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밀수'라는 제목에 끌려 아무 생각 없이 영화표를 끊었다. 대개 끊기 전 미리 본 이들이 남긴 관람평을 대충 훑어보곤 하는데, 이번엔 일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감독이 누군지, 어떤 배우들이 출연하는지에도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영화 <밀수>를 관람했다.
밀수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끌린 이유는 있다. '밀수의 도시'로 악명 높았던 전남 여수에서 나고 자란 까닭이다. 어릴 적만 해도 주변에서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은 밀수가 가져온 호황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영화 속 시간적 배경이 70년대이니 여수에서 산 내 어린 시절과 정확히 겹친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와서 따져볼 순 없지만, 주변에서 일본제 라디오나 작은 가전제품들을 종종 볼 수 있었던 것도 밀수가 횡행했던 탓일 듯싶다. 그땐 국산 전자제품이 더 귀한 시절이었다.
당시 부두의 하역 노동자였던 아버지에게 전해 들었던 밀수 관련 이야기도 어렴풋이 뇌리에 남아있다. 밀수가 공공연했던 건 그만큼 통관 절차가 허술했고 온갖 비리가 난무했다는 뜻일 테다. 여수엔 세관원들의 숫자도 많았을뿐더러 하나같이 형편이 넉넉했다고들 했다.
세관원들에게 '오찌'만 건네면 무사통과됐다는 말도 기억난다. 어원은 알 길 없지만, 아버지는 뇌물을 무조건 '오찌'라고 불렀다. 학부모가 자녀를 잘 부탁한다며 교사에게 건네는 촌지도 그렇게 통칭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 곳곳에 뇌물과 촌지를 주고받는 문화가 공공연했다.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