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중 감독의 <태>37년만의 복원된 하명중 감독의 <태> 상영과 함께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
많은 감독들도 관객으로 참여해서 더욱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다.
임효준
<태>는 하명중 배우 겸 감독의 세 번째 작품으로 1972년 발표된 천승세 작가의 중편소설 <낙월도>를 원작으로 80년 대 당시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 전두환 정권 등장과 압력 앞에 협조한 종교계과 언론, 그리고 부패한 무속신앙 등 비판의식이 녹아든 첫 동시녹음 작품이다.
1920년, 일제 식민지 시대에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된 섬 낙월도에서 최부자(최일) 등 몇몇 지주가 귀덕(이혜숙)의 아버지를 죽이고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철선에 팔아 이익을 챙기고 섬을 차지하기 위해 악마가 된다.
어부의 직업을 가진 사내들은 고기잡이 어부로서 제 본분을 잃고 바다를 나가지 못하게 되고 여성들과 함께 산과 육지를 개척하는 강제 노동에 동원된다. 특히 악덕 지주들이 '고기잡이' 섬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먹거리 통제까지 나서며 이자 돈을 꿔주고 가난을 핑계로 여성 일부를 '씨받이'로 전락하게 만들고 나쁜 소문을 내는 등 섬사람들의 공동체사회를 파괴해 나간다.
춤을 추며 화합하던 섬 공동체의 지난날을 그리워하던 빚진 주민들 중에 살아남기 위해, 섬을 떠나 목숨 건 탈출을 시도하지만 거센 바다에 죽거나 악덕 지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처참한 삶이 이어진다.
비밀을 엿들은 주민여인이 악덕지주에게 잡혀 바다에 스스로 공양 받쳐진다고 거짓된 말로 바닷물에 내던져지는 죽임을 당하지만 며칠 뒤 바다에 떠오른 그의 사체는 철사 줄에 꽁꽁 묵힌 몸이었다.
그토록 사랑하던 섬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살던 집을 불태우고 거센 바다에 몸을 맡긴 귀덕(이혜숙)과 종천(마흥식)은 이를 발견하고 분노와 절규를 하며 최 부자 일당 몇을 죽이지만 무당 청백(채희아)의 활에 맞아 잡히고 '섬을 떠나라'라는 말에 거부하며 '바다와 섬과 나는 하나'라며 죽음을 택한다.
종천의 죽음 앞에 무당 청백의 깨우침은 무아지경의 춤으로 전이되며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후 귀덕은 종천의 아이를 바닷가 바위 위에서 낳으면서 낙월도는 새로운 희망, 생명의 탄생으로 다시 '바다와 섬과 섬사람'은 옛 평화의 시대로 복원 되어감을 기원하듯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붉은 색'은 흑색의 갯벌 위에 적홍색의 해초들로 미학적 깊이를 더한다. 이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섬사람들의 한 명 한 명, 삶과 생명력으로 파고들고 태양 볕에 쬐이며 멍석 위에 말라가는 빨간 고추 위에서 '씨받이'의 설움 속에 자기의 아이에 젖을 물렸다고 폭행을 당해 벌거벗어진 여성의 울부짖음으로 터져 나온다.
애를 데리고 섬을 탈출하는 여인과 사내는 바다에 삼켜지고 또 다른 여성은 정신이 미쳐 볏짚을 자기 아이로 알고 빨간 천을 휘두르고 온 마을을 싸돌아다닌다.
귀덕의 마지막 장면에서 푸른 바닷가를 뒤로 하얀 명주 천을 찢어버리는 산고의 고통 뒤에 아이의 탄생. 이는 거친 바다와 태풍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 놓인 나약한 인간이 삶의 본질을 향한 끊임없는 성찰과 도전으로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가 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