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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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한남동 지금의 이슬람 사원이 있는 가파른 달동네에 난데 없는 총성이 들렸다. 1979년 12월 12일의 일이다. 육군 참모총장이 연행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신군부가 일을 벌였다는 말이 돌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사실은 없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김성수 감독의 기억이다.
영화 <아수라>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작품은 다름 아닌 44년 전 그때의 기억이 질료가 됐다. 12.12 군사반란으로 규정된 그날의 사건을 두고 김성수 감독은 "오랜 숙제를 풀어낸 기분"이라 표현했다. 극화이고 상상력을 보탰다지만, 분명한 건 이번 영화 <서울의 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전두환, 그리고 당시 신군부 세력과 그에 맞선 소수의 군인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3일 서울 삼청동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표현한 숙제라는 단어는 80학번으로서 지닌 어떤 부채의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창작자가 마땅히 지닌 문제의식 때문이었을까. 그 질문부터 해야 했다.
"한 줌도 안 되는 무리들이 나라를 장악"
"그 총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그날의 기억이 내겐 각인돼 있다. 김영삼 정권 때 하나회 척결을 과제로 내세웠을 무렵 제가 감독으로 데뷔(1993년)했는데 그 사건의 실체를 처음 접한 거지. 어처구니없고, 화가 났다. 또 세월이 더 지나 2019년 초겨울 이맘때 지금 제작사 대표가 시나리오를 줬는데 그 이야기였다. 전율이 일었다. 나름 남들보다 그 사건을 잘 안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혹여나 그들의 짓을 승리의 기록인양 정당화하는 게 아닐지 싶었다."
제안을 고사했지만 김성수 감독은 "시나리오를 본 이후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끊임 없이 머리에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2020년 여름 무렵 용기를 내 제작사 대표를 찾았다. 몇 가지 대안을 들고 갔던 그는 곧바로 각색에 착수했다. 80학번으로 당시 20대를 보내며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으로 역사의 재현이나 정치적 비판보단, 권력에 취한 사람들의 작동 원리와 그들의 생리를 아주 뼈저리게 보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성수 감독은 본인이 접하고 듣고 공부한 것들 보단 철저하게 그로부터 멀어지는 결단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들을 언급해서 박제화하는 게 목표가 아니었고,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시점에 그들이 어떤 식으로 판단했는지가 중요했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