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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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잡스는 1960-70년대 시대 미국의 많은 청춘들처럼 '히피(Hippie 혹은 Hippy) 문화'와 동양철학 등에 심취했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 잡스는 친구들과 마약에 빠지기도 하고, 대학에 입학했으나 한 학기만에 자퇴하는 등 방황을 거듭했다.
1974년, 19세의 잡스는 전도유망한 비디오 게임회사였던 '아타르'에 입사하며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아타르의 창업자인 놀란 부쉬넬은 여전히 히피문화에 심취하여 기행을 거듭하고 동료 직원들도 기피하던 잡스를 과감히 채용하고 그가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했다. 부쉬넬은 남들이 2-3개월 걸린다던 프로젝트를 일주일만에 해낼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잡스의 독특함에 흥미를 느꼈고 "그가 다루기 힘들었지만 마음에 들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잡스의 인생에서 평생의 동반자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훗날 애플의 공동 창업자가 되는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인물이다. 잡스가 16세일 때 두 사람은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잡스는 당시 첨단분야였던 컴퓨터에 능통한 워즈니악을 보고 '자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처음 본다'며 감탄했으며 그를 통하여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잡스는 회사로부터 1인용 게임을 제작해보라는 미션을 부여받았고, 워즈니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놀랍게도 워즈니악은 실제로 3일 만에 게임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이후 1인용 게임 분야에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킨 '벽돌깨기(Break out)'다.
그런데 잡스는 회사에서 개발 보상금으로 무려 5천달러 이상을 받았음에도, 정작 진짜 개발자인 워즈니악에게는 액수를 속이고 10분의 1도 안되는 소액만 지급했다고 한다.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워즈니악이 따져묻자 잡스는 '기억이 안난다'고 둘러댔다는 후일담이 전한다.
1976년, 각자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21살의 잡스와 26살의 워즈니악은 의기투합하여 '애플'을 창립한다. 잡스는 워즈니악이 개발한 컴퓨터 '애플 원'을 보고 미래 산업으로서 컴퓨터 사업의 비전을 확신하고 함께 창업을 제안한다. 워즈니악이 컴퓨터 개발에 특화된 기술자였다면, 잡스는 당시 소수의 마니아층에게만 알려져 있던 컴퓨터 분야를 대중의 관심을 끌수있는 개인용 컴퓨터 개발이라는, 사업가적인 선견지명이 있었다.
1977년에 출시한 '애플2'는 키보드와 본체가 결합된 일체형과, 그래픽-컬러 영상 모니터 출력 지원 등에서 오늘날의 컴퓨터에 가까운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잡스는 여기어 홍보와 영업을 맡아 제품 내 게임 설치와 로고변경, 시중보다 저렴한 가성비 전략 등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컬러풀한 사과를 한 입 베어문' 형태로 유명한 2대 애플 로고(1977년-1998년)가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애플2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고 애플은 창업 5년만에 자산가치 2억 5천 6백달러(현재 2조 850억 추정)에 이르는 거대 IT기업으로 성장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일약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라이징스타이자 영앤 리치의 상징으로 거듭난 것이다.
하지만 잡스와 애플의 독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세계 최대의 컴퓨터업체이자 애플의 강력한 라이벌이 된 IBM의 등장 때문이었다. 1981년대들어 IBM이 선보인 '5150'은 애플과 당시 타사 제품과도 소프트-하드웨어 호환이 가능하다는 차별화되던 장점을 앞세워 출시 2년 만에 75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선풍을 일으켰다.
잡스는 처음에는 IBM의 등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오히려 경쟁자의 등장을 환영한다는 광고까지 내걸며 여유만만했다. 하지만 막상 오래 가지 않아 IBM에 밀려 2인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고, 뉴욕 여행중 IBM 본사 로고 앞에서 '손가락 욕'을 하는 사진을 찍는 기행을 선보이기도 했다.
잡스는 IBM를 능가하는 최고의 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매킨도시'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위하여 직원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잡스는 직원들에게 야근과 새벽 회의를 강요하고 마음에 들지않으면 수시로 폭언도 불사했다고 한다. 보다못한 회사가 잡스의 컴퓨터 개발을 중단시키고 보직을 이동시켰지만, 잡스는 오히려 이동한 부서의 팀장을 쫓아내고 자신이 원하는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만큼 고집불통에 독불장군이었다.
1984년 잡스의 야심작이었던 '세상에 없는 컴퓨터' 매킨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잡스는 홍보를 위하여 당시로서는 헐리우드의 거장 영화감독이던 리들리 스콧에게 광고 제작을 의뢰하며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기도 했다.
매킨토시는 역사적으로 컴퓨터에서 마우스 시대의 도래, 서체의 다양화 등으로 개인용 컴퓨터 기술 혁신에 중대한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정작 잡스의 기대 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잡스는 완벽한 컴퓨터라고 자부했던 매킨토시에 다른 컴퓨터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매킨토시 고유의 프로그램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면서 호환성이 떨어졌다. 일반인 소비자들에게는 실용성이 떨어진 반면, 가격은 지나치게 비쌌다. 잡스 특유의 과도한 독선과 완벽주의가 오히려 제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독이 된 사례다.
이미 잡스를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애플 이사회는 매킨토시 판매부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1985년 결국 잡스를 회장직에서 해고하기로 결정한다. 30세의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잡스는 훗날 한 대학연설에서 "삶의 초점을 모두 잃어버렸고 참담한 심정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절치부심의 시기를 거친 잡스는 'NeXT'라는 새로운 컴퓨터 회사를 창업하고 또다른 도전에 나선다. 사실 초기에도 회사의 행보는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설립 1년만인 1986년 잡스가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의 부수적인 일환으로, 3D편집과 특수효과 기술력을 보유한 영화 그래픽 회사였던 '루카스 필름'를 인수한 것이 뜻하지않은 전화위복을 불러온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적인 컴퓨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불리우는 '픽사(PIXAR)'의 전신이다.
훗날 잡스는 "컴퓨터 그래픽에 큰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정말로 이 회사를 사고 싶었다. 루카스 필름의 사람들을 봤을 때 그들이 예술과 기술을 결합하는 일에서 남들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물론 잡스가 픽사 인수와 설립이 불러올 효과를 처음부터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픽사가 1990년대부터 제작한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세계 최초의 3D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며 전세계에서 3억 6200만달러(현재 9923억 추정)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는 한때 벼랑 끝까지 몰렸던 잡스가 다시 유능한 사업가이자 컴퓨터 개발자로 재기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97년, 잡스를 내쳤던 애플이 놀랍게도 12년 만에 그의 복귀를 요청한다. 당시 애플은 잡스가 떠난 이후에도 부진을 면치 못하며 파산위기까지 몰려있었다. 결국 애플은 NeXT사를 인수하고 잡스를 다시 임시 CEO으로 추대하는 방식으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잡스는 애플의 복귀 제안을 처음 듣고 "인생 참 돌고도는 구나(What a circle of life)"라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고 컴퓨터 개발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연봉을 거의 받지않는 대신, 1억 2천만달러의 현금과 애플 주식 3억 7천만 달러를 받았다. 잡스는 당시 '썩은 사과'로 불리며 조롱받던 애플을 혁신한다는 명분으로 불필요한 사업과 제품들을을 정리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3천명 이상의 직원들을 해고했다.
당시 애플의 직원들은 엘리베이터에서 잡스를 마주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고 한다. 잡스가 돌발적으로 회사와 업무에 대한 각종 질문을 던지고 마음에 들지않는 대답을 한 직원들을 곧바로 해고 통보를 날렸기 때문이라는 일화도 전한다.
능력과 별개로, 사실 잡스의 '인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어두운 일화들이 전해진다. 공동 창업자이자 은인이었던 워즈니악 조차 "스티브 잡스에게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그중 하나는 그가 무자비하고 사람들을 나쁘게 대했다는 것이다.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어쩌면 사람이 저런 짓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 자식은 절대 저렇게 키우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다"고 저격한 바 있다.
또한 잡스의 대표적인 라이벌이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잡스같은 개자식(Asshole)을 흉내내는 것은 쉽다"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으며, 기업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게리 베이너척은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많은 사람들은 비열하게 회사를 운영한다. 바로 스티브 잡스를 존경하기 때문에 그의 방식이 옳다고 따라하는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잡스는 본인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친절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극히 무례했다고 한다. 심지어 직원을 면접하는 자리에서도 사생활에 관한 선을 넘는 질문을 쏟아내거나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밖에도 부적절한 관계로 혼외딸이 있었음에도 그 존재를 부정하는가 하면, 장애인 주차구역에 무단으로 주차해놓고 벌금을 내지 않으려고 번호판을 달지 않았다는 등 비열한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들도 전해진다.
혁신의 아이콘이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