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현재를 지배한다는 생생한 역사적 실증사례
 
언뜻 쉽게 감이 안 오는 이 영화의 제목은 바로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206개의 뼈를 의미한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섬뜩한 제목을 붙인 걸까 궁금해질 법하다. 영화는 4년에 걸쳐 사회단체와 자원봉사자가 중심이 된 시민발굴단의 유해매장지 발굴활동을 끈덕지게 따라다닌 감독의 결과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광범위하게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매장지로 공인된 장소는 전국 168곳에 달하지만 그중 공식 조사와 발굴이 이루어진 곳은 십여 곳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 많은 이들이 당혹해할 테다. 왜 이런 방치가 이뤄지고 있는 걸까? 정부는 대체 뭘 하는 걸까? 하지만 세상물정(?) 좀 아는 이들이라면 금방 납득이 갈 테다.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한국사회 기득권 집단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터뷰 중심의 해설을 통해 왜 시민발굴단이 이 공적 책무를 떠안게 되었는지 풀어준다. 극심한 좌우익 대립의 혼란 속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은 남북 양쪽에서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을 절멸시켜버렸고, 내전 속에서 권력을 쟁취한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알리고 싶을 리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게 한국전쟁 전후로 학살된 이들의 유가족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빨갱이 가족'으로 연좌제에 시달려야 했다. 고작 반세기 전 일이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쫓겨나자 '양민학살진상특위'가 구성되어 조사에 들어가지만 이듬해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자신들이 연루된 치부를 들추려는 시도를 탄압한다. 이제야 오랜 한을 풀 수 있겠구나 하며 특위 활동에 참여했던 유가족은 졸지에 이적단체 누명까지 뒤집어쓴다. 그런 학습효과 때문에 그 후로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1987년 6월 이후 민주화가 시련 속에서도 대세가 되기 전까진 그랬다. 이후로도 한참 걸려 2005년 정부 차원에서 1기 '진실화해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 이때 앞서 언급한 것처럼 10여 곳 남짓한 학살 매장지가 발굴되었다. 하지만 5년간의 활동기간은 너무나 짧았기에 전체 예상치의 일할도 채우지 못한 채 활동은 종료되고 말았다. 이후로는 오롯이 시민발굴단의 몫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부가 하지 않으니 민간이 하는 게 어떠냐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권력이 주관해 발굴하는 것과 아무런 법제도적 강제력을 보유하지 못한 시민발굴단의 활동은 천지차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고난에 찬 작업을 수행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1기 진실화해조사위원회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국가기관의 활동이 턱없이 모자랐음이 드러난다. 정부 소속 위원회 활동일 때와 천양지차일 처우와 재량에도오직 책무의 엄중함에 사서 고생한 이들의 활동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이들이 2014년부터 활동한 덕분에 2020년, 2기 진실화해조사위원회가 출범할 수 있었다. 영화는 충실하게 시민발굴단의 활동을 스크린에 옮겨 그들의 드러나지 않은 공헌을 소개하려 한다.
 
시민발굴단의 활동기록
 
"206: 사라지지 않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206: 사라지지 않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충청북도 청주시 남보면 고은리 여우굴
-세종특별시 연기군 산울리 은고개 비성골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용두1리
-충청북도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중리 설화산


< 206: 사라지지 않는 >은 이상 5곳의 충남북 지역 유해매장지 조사와 발굴 현장 풍경을 담담히 기록한다. 감독은 4년여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 시민발굴단의 활동 모습을 우직하게 카메라로 기록한다. 실제로 촬영 기간보다 발굴단의 일원으로 함께 흙을 파내고 일을 거들던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고고학 유물 발굴 현장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따져보면 이들의 조건은 극악에 가깝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도, 학술적 업적을 기대하며 쏟아지는 후원과도 거리가 한참 멀다. 오히려 이들의 자발적 활동을 꺼려하거나 심지어 발굴단 작업이 중단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훨씬 많을 테다.
 
이미 70년이 넘어가는 세월 탓에 철저히 은폐된 학살의 흔적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렵게 현장을 찾아내더라도 보존 상태가 너무 극악한지라 애타게 찾던 유가족들의 품으로 온전한 유해가 돌아오는 경우도 드물다. 대개 산산이 조각난 뼛조각들은 희생자의 유류품들과 뒤섞여 제대로 식별조차 어렵다. 그렇게 수고한 노력에 비해 뾰족하지 않은 결과를 예견하면서도 왜 시민발굴단은 이리도 고단하고 (희생자 유가족을 제외하면)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을 계속 이어가는 걸까? 그런 의문에서 출발하는 영화는 시민발굴단의 동기와 진심을 관객에게 전달하려 애쓴다. 유해를 찾아낸다는 것의 의미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들의 노력이 어떤 공감을 획득하게 되는지 잘 표현한 덕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장례의 행위적 기원과 문명사적 의미로 연결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지독히 정적인 전개를 취한다. 감독 본인부터 촬영대상의 무게감과 역사의 중력에 깊숙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테다. 물론 실제 발굴현장은 종교행사처럼 내내 무겁지만은 않았다는 게 현장 스케치에서 드러나지만 말이다. 발굴현장 스케치와 시민발굴단 인터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주 진행축선은 이런 발굴 작업현장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끝도 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해 보인다. 시민발굴단과 자원봉사자들은 마치 봉쇄수도원에서 묵언 수행하는 수도자인 양 그저 아무 대가나 보상은커녕 희생과 헌신으로 일관하려는 태도로 매진한다. 이들은 모종삽과 전지가위, 빗자루와 솔을 든 채 각자의 자리에서 파고 또 파며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흔적을 찾는다. 그렇게 묵묵히 일하는 광경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다가 일순간 무엇인가 발견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참고 견뎌온 관객들은 한층 더 발굴단이 찾아낸 것들에 대해서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여기에서 그저 똑같아 보이는 발굴현장이지만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각자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 대한 해설이 이어진다. 어떤 곳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혼란기에 '예비검속'이란 표현으로 실행된 보도연맹 가입자, 즉 북한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고 의심받는 좌익 전력자들에 대한 속전속결 제거의 자취다. 또 다른 현장은 낙동강까지 밀려났다 구사일생으로 영토 수복 후 북한군 점령 치하에 있던 지역에서 속칭 부역자를 색출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전자는 말 그대로 학살을 효율적으로 수행한 결과로 특정 장소에 사전에 계획된 대로 대량 처형 후 신속하게 매장이 이뤄졌다. 말 그대로 시체가 켜켜이 쌓여 있다. 반면에 후자는 지역 내 제보자들에 의해 뒤죽박죽으로 사감이 실려 신고당한 이들을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살상했기에 보다 즉흥적이고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그런 '악마적 디테일'이 발굴작업에 매진하던 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데 듣다 보면 뒤통수를 맞은 듯 아찔해진다.

한때 희생자들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착용했던 옷이나 신발, 여타 소지품들이 세월의 풍화 속에 언뜻 보면 무엇인지 짐작도 되지 않건만 발굴단은 신기하게 잘 찾아낸다. 그렇게 느껴져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 발굴단의 손끝 하나하나가 일종의 의식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이 시민발굴단 활동을 결심하게 된 각자의 배경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서서히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대체 왜 이런 참극이 반세기 전에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일까. 감독이 구축하려는 주제가 서서히 머릿속에 새겨진다.
 
고(故) 김말해 할머니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연작의 정체성
 
"206: 사라지지 않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206: 사라지지 않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쉽게 도전하기 힘든 한국현대사 소재에 대한 감독의 성찰은 곧바로 전작인 <말해의 사계절>과 그 주인공 김말해 할머니의 이야기로 직결된다. 감독은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라는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사회참여정신을 간직한 젊은 작가집단 일원으로 한창 고압 송전탑 공사에 저항하던 밀양 산골을 찾았었고, 그곳에서 김말해 할머니와 만난다. 거대한 현대사 주제를 다뤘지만 영화는 감독의 지극히 사적인 경험과 이어져 있는 것이다.
 
처음엔 좀 특이해서 촬영하는 재미가 있을까 접근했을 이 까칠한 할머니와 감독은 인터뷰와 촬영을 거듭하면서 마치 친할머니와 손자처럼 가까워진다. 어렵게 마음의 문을 연 김말해 할머니가 감독에게 들려주는 사연은 곧 윤제균 감독의 '천만 영화' <국제시장>과는 사뭇 다른 결로, 마치 달의 어두운 뒷면처럼 또 하나의 한국현대사를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런 주인공의 사연을 옴니버스 영화 <밀양, 반가운 손님> 속 단편 버전으로 담았던 감독은 아쉬움에 추가 작업을 이어간다. 그 결실인 <말해의 사계절>은 감독의 첫 장편으로 완성된다.
 
처음엔 밀양송전탑 투쟁현장의 '을'로 예상했던 김말해 할머니의 인생사연은 곧 < 206: 사라지지 않는 > 속 유가족들로 확장된다. 일제강점기 말, 태평양전쟁에 징용되거나 위안부로 끌려갈 상황에서 소녀 적 김말해는 생판 얼굴도 모르던 남편과 조혼을 치른다. 그 시절엔 뭐 다 그랬으니까 하고 넘어가기엔 출발부터 참 기구하다. 그리고 해방 직후 혼란기에 줄을 잘못 선 바람에 사상이나 이념과 무관하게 살던 남편을 보도연맹 학살로 잃는다. 물론 시체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희생자 유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물질적 궁핍과 함께 가해자들이 힘주고 사는 고향에서 괄시와 차별로 일생을 보낸다. 그 와중에도 한국현대사의 잔인한 형벌은 90을 바라보는 말년까지 부지런히 그를 괴롭힌다.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해방전후의 혼란, 한국전쟁의 참상을 거쳐 빈곤과 멸시를 딛고 자녀를 홀로 책임지던 생활고, 자식을 통해 간접 체험한 베트남전쟁, 경제성장의 수혜에서는 배제된 채 강제개발에 핍박당하는 말년까지 90년 수난사는 <말해의 사계절>에 오롯이 압축된다. 감독은 그의 경험담이 단지 지독하게 운수 나쁜 개인의 특수 사례일 리 없다는 확신을 품고 작업의 확장을 도모한 것이다.
 
그런 전후 배경을 인식해서 그런지 영화는 의도적으로 <말해의 사계절> part.2처럼 묘사된다. 김말해 할머니의 지난한 인생을 조명하듯 감독은 처음엔 발굴단 활동가들의 사연부터 시작해 점차 유가족들의 설움을 조명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끌고나간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내내 감독과 할머니와의 인연을 짚어가며 손 편지로 대화하듯 이야기를 풀어내간다.

그리고 영화 작업 말미에 할머니가 작고하면서 이 영화는 김말해 할머니를 기리는 감독의 추모작업으로서 특별한 성격을 추가하게 된다.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 성격 때문에 가능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극적 완성의 전말이다. 그런 필연과 우연의 조화된 결과물이 < 206: 사라지지 않는 >이니 2편의 영화는 허철녕 감독의 한국현대사 관련 연작으로 봐도 무방할 테다. 그래서 개봉은 이뤄지지 않았던 <말해의 사계절>과 이번에 개봉하는 < 206: 사라지지 않는 >이 함께 상영 기획되어야 온전한 작품 감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운수 나쁜 지엽적 사건을 넘어 보편적 '제노사이드'와 통하다
 
"206: 사라지지 않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206: 사라지지 않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다시 본편으로 돌아와서, 꼼꼼하고 간절하게 유해를 찾아내 손질하던 손의 주인들이 한명씩 대표로 카메라 앞에서 얼굴과 신분을 공개하는 순간은 마치 다 비슷비슷해 보이던 발굴현장 각각의 특성이 확인되던 찰나와 조응한다. 연령대도 성별도, 참여하게 된 동기도 전부 제각각인 그들이 어떤 경로로 이 고단하고 보상도 기대하기 힘든, 심지어 심적 내상에 시달릴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게 되었는지 들려주는 고백들은 겉보기엔 그저 무겁고 단조롭기만 한 영화에 다양한 결을 부여해준다. 전문가 그룹에 속하는 1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과 위원들부터 희생자 유가족들, 젊은 대학생 자원봉사자까지 관통하는 맥락은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한국전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넓게는 해방전후 비극에 포함되는 제주 4.3은 물론 1980년 5.18까지 근현대사의 비극들 속에서 '학살'은 우발적인 게 아니라 부수적으로 따라붙는 반인륜행위라는 게 자연스럽게 동의된다. 근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에서 꾸준히 천착하는 주제의식과 허철녕 감독의 작업이 직결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감독은 보다 더 보편적인 문제제기로 한국전 시기 양민학살을 자리매김하려 도전한다. 그를 위해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의 기억을 소환한다. 하필이면 진상조사활동이 1차로 무력화된 당시에 진행된 아이히만 재판의 대한뉴스 보도영상은 한국전 민간인 학살의 근본적 의미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소리 없이 웅변하고 촉구한다.
 
"206: 사라지지 않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206: 사라지지 않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영화는 선정적이긴 해도 대번에 관객의 이목을 잡아끌기 좋은 과잉된 표현은 극도로 자제하려 한다. 희생자의 유해, 특히 두개골이 숱하게 등장하지만 카메라의 태도는 애도와 연민의 자세에 충실하다. 같은 장면이라도 감독의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비칠 수 있다는 좋은 예시다. 그럼에도 한때 생명을 가진 인간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한 채 야산에 파묻혔던 유해는 처연함과 함께 같은 인간이 인간을 별 명분이나 필연성도 없이 집단학살할 수 있다는 행태에 전율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인식의 순간에 우리가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대학살의 결말을 확인하는 <킬링필드>, 그리고 나치독일의 대학살 결과인 (심지어 지금도 발견되는 사람의 뼈로 가득한 지층이 존재하는) 수많은 홀로코스트 기록영화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와 이라크, 보스니아 등 불과 얼마 전까지, 심지어 현재진행형인 민간인 학살의 충격과 이 영화 속 배경은 똑같은 이해로 받아들여지게 될 테다.
 
관객을 성찰과 수도의 장으로 이끌던 영화는 단 한 순간, 시민발굴단이 마련한 공간에 가득 쌓인 유해의 전모와 함께 일순간 격렬해진다. 조촐한 합동 위령제 장면 이후 몇몇 유해와 유류품이 클로즈업되면서 한국전쟁부터 현재에 이르는 압축현대사의 소음이 찢어지게 보는 이의 뇌리를 습격한다. 관객은 순간 흠칫 놀라며 그저 과거사로 치부하며 늘어졌던 인식에 깊숙한 생채기를 간직하게 될 테다. 본 작품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결단코 < 206: 사라지지 않는 >에 '영화적 재미'라는 수식어 표현은 부적절하다. 하지만 그 고통에 전이당한 후 마치 땀을 쑥 뺀 이후의 개운함 같은 감정이 영화를 소화한 개개인에게 엄습해올 테다. 강요당한 침묵과 망각의 장막을 조금이나마 걷어내고 억울한 원혼들이 늦게나마 해방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말이다.
 
"직업도, 배경도 다른 우리의 공통된 목표는 오직 하나.
인간을 구성하는 206개의 뼈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시민발굴단의 단순명쾌한 활동목표는 이런 고결한 참여조차 이념 대립 연장선으로 폄하하고 왜곡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실천하고, 이에 동의한 감독이 기록으로 참여해 결실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이제 진정한 과거사 청산을 위해 영화를 보고 응답해야 할 일만 남았다.
 
<작품정보>
 
206: 사라지지 않는 206: Unearthed
2021|한국|다큐멘터리
2023.06.21. 개봉|96분|12세 관람가
감독/촬영 허철녕
출연 김장호, 박선주, 안경호, 홍수정, 노용석,
임영순, 김소현, 김나경, 김광욱, 故 김말해
PD 조소나
편집 이학민
조연출 권순현
협력PD 허윤수
음악 이민휘
제작 필름소나
배급 찬란
 
2021 26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
2021 26회 인천인권영화제 개막작
 
2021 47회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2022 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 경쟁
2022 13회 타이완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22 44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206: 사라지지 않는 말해의 사계절 허철녕 감독 한국전쟁 제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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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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