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되고 어디서나 존재했던 질병, 바로 '정신질환'이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병이자, 최근 무차별 범죄 등 강력사건과 맞물려 각종 이슈로 떠오른 정신질환은 대한민국에서도 성인의 25%가 한 차례 이상 경험했다는 통계가 나오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10월 24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122회에서는 '인류는 어떻게 정신질환자를 미치광이로 다루었나'편을 통하여 역사와 함께 존재해왔던 정신질환의 진실을 조명했다. 하지현 건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정신질환은 발병 원인을 기준으로 생물학적(신체적)-유전적-심리적-환경적 원인으로 나뉜다. 증상을 기준으로는 현실판단력-망상과 환각증상-사회적응 여부에 따라 신경증(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등)과 정신증(치매, 조울증, 조현병, 중증 지적장애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정신질환이 현대의학에서 이처럼 체계적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은 약 13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당연히 정신질환자들은 더 오래된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하지만 긴 역사 속에서 정신질환자들은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그저 비정상적인 광인으로 치부되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낙인과 핍박으로 억울한 희생자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냈던 경우가 많았다.
인류는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광기와 비이성의 문제로 이해해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러한 광기의 원인을 찾기 위하여 노력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B.C 406-370)는 이른바 '4체액설(혈액, 점액, 흑담즙, 쓸개즙)'을 주장하며 체액의 불균형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히포크라테스는 광기의 원인은 흑담즙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울을 뜻하는 영어단어 멜랑콜리(Melancholy)의 어원은 검은색(Melan)과 담즙(Chole)을 결합시킨데서 유래했다. 정신의학(Psychiatry)과 심리학(Psychology)의 어원 역시 고대 그리스의 '마음의 신' 프시케(Psyche)에서 유래한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견해가 당시로서 그나마 진보적이었던 부분은 최소한 인간의 정신적 이상의 원인을 '신체'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대인들은 정신질환을 그저 비이성과 초자연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더 보편적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이성적-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악재들이 발생한 것을 '신의 저주'라고 여겼고 정신질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전에서 수면을 취하는 것을 광기의 치료법이라고 생각했다.
380년,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공인한 데 이어 국교로까지 채택한다. 사회 곳곳에서 유일교가 된 기독교의 영향력이 크게 높아지면서, 철저한 종교적 관점이 기준이 도어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은 모두 신과 악마의 영향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사회에서 정신질환은 이른바 '광기'로 규정되어 배척되었다.
종교인들은 이러한 광기의 퇴치가 신의 권능을 입증한다고 생각했다, 사제를 통한 구마의식을 치르게 하거나 아예 악마로 규정되어 사형을 시키기도 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공고해질수록 광인에 대한 핍박은 더욱 심해졌다.
중세에 이르러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기독교적 세계관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대표적인 탄압은 대규모 학살극인 '마녀사냥'으로까지 이어진다. 12세기에서 18세기까지 이어진 마녀사냥으로 인하여 유럽 일대에서 기독교 세력은 마녀로 몰린자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범죄를 일으켰다. 이러한 마녀사냥의 주된 표적이 된 것은 장수하거나 치매에 걸린 노인 정신질환자들, 경련성움직임을 일으키는 헌팅턴 병 환자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녀사냥은 차츰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신질환자들은 가족과 마을의 관리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했는데, 이들은 여전히 죄악과 수치로 취급되어 사회의 냉대를 받으며 비인간적인 대우를 감수해야 했다. 독일에서는 정신질환자가 아버지에 의하여 돼지우리에 감금당하며 상태가 더 악화되어 팔다리를 못쓰게 되고 행동도 실제 짐승처럼 변해버렸다는 안타까운 기록도 있다.
18세기 유럽에 불어닥친 '산업혁명'은 광인들의 처우에 또다른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런던 등 대도시에 인구에 과도하게 밀집하며 서민들의 삶의 질은 낮아졌다. 이 과정에서 지방에서 갈곳을 잃은 광인들까지 도시 부랑자와 빈민에 대거 합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치안문제가 대두되자 정부는 대규모 수용시설에 광인들을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한다.
1247년 건설된 수도원 베들렘은 유럽 최초 정신병원의 전선으로 불리우며 산업혁명 시기에 이르면 런던시가 관리하는 대표적인 민간인 수용시설로 자리잡게 된다. 베들렘의 시설은 열악했고 수용자들은 별다른 치료나 지원없이 그저 강제로 격리와 감금을 시켜놓는 것이 전부였다. 광인들은 쇠사슬에 묶여있거나 증상이 심한 이들은 체벌을 당해야 했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병원과 수용소가 베들렘 외에도 다수 존재했으며, 심지어 광인들을 동물원처럼 관람객을 받고 구경거리로 만들어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산업혁명 시기에 이르러 정신질환자들을 질병으로 이해하는 시선과 치료법도 조금식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현대 기준으로 보면 사이비 수준에 불과했다. 광인들을 회전의자에 강제로 묶여 강제로 회전시키거나, 개미떼가 담긴 자루와 뱀장어를 푼 욕조에 밀어넣기도 했다. 실제 치료라기보다는 반복되는 학습과 고문을 통하여 광인들을 억지로 통제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필립 피넬(1745-1826)은 "광인들도 인간이고 인격적으로 처우해야 한다"는 주장을 최초로 제기한 인물이다. 피넬은 당시의 통념을 과김히 탈피하여 자신이 원장을 맡은 병원에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환자들을 쇠사슬과 감금에서 해방시켰다.
또한 피넬은 환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원인을 찾아서 상황극을 연출하는 연극 치료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환자들 개개의 특성을 세심하게 관찰한 피넬의 노력과 연구로 정신의학은 '도덕적 치료'라는 개념의 등장과 함게 진일보하게 된다.
한편으로 피넬은 이해력이 충분함도 스스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환자들에게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라는 개념을 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이코패스는 현재 정신의학 분야의 정식 진단명에 포함되어있지는 않다. 하지만 죄책감이 없고 자기중심적이며 법과 도덕을 쉽게 어기는 사이코패스의 특징적 성향은 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100명 이상의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희대의 살인마 테드 번디를 비롯하여 한국의 살인범죄자인 강호순, 정유정 등도 실제 심리검사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든 사이코패스가 살인마나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섣부른 낙인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890년대에 이르러서야 정신질환은 비로소 병원의 정식과목에 포함되기 시작한다. 현대 정신의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에밀 크레펠린(1856-1926)은 정신질환을 13가지로 분류하고 차트 개념을 도입하여 환자의 임상이력을 자세히 연구하면서 정신의학의 진단체계를 확립했다. 조울증과 조현병의 증상을 처음으로 구분하기 시작한 인물도 크레펠린이다.
산업혁명 이후 느슨했던 시간 개념이 철저해지고 시간 강박에 쫓기게된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우울과 불안, 공포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신경쇠약'이라는 정신질환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시기 1807년부터 1844년까지 신경쇠약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6배가 폭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은 1845년부터 '미치광이법'을 제정하여 정신질환자를 중증과 경증 질환자로 분류하여 상태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게하거나 사회로 돌아갈수있도록 체계를 도입했다.
'20세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과거의 경험이 무의식으로 남아 정신질환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대화를 통하여 환자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이후 '상담 치료법'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프로이트를 필두로 20세기에 접어든 정신의학계에서는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치료를 표방한 치료법들이 만연하기도 했다. 이는 정신질환을 신체적인 치유를 통하여 해결할수 있다고 생각한 측면에서는 당시 기준으로는 나름 진보적이었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 사실상 '생체실험'에 가까울만큼 무모하고 극단적이었다는 것이다.
헨리 코튼은 외과수술로 정신질환을 치료할수 있다고 주장한 인물로 그가 내세운 '국소 감염 치료법'은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던 정신질환자의 이빨과 장기를 훼손하는 충격적인 방식이었다. 이외에도 20세기 초중반만 해도 심지어 고열을 유발하는 말라리아 감염 치료와 전기충격 치료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1,2차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셀 쇼크'를 일으킨 다수의 참전군인들에게 실제로 뇌에 충격을 주는 전기치료를 실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러한 극단적인 치료방식들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처럼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전두엽 절제술은 행동 통제가 안 되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전두엽를 제거하는 치료법으로 의학계에서 한동안 크게 유행했다. 전두엽 절제술을 주장하는 의사들은 뇌손상을 일으켜 기능이 저하된 환자의 행동을 공격성이 사라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신질환을 치료한 게 아니라 뇌의 일부가 파괴되어 다루기 쉬운 동물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전두엽 절제술을 최초로 시행한 포르투갈의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는 노벨상까지 수상했다. 당시에는 혁신적 치료법으로 알려진 전두엽 절제술을 받은 환자는 1951년까지 무려 1만 8천여명에 이르렀다. 1950년대 후반부터 '살아있는 사람을 파괴하는' 전두엽 절제술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고, 미국에서는 1977년 의회 조사를 통하여 전두엽 절제술의 위험성과 한계를 인정했다.
20세기 후반 '정신의학계의 페니실린'으로 불리우는 항정신병 약물인 클로르프로마진의 등장으로 정신의학계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다양한 정신치료약품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환자들에 대한 보편적인 약물치료가 가능해지면서 더 이상 정신질환은 통제불가능한 불치병의 영역을 벗어나게 됐다.
또한 정신의학의 바이블로 불리우며 미국 정신의학회(APA)에서 제작한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이 편찬됐다. 이후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각종 정신질환의 정의 및 증상을 판단할 수 있는 의학적 기준을 구축하게 된다. 인권의식의 확산과 정신의학 연구의 성장속에 정신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방식들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우린 모두 부서져 있다. 그렇기에 그 안으로 빛이 들어올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어록이다. 현대 사회는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현대인들이 받는 불안과 스트레스도 더욱 많아졌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며 안으로 상처받고 부서지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신질환은 더이상 멀리 떨어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누구나 한번쯤 겪을 수 있는 하나의 질병에 가깝다. 아직도 정신질환자를 괴물이나 미치광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