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예능 <사이렌: 불의 섬> 한 장면.
넷플릭스
작정하고 싸워 이겨라!
<사이렌>은 여섯 팀이 작정하고 싸워 이기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몸을 쓰는 직업군(운동, 스턴트, 군인, 경찰, 소방, 경호)에 속하는 여자 24인이 6조로 나뉘어, 각 팀의 진지 내 깃발을 획득해 승리하는 게임이다. 사이렌이 울림과 동시에 각 팀원들은 기지 내 깃발을 수호하거나 빼앗기 위해 치열한 기지 전을 펼친다.
각 팀의 면면을 보고 이들이 팀워크를 쌓아가는 모습은 흥미롭다. 무작정 군인다움을 지향한 채널A·ENA <강철 부대>식의 위계적 팀워크와는 구별되는 서로를 돌보는 사려 깊음과 다정함이 깃들어 있다. 팀을 단합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기지전 중간에 치러지는 아레나 전도 흥미진진하다. 공개된 장소에 한데 모여 힘을 겨룬다는 점은 각 팀뿐 아니라 팀원의 기량까지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정보전이 된다. 이를테면 장작패기나 우물파기에서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근력과 집중력 그리고 지구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땀이 비 오듯 흐르건 말건, 몸이 흙 인절미가 되건 말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끼로 장작을 패고 삽질로 우물을 파내는 집요함에서, 시청자는 몸을 씀으로써만 이를 수 있는 희열에 같이 도달하게 된다.
삽질에 있어 단연 군인이 우월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삽질하면 소방대원 아닙니까"라는 소방 팀원의 발언은, 이들의 업무가 명시적인 불 끄기나 긴급 구조 외 이를 수행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동을 수반해야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체력의 열세로 우물의 깊이가 점차로 달라지더라도 끝까지 삽질을 멈추지 않은 팀들의 열의도 보기 좋았다. 중요한 게 이기는 것만은 아니다. 잘 지는 것도 얼마든지 중요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
기지전이라는 서바이벌의 속성 상, 어느 팀이 이 조건에 가장 부합할까를 생각할 때, 가장 견제되는 팀은 단연 군인 팀일 것이다. 실전 훈련 팀이라는 속성은 다른 팀에 심리적 부담을 주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묘미는 군인 팀의 이러한 속성이 회피를 부른 게 아니라 오히려, "센 놈이랑 붙자, 그게 멋있지"라며 조속히 제거할 대상으로 낙점되게 한 점이다. 약한 팀을 굴복시켜 얻는 이점보다 센 팀을 공격해 얻을 심리적 안정감을 우선한 전술은, 이것이 과연 유리한 전술인가는 차치하고, 이른바 싸움의 상식이라 여겨지는 약육강식 전술을 전복시키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군인 팀의 파이팅도 대단해서 다른 팀에게 견제 받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들도 어느 정도는 이 서바이벌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훈련받은 사람들로서 단연 전술적 측면(매복을 통한 정보 습득이나 기지 침투 시의 대담함 등)은 돋보였다. 하지만 긴장도는 다른 팀들보다 확연히 높았다. 야전에서 습한 예민함 때문인지, 아니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군인정신의 압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지전이 종반에 이르면서 팀원들도 조금씩 예민해졌다. 군인 팀의 기지 수호가 약간 불필요한 신경전을 유발하면서, 개별 승패를 결정하는 등에 지고 있던 깃발을 누가 먼저 뽑았는가를 실랑이하느라 기지전이 중단되기도 했다. 팀워크가 유난히 좋았던 소방 팀이 승기를 잡으며 군인 팀이 위기에 처했다.
최종 승리는 예상과 달리 의외의 팀이 가져갔다. 바로 이 뜻밖의 이벤트가 어쩌면 <사이렌>의 백미 아니었을까.
여자들의 서바이벌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