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들이 말할 때까지>돌과 할머니는 지난 70여 년을 그렇게 버텨내고 있다. 격동의 현대역사의 진실이 언제쯤이면 상처를 통한 타인의 공감를 넘어 포개어져 진정한 대화로 진영과 이념을 넘어, 우리민족의 상생과 번영, 인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존엄'의 가치까지 함께 말할 수 있을까.
디아스포라영화제 사무국
성선설을 믿고픈 사람에게 자연은 인간이 꿈꾸는, 닮고 싶은 세계다. 순수성과 유연함에서 오는 부드러움을, 때론 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자연은 인간이 될 수 있어도 인간은 그동안 자연이 되지 못했다. 날 것의 자연계에서 뛰쳐나와 인간계를 만들겠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추잡한 이념은 약탈의 야만성을 넘어 학살이라는 비인간성으로 표출됐다.
블랙 스크린 공간에 띄워진 제주 4․3 희생자 북촌리 위령비의 문구 '그 크나큰 슬픔의 권능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르게 다스려 주소서'는 무지와 무능의 육지 것에 불과한 영원한 타자 '나'를 다시 침묵시킨다. 김경만 감독의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양농옥·박순석·박춘옥·김묘생·송순희 다섯 할머니 이야기로 4.3의 크나큰 슬픔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전한다. 동굴 안에서 밖을 향하는 한 컷의 이미지만으로 어둡고 은밀한 곳에 숨겨진 그들의 깊은 상처는 물론 그 상처가 개인을 넘어 인류를 향한 밝은 빛으로 발화되기를 바라는 희망까지 담았다.
이어지는 장면은 파도가 치는 바닷가 해변, 여기저기 놓인 돌덩이. 돌은 견뎌내고 있다. 거대한 바다를 내달리다 해안가 육지에 이르러 어느새 새하얀 물살의 파편들로 사라져 가는 자연의 바다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삭히고 깎인 표면이 인간의 DNA가 되어 역사로 남기를 바라듯, 절대 잊을 수 없는 진실의 목격자로서 돌들은 파도와 거센 바람 앞에 요동치며 울부짖는다.
1948년 당시 스무 살 내외였던 다섯 할머니는 4.3 참상의 진실을 이끌어 내준 수형인명부와 연결된다. 왜 그들이 군사재판을 받고 좁은 형무소에 갇혀야 했는지, 그것이 과연 합당한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슬픈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게 됐다.
김 감독은 7년 7개월간 벌어진 4.3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이 아닌 5인의 여성이 감당해 낸 개인적인 삶에 집중한다. 이때 증언하는 할머니뿐 아니라 제주 4.3 도민연대의 수형인 면접조사원과 그들의 질문도 비중 있게 다룬다. 증언의 내용에 더해 증언을 담는 역사 기록 과정의 어려움과 가치를 입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다. 감당하기 힘든 역사의 무게 앞에서도 독립적이었던 다섯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은 4.3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