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 ㈜쇼박스

 
자못 충격이다. 영화인들도, 영화 꽤나 좋아한다는 관객들도 놀랐을 터다. 무엇보다 영화를 만든 제작진들이 받았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짐작된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첫 여름시장의 빅4 중 2위를 달리는 작품이 개봉 일주일이 다 되도록 관객동원 100만은커녕 81만 명(8일까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안타까우면서 의아하다.
 
지난 2일 개봉한 <비공식작전> 얘기다. 멀티플렉스 관객들의 입소문을 가늠하는 골든에그 지수가 개봉 후 6일까지 95%를 유지 중이다. <밀수>는 93%, <더 문>은 85%다. 북미부터 아시아, 호주까지 전 세계 103개국에 선판매될 정도로 해외 실적도 빠질 것이 없다. 그런데 왜.
 
<비공식작전>만이 아니다. 빅3편 중 손익분기점 돌파를 앞둔 작품은 <밀수>가 유일하다. <신과 함께> 시리즈의 김용화 감독 <더 문>은 지난해 <외계+인> 1부의 실패를 넘어설 기세다. 9일 개봉하는 <콘트리트 유토피아>까지 빅4의 제작비 규모만 물경 1000억 수준이다. 지난해 <한산: 용의 출현>이 견인했던 빅4의 전체 흥행을 넘어설지가 관건인 암울한 상황이다. 게다가, 15일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선을 보인다.
 
빅4 모두 한 편 한 편 뜯어보면 이런 대접을 받는 게 온당한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작품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수익 악화를 이유로 동기간 멀티플렉스가 티켓값을 세 번째로 인상한 지 벌써 1년 4개월이 흘렀다. 관객들은 여름 텐트폴 시장에 돌입했음에도 여전히 지갑을 쉬이 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 사이 관객들은 OTT에, 유튜브 몰아보기에, 숏폼 플랫폼에 익숙해졌다. 아예 극장을 찾기까지 제각각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중이다. 또 갑갑한 극장 대신 야외로 나가고 여타 행사장을, 공연장과 미술관을 찾는다. 무더위를 피해 극장에서 피서를 즐긴다는 것도 옛말이 됐다. 마스크를 써야 했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더더욱 암담한 상황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비공식작전>에 대한 논의의 초점은 이 지점부터 다시 시작돼야 할 것 같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기획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진 <비공식작전>은 2022년 초 촬영을 시작했다. 철저하게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상업적인 기획이었을 터다. 넷플릭스 <킹덤>으로 주가를 높인 <끝까지 간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연출하고, 하정우, 주지훈이 출연하는 200억 대 영화가 관객을 호락호락 만만하게 봤을 리 없다.
 
실화에서 길어 올린 깔끔하고 세련된 상업영화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 ㈜쇼박스

 
출발은 실화다. 1986년 레바논 한국 외교관 납치 사건에 상상력을 더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납치 사건 자체가 기밀에 붙여졌었고, 1년 8개월이 지나서야 모종의 정치적 이유로 구출작전이 가능해졌다.
 
김성훈 감독도 '누가 어떻게 구출에 나섰는지'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웠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비공식작전>은 쉽다. 심플하다. 1980년대라는 '시대'와 레바논 베이루트라는 '배경', 액션의 원인과 동력을 제공하는 '피랍'과 '구출'이란 큰 기둥 요소들만 믿고 쫓으면 된다. 비슷한 소재를 공유하는 작품들과 비교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게 할 수 있을 만큼 확실히 다른 길을 간다.
 
그렇게 태어난 상상력의 산물이 외교관 민준(하정우)이고, 베이루트의 한국인 택시운전사 판수(주지훈)이다. 승진과 미국 발령을 꿈꾸는 민준은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면서 레바논에서 납치된 한국 외교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후 뉴욕이나 LA 발령을 목표로 외교관 구출 작전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게 된다. 야심도 있고 나름 상황대처 능력도 뛰어난 기지의 소유자다.
 
상영 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등장하는 판수는 '사기' 기질이 농후한 능청꾼이다. 월남전에 참전했다 나쁜 짓도 좀 하고 법망을 피해 베이루트까지 흘러 들어온 판수는 중반과 후반 모두에서 민준의 행보를 좌지우지하고 또 열심히 조력하는 '버디 영화'의 전형적인 두 번째 주인공이다.
 
외교부가 주도하고, 안기부가 훼방을 놓으며, 전직 CIA 요원이 얽히고, 레바논 테러단체가 개입한다. 애초 몸값을 요구하기 위해 인질을 납치하려 했지만 한국인 외교관을 일본인 외교관으로 착각한 것도 그 테러조직이었다. 여기에 부패한 레바논 군인들까지 돈냄새를 맡고 엉켜든다. 물론 이들을 가로지르는 액션의 주체는 하정우가 연기하는 민준이다.
 
꽤나 복잡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피랍된 국가 대 국가와 같은 까다로운 외교전이나 배배 꼬인 협상 과정은 없다. 판수의 훼방이나 테러단의 집요한 추적 모두 극을 이끌어가기 위한 설계일 수 있지만 그 과정 또한 단순 명확하고 납득할 만한 설정으로 채워져 있다. 피랍된 인질을 구출하고자하는 목표가 선명하기에 민준의 감정만 따라가면 그만이다.
 
그 과정에서 중동에 대한 묘사나 정서가 지적이 나올 만한데, 알란 파커 감독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필두로 걸작 첩보 미드 <홈랜드>까지 중동을 배경으로 납치와 테러가 소재인 레퍼런스들이 살짝 연상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1980년대 내전이 한창이던 시대와 공간적 배경 자체가 극의 동력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게다가 피랍과 테러의 역사도 실화인 것을.
 
영화 외적인 요인들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 ㈜쇼박스

 
<비공식작전>이 기울이는 관심은 뚜렷하다. 인질 구출 과정에서 첩보원이 아닌 '일반인' 외교관 민준이 처하게 되는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들과 그로 인해 펼쳐지는 액션들을 납득시키는 일 말이다. 폭탄 테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총탄이 날아다니며 테러범이나 군인들이 시시각각 위협하는 중동 한복판에 당신이 가 있게 됐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해병대에서 방위로 복무했다는 민준은 이처럼 관객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반인이다. 이 일반인이 그 중동 한복판에서 위협을 당하고, 어떻게든 몸값이 든 가방을 사수하려하며, 끝내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을 때, 그때야 비로소 국가란 무엇인가 혹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무책임과 방기에 대한 간결하지만 묵직한 언급으로 나아간다.
 
액션의 객체라 할 수 있는 민준의 동선을 따라잡다보면 자연스레 거시적인 주제와 맞닥뜨리게 되는 쉬운 구조다. 물론, 그 중간 외교부나 안기부에 대한 짤막한 묘사들로 관객들의 이해를 돕지만 김성훈 감독은 그 흔한 '국뽕'이나 '신파'라는 MSG가 끼어들 여지를 내어주지 않는다. 시종일관 깔끔하고 세련된 정서를 유지한다. 현명한 선택이다.
 
무엇보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찍었다는 자동차 액션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전성기 성룡 영화의 만듦새를 훌쩍 뛰어넘는다. 액션 장인 류승완 감독의 <모다디슈>의 클라이맥스 자동차 장면과 비교했을 때 극적 감정을 덜어내고 액션 자체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전체적으로 <끝까지 간다>의 긴장감을, <킹덤>의 속도감을 적절히 배합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비슷한 소재의 한국영화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배경이다. 100여 명의 현지 스태프와 몇 달간 고생 끝에 담아낸 모로코의 풍광은 충분히 이국적이고 매력적인데, 이미 <모가디슈>나 <교섭>을 본 관객들이 식상함을 호소 중이다. 고생한 제작진으로서는 관객들의 이러한 냉점함이 야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또한 어쩌겠는가. 막차를 탄 배급의 선택이 자초한 상황인 것을.
 
'각본 좋고 연출도 좋았어. 결과적으로 수작인데 기획이랑 캐스팅이 안일했음. 소재 너무 식상하고 캐스팅 조합 지겨워. 버디무비에서 배우 둘 조합 진짜 중요한데 하정우, 주지훈 조합이 궁금하지가 않음.'
 
어느 커뮤니티 사용자의 감상평은 의아하면서도 혹독했다. 서사도, 연출력도 인정하고 결과적으로 수작이지만 지겹고 궁금하지 않다. <신과 함께> 시리즈의 하정우, 주지훈 조합도 그 범주라는 평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듯싶은데, 냉정해진 관객들의 선택은 이미 끝난 듯싶다.
 
그리하여 잘 만든 수작이라는 전반적인 평가와는 전혀 다른 <비공식작전>의 흥행 결과는 한국에서 상업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꽤나 둔중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남기게 될 것 같다. 티켓값 인플레와 OTT가 점령한 시대, 한국 상업영화는 무엇으로 승부해야 하는가, 웰메이드를 넘어 어떤 소재와 상상력, 배우들의 조합으로 관객들을 극장으로 초대해야 하는가란 자문에 답을 내놓아야 하는 그런 시대가 됐다.
비공식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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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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