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은 없었다. 전신 시절부터 무려 14년간의 기나긴 동행은, 끝내 가장 씁쓸한 모양새의 새드 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프로농구 대구 한국가스공사가 지난 6월 1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유도훈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또한 신선우 총감독, 이민형 단장, 김승환 수석코치 역시 유 감독과 더불어 모두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공석이 된 감독 대행은 당분간 강혁 코치가 맡을 예정이다.
 
이러한 가스공사의 과감한 결단은, 전신인 '전자랜드의 유산'으로 여겨지는 유도훈 시대와의 결별, 그리고 '학연농구'의 청산이라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가스공사는 2021년 인천 전자랜드 구단을 인수하여 대구로 연고지를 옮겨 출범했다. 당시 전자랜드의 선수단이 고스란히 유지됐고 유도훈 감독도 그대로 지휘봉을 계속 잡으며 연속성이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정영삼의 은퇴와 정효근(안양 KGC)의 이적에 이어, 유도훈 감독 체제가 무너지면 가스공사는 2년 만에 전자랜드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감동랜드' 만들었던 유도훈 감독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유도훈 감독 1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구 한국가스공사 농구단 입단식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가스공사 유도훈 감독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유도훈 감독 2022년 6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구 한국가스공사 농구단 입단식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가스공사 유도훈 감독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유도훈 감독은 전자랜드-가스공사로 이어지는 구단 역사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중 핵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유 감독은 2009년 코치로 인천 전자랜드에 부임한 이후 감독대행을 거쳐 가스공사에서의 마지막인 지난 2022-2023시즌까지 무려 14년간이나 한 팀을 지켜왔다. 유재학 전 감독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18년 만에 현대모비스 총감독 자리로 물러나며 지난 시즌부터는 유도훈 감독이 '현역 중 단일팀 최장수 감독'의 타이틀을 물려받기도 했다.
 
유도훈 감독은 KBL에서 감독 통산 805경기를 지휘하며 403승 402패, 승률 .501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 중 안양 KT&G(현 KGC, 39승 34패) 시절을 제외하면, 364승(승률 .497)을 전자랜드-가스공사에서 거뒀다. 구단 역사상 최장수 사령탑인 유 감독은 최다승을 비롯하여 최다경기(732경기), 최다패(368패), 사상 최초의 챔피언전 진출(2018-2019시즌) 등 구단의 각종 기록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26년 프로농구 역사상 400승 고지에 오른 감독은 유도훈 감독을 포함하여 유재학(724승), 전창진(530승), 김진(415승) 감독까지 단 4명 뿐이다. 한 팀에서 10년 이상 지휘봉을 잡은 감독도 유재학-허재에 이어 유도훈 감독까지 단 3명에 불과하다.
 
전자랜드는 사실 유도훈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만년 중하위권을 전전하는 그저 그런 팀이었고, 팬들 사이에서의 이미지도 그리 좋지 않았다. 가스공사에 인수되기 전에도 여러 차례 매각 위기에 놓이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유도훈 감독은 정식 사령탑으로 전자랜드에서 첫 풀시즌을 소화한 2010-2011시즌부터 가스공사에서의 2022-2023시즌까지 13년간 팀을 10번이나 6강 플레이오프로 이끌며 '봄농구 단골손님'으로 이끌었다. 안양 KT&G 시절을 포함하면 PO 진출은 12회로 늘어나고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것만 6회였다.
 
2011-2012시즌 정규리그 준우승, 2014-2015시즌 6위로 PO 막차를 타고도 3위 서울 SK를 스윕한 '언더독' 돌풍, 2018-2019시즌 구단 역사상 최초의 챔프전 진출(준우승) 등 숱한 명장면을 남기며 한때 '개그랜드'라고 놀림받던 전자랜드의 이미지를 '감동랜드'로 바꾸어놓은 것은 분명 유도훈 감독의 가장 큰 업적이다.
 
또한 미디어 친화적인 행보로 감독이 경기 중 마이크를 차거나 라커룸을 공개하는 데도 앞장섰으며, 작전타임 때는 '유행어 제조기'로 불리우며 "신명호는 놔두라고" 등 무수한 어록들을 양산해내기도 했다. 비록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전자랜드 시절까지의 유도훈 감독은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명장'으로 인정받았다.
 
달라진 평가, 씁쓸하게 끝난 마지막
 
하지만 장기집권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일까. 가스공사 시절로 접어들면서 유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돈없는 구단' 이미지가 강했던 전자랜드와 달리, 가스공사에서는 4강권 이상의 전력과 구단의 대대적인 지원 속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창단 첫해인 2021-2022시즌 6강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기대치에 걸맞는 성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2022-2023시즌에는 이대성과 벨란겔 등 호화 전력을 보유하고도 고작 9위로 꼴찌에 가까운 성적에 그치며 봄농구 진출조차 실패했다.

여기에 작전타임마다 정신력만 강조하는 구시대적인 리더십, 현대농구의 트렌드에 뒤처진 낡은 전술에 대한 비판이 늘어나며 유 감독은 선수단과 팬들에게도 차츰 인망을 잃었다. 400승 이상을 거둔 감독 중 우승 경력이 전무한 무관은 유도훈 감독이 유일할 만큼, 과연 고액연봉(4억)에도 팀을 정상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정말 있는 감독인지 회의적인 시선이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 가스공사 시대에 접어들며 유도훈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특정 카르텔이 구단운영을 독점했다는 '학연-인맥 농구'에 대한 의혹이었다. 초대 구단주였던 채희봉 전 가스공사 사장, 신선우 총감독, 이민형 단장은 유도훈 감독과 모두 '용산고 동문'이라는 학연으로 엮여 있다.
 
특히 총감독은 다른 구단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들고, 있어도 형식적인 명예직에 가까운 자리이기에 선임 당시부터 역할의 실효성에 의구심이 붙었다. 그런데 신선우 총감독은 가스공사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데다 WKBL 총재시절의 각종 과오로 인하여 농구계에서의 평판도 좋지 않던 인물이었다. 신선우 총감독과 유도훈 감독은 대전 현대-KCC에서 감독-선수 및 코치로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사제지간이라는 특수한 관계에 있었다. 당시 가스공사는 현장 농구인 출신들을 통한 '전문성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현실은 오히려 팀성적 추락과 함께 '낙하산 인사와 제 식구 챙기기' 논란에 더욱 불을 붙였다.
 
모기업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많은 직원이 억대 연봉을 수령하는 방만한 경영이 도마에 오르며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채희봉 전 사장은 지난 2022년 10월에 사임했고, 가스공사는 최근 비상 결의대회를 통해 2급 이상 임직원들의 올해 임금 인상분 전부를 반납하고 프로농구단 운영비를 전년 대비 20% 줄이겠다는 자구책을 발표했다.

유도훈 감독을 비롯한 신선우 총감독-이민형 단장 농구단 수뇌부 전원 해임도 그 연장선으로 이어진 문책성 인사로 해석된다. 가스공사가 신임 단장으로 내부 임원인 김병식 홍보실장을 선임하면서 '농구단의 효율적 의사 결정 및 합리적 선수단 운영'을 명분으로 내세웠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다만 가스공사가 유 감독을 비롯한 해임 인사들의 위약금 지급 여부를 확정짓지 않은 것은 법적 다툼의 소지를 남겼다. 유도훈 감독은 2024년 5월 31일까지 가스공사와 계약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통상적으로 계약기간이 남은 인사를 중도에 경질할 경우 계약기간 종료 시까지 남은 연봉의 일부 또는 전액을 보전해주는 게 관행이었다. 그러나 가스공사는 애초에 이들의 선임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위약금을 지불하는 데는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랜드 시절만 해도 수많은 신화를 이뤄내며 명장으로 추앙받던 유 감독이, 가스공사에서는 불과 2년 만에 불미스러운 모양새로 물러나게 되며 '흑역사'로 추락한 것은, 농구팬들에게도 씁쓸함을 남긴다. '사람은 머무는 순간만이 아니라, 떠나는 순간에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격언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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