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란> 장면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런 상황에서 지역 조직의 부두목 치건(송중기)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당장 연규에게 급한 돈을 갚아주기까지 한다. 결국 연규는 빨리 돈을 모으기 위해 치건의 조직에 들어가게 되고 이후 본격적으로 조직 생활을 시작한다. 치건은 연규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영화 내내 치건은 차가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연규에게만큼은 조금 감싸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옥 속에서 서로를 알아본 치건과 연규
영화의 중심은 연규와 치건이다. 이 둘의 삶 속에 밝은 기운을 찾아보기 어렵다. 치건은 과거에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술에 취한 치건의 아빠는 그가 물에 빠진 것조차 알지 못했다. 어쩌면 치건이 물에 빠진 순간부터 그의 삶은 어두운 암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암흑을 연규에게서 본 치건은 아마도 그에게 작은 연민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조직 생활 속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큰 어둠으로 들어가게 된다.
치건이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그냥 해야 되면 하는 거'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들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없고, 그 조직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의미다. 치건은 이미 자신들에게 삶의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말을 연규에게도 그대로 하지만 치건은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그는 자신의 삶은 물에 빠진 순간에 끝났고, 그런 지옥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연규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는 연규가 그런 지옥의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오기 싫었을 것이다.
영화 <화란>은 오랜만에 개봉하는 정통 누아르다. 특히나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연규와 치건의 만남과 그들의 관계는 무척 흥미롭다. 영화 초반에 보이는 연규의 삶은 완전한 어둠이고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치건이 등장한 이후, 더 깊은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건에게는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전혀 없지만 연규에게는 여동생 하얀이 있다. 연규에게는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빛이 있다는 의미다. 연규와 치건의 관계는 무척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곧 서로 날을 세우는 관계가 된다.
누아르 장르답게 영화는 어둡고, 인물들은 비정해 보인다. 등장인물들의 삶도 큰 어둠 속에 있다. 하지만 각 인물들의 관계에서 작은 빛을 볼 수 있다. 치건이 연규를 만난 이후 그의 태도가 변해가는 과정, 연규가 치건을 만난 이후 여동생 하얀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는 과정을 보는 모습이 무척 흥미롭다. 인물들이 자신이 찾은 빛은 잘 지켜가는지, 아니면 다시 어둠으로 빠져버리는지가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