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준, 1844일만의 승리 2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7대 5로 승리한 가운데 1844일만에 승리를 추가해 통산 130승을 달성한 두산 장원준이 웃고 있다.

▲ 장원준, 1844일만의 승리 2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7대 5로 승리한 가운데 1844일만에 승리를 추가해 통산 130승을 달성한 두산 장원준이 웃고 있다. ⓒ 연합뉴스

 
장원준은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 투수 중 한 명이다.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로에 데뷔하여 두산 베어스를 거치며 8년 연속 10승(2008-2017), 좌완 역대 4번째 100승 돌파 등 놀라운 기록들을 남겼다. 특히 두산에서는 2015년과 2016년 한국시리즈 2연패에 주역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장꾸준'이라는 별명처럼 동시대를 풍미한 류현진이나 김광현, 양현종 등에 가려져 압도적인 면모는 부족했지만, 기복없고 꾸준한 안정감은 장원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하지만 2018년부터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며 장원준은 급격히 존재감을 잃어갔다. 2018년 5월 5일 프로 통산 129번째 승리를 끝으로 장원준은 4년간이나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선발 보직에서 밀려났고 이후 불펜과 2군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사실상 은퇴 기로에 몰리는 듯했다.
 
5월 23일 두산과 삼성의 경기가 벌어진 잠실구장, 놀랍게도 두산의 선발로 마운드에 선 것은 바로 장원준이었다. 시즌 첫 1군 콜업이자 마지막 선발 출전이었던 2020년 10월 7일 문학 SK전 이후로 958일, 홈경기로 국한하면 무려 1768일 만의 선발 등판이었다. 2021년 32경기, 2022년 27경기에 출전했으나 모두 구원 투수로만 등판했고 승리와는 인연이 없었다.
 
장원준은 지난해 27경기 1패 6홀드 평균자책점 3.71을 기록하여 불펜 투수로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8월 2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0이닝 1실점으로 부진한 피칭을 보인 이후 1군에 더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은퇴가 유력해보였지만, 새로 부임한 이승엽 신임 감독이 장원준과의 면담을 통하여 현역 연장 의사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잡았다.
 
장원준 내치지 않은 이승엽의 '믿음의 야구'
 
이승엽 감독과 장원준 2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두산이 승리, 통산 130승을 달성한 장원준이 이승엽 감독의 축하를 받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 이승엽 감독과 장원준 2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두산이 승리, 통산 130승을 달성한 장원준이 이승엽 감독의 축하를 받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승엽 감독은 '믿음의 야구'를 신봉하는 지도자이자 최대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이 감독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극심한 부진을 겪었음에도 끝까지 4번타자로 신뢰한 김경문 대표팀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며 한일전 역전 투런홈런으로 반전을 일궈낸 바 있다. 또한 2012년에는 일본에서 하락세를 걸으며 은퇴 기로까지 몰렸던 상황에서 당시 류중일 삼성 감독의 배려로 삼성에 복귀하며 화려하게 부활하고 선수생활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영광과 좌절을 모두 맛보며 벼랑 끝에 몰린 베테랑의 심경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던 이 감독은, 과거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장원준을 내치지 않고 도전 의지를 존중했다.
 
물론 무작정 믿음을 준 것은 아니었다. 장원준은 올 시즌 시범경기에서 4경기 평균자책점 4.50(4이닝 2자책점)을 기록했지만 결국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퓨처스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한 장원준은 4경기 1승 1패 평균자책점 3.60(20이닝 8자책점)을 기록했다.
 
사실 퓨처스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었지만 이승엽 감독은 구위가 나쁘지 않다는 보고를 받고, 곽빈과 딜런 파일의 부상으로 공백이 생긴 선발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베테랑 장원준을 과감하게 호출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최고참 투수에게도 오랜만의 선발등판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긴장된 기색이 역력했다.
 
우려한 대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피칭은 아니었다. 장원준은 두산이 1-0으로 앞서던 2회 내리 4점을 내주며 위기를 맞이했다. 주중 3연전의 첫 경기이기도 했고, 일반적인 대체선발이라면 퀵후크를 감행하여 불펜을 가동해도 이상하지 않을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엽 감독은 의외로 장원준을 내리지 않았다. 만일 두산이 이날 경기에서 패했다면 이승엽 감독의 투수운영은 많은 비판을 받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상대가 하필 이승엽 감독의 현역 시절 친정팀인 삼성이었기에 경기 결과에 더욱 민감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승엽 감독의 뚝심에 두산 타자들과 장원준이 응답했다. 두산 타선은 3회말 5점을 뽑아내는 빅이닝으로 승부를 뒤집었고 14안타 7득점으로 장원준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장원준은 결국 선발투수의 기본 덕목인 5이닝을 채웠고, 2회 이후 더 이상 추가 실점 없이 승리투수의 조건을 갖추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장원준의 시즌 첫 선발등판 기록은 5이닝 7피안타 4탈삼진 4실점. 장원준이 5이닝 이상 투구한 건 2018년 6월 20일 잠실 넥센 히어로즈전(5이닝 6실점) 이후 1798일 만이었다. 두산 불펜진은 4이닝을 1점으로 틀어막으며 장원준의 승리를 지켜냈다.
 
장원준 승리 '또다른 주역' 양의지
 
축하해 2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두산이 승리, 통산 130승을 달성한 장원준이 양의지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 축하해 2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두산이 승리, 통산 130승을 달성한 장원준이 양의지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장원준의 최고구속은 140km대 초반에 그쳤지만 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으로 삼성 타선의 타이밍을 빼앗았고, 볼넷은 단 1개도 내주지 않았다. 불과 70구만으로 5회까지 끌어올 만큼 노련하고 효율적인 경기운영이 돋보였다. 팬들은 마운드를 내려온 대투수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줬다.
 
그리고 장원준은 이날 두산이 7-5로 승리하며 무려 1844일 만의 승리 투수이자 개인 통산 130승의 대업을 달성하는 기쁨을 누렸다. 130승은 KBO리그에서 장원준을 포함하여 총 11명의 투수만 달성한 대기록이다. 현역 선수 중 13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장원준과 양현종(161승·KIA 타이거즈)과 김광현(152승·SSG 랜더스)까지 3명뿐이다. 또한 장원준은 37세 9개월 22일에 130승을 채워 임창용(42세 3개월 25일)에 이은 역대 두 번째 최고령 130승 투수가 됐다.
 
또한 장원준의 승리에 기여한 또다른 주역은 양의지였다. 이날 배터리를 이룬 양의지는 타석에서도 3안타 1득점의 맹활약으로 승리의 도우미 역할을 해냈다.
 
양의지는 두산에서 장원준과 가장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배터리였다. 2019년 FA자격을 얻어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가 올시즌을 앞두고 컴백한 양의지는, 두산 1기 시절인 2018년 장원준의 마지막 승리였던 129승을 합작했던 추억이 있다. 5년 만에 돌아온 양의지가 두산 복귀 뒤 처음으로 장원준과 호흡을 다시 맞춘 경기에서 승리를 도왔다는 점도 뜻깊은 순간이었다.
 
경기 후 이승엽 감독과 양의지가 장원준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130승을 축하하는 장면은 지켜보는 팬들을 훈훈하게 했다. 장원준도 오랜만에 그라운드에서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야구는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지만 승부와 결과만이 전부는 아니다. 장원준의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함께, 이승엽의 든든한 믿음과 양의지의 지원이 뒷받침되면서 승부 그 이상을 뛰어넘는 '낭만야구'가 해피엔딩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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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준 130승 이승엽감독 양의지 낭만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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