으러 간 톰은 여름을 지나 '어텀'이란 여성을 만나게 된다. < 500일의 썸머 > 속 톰은 <싱글 인 서울>의 영호처럼 첫사랑에 대한 왜곡된 오해를 풀고 성장하게 된다.
 
첫사랑은 다르다, 우리 모두에게

<싱글 인 서울> < 500일의 썸머 > 모두 첫사랑에 대한 오해를 이야기한다. 주인공들은 첫사랑에 얽힌 나쁜 기억이 사실이 아닌 오해라는 걸 깨닫고 자기 중심적 관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타자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의 본질은 타자성.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내가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인지, 혹은 사랑에 빠진 자신을 심취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철학가 알랭 바디우는 사랑을 할 때 인간 동물에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고 말했다. <싱글 인 서울>의 영호는 혼자만의 세상에서 나와 현진(임수정 분)이란 새로운 세상과 조우한다. 홀로 서서, 타인과 손잡는 법을 아는 것. <싱글 인 서울>의 사랑법, 시작은 '첫사랑 박살내기'였다.
싱글인서울 500일의썸머 임수정 이동욱 박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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