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민 여자농구 감독
대한민국농구협회
대한민국 구기종목의 자존심을 자부하던 여자농구와 여자배구가 나란히 국제무대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경신하며 혹독한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정선민 감독이 이끈 여자농구국가대표팀은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2023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에서 최종 5위에 그쳤다. 1965년 첫 출전 이래 이 대회 역사상 한국이 4강에도 오르지 못한 것은 최초였다. 또 한국은 4위까지 주어지는 최종예선 출전티켓조차 놓치면서 2024 파리올림픽 본선진출도 좌절됐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 대표팀은 최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대회에서 12경기 전패로 마무리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전패를 기록하며 2021년 대회 막판 3연패를 포함하면 VNL에서만 무려 27연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여자농구와 여자배구는 한국 구기종목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부심이었다.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하계올림픽에서 구기종목 역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따냈고, 여자농구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구기종목 사상 첫 은메달을 기록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세계수준과는 거리가 있는 남자농구-배구에 비하여 한국 구기종목의 위상을 드높인 '스포츠 한류 원조 1세대'가 바로 여자농구-배구였다.
여자배구는 '여제' 김연경이라는 불세출의 스타와 양효진-김수지-박정아 등의 황금세대를 앞세워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3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과 두 번의 4강(2012 런던, 2021 도쿄)을 달성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여자농구도 2000년 시드니 4강, 2008년 베이징 대회 올림픽 8강을 비롯하여 아시아컵 역대 최다 우승(12회), 아시안게임 금메달 4회 등 2010년대까지만 해도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이어갔다.
하지만 2023년 현재 한국 여자농구와 배구의 국제적 위상은 한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여자농구는 아시안컵에서 2007년 인천(당시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는 2014년 인천 대회를 끝으로 아시아무대에서도 더 이상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한때 단골손님이었던 올림픽에서는 최근 4번의 대회중 3번이나 본선진출조차 실패했고, 유일하게 본선에 올랐던 2020 도쿄대회에서는 3전 전패로 최하위에 그쳤다. 농구월드컵에서는 2010년 체코 대회 8강진출을 끝으로 최근 3번의 대회에서 13-10-10위(합산 1승 10패)에 머물렀다.
배구는 김연경과 황금세대가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지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가파르게 몰락하고 있다. 2021년 도쿄올림픽 4강 진출로 14위까지 상승했던 여자배구의 국제랭킹은 어느덧 35위까지 추락했다. VNL 역상 승점을 한 점도 얻지 못한 팀+2년 연속(종전 기록은 2018년 아르헨티나의 1승 14패·승점 3)이라는 불명예 기록은 모두 한국이 유일하다. 심지어 승패를 떠나 이번 대회에서 수확한 세트 숫자도 고작 '3'에 불과했다.
여자농구와 배구는 올해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전망이 비관적이다. 일시적인 부진이 아니라 세대교체 실패와 얇은 선수층, 슈퍼스타의 부재로 인해 단기간에 전력을 반등시키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제는 세계무대는 고사하고 아시아에서도 일본, 중국같은 경쟁자들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게 우려스럽다.
팬들의 비판은 자연히 무능한 협회와 빈약한 인프라로 향하고 있다. 국내 학원가에서 여자 농구와 배구 고교팀은 20개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선수 엔트리를 정상적으로 채운 학교는 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러다보니 재능있는 유망주들을 육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빈약한 선수층으로 인해 스타급 선수들의 수요가 급증하고 '몸값 거품'까지 발생한다.
김연경(배구, 흥국생명)과 박지수(농구, KB스타즈)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 여자농구와 배구에서 해외 무대 진출하거나 국제무대에서도 통할만한 명성과 실력을 갖춘 월드클래스급 선수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농구-배구 대표팀은 현재 주전급 선수 한두 명만 다치거나 부진해도 정상적인 경기운영이 안 될 만큼 선수층이 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