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피프티 피프티.

그룹 피프티 피프티. ⓒ 어트랙트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무도 신인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새나, 아란, 키나, 시오)를 몰랐다. 4세대 걸그룹의 각축전이 극심해진 가운데, 중소기획사가 처음으로 내놓은 걸그룹이 조명을 받을 것이라 기대한 사람도 없었다. 지난해 발표된 데뷔 EP < THE FIFTY >에 실린 곡들이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그 정도에 그쳤다. 2월에 발매된 신곡 'CUPID'는 멜론을 비롯한 국내 음원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3년 5월, 전세계의 음악 팬이 피프티 피프티를 알고 있다. 5월 셋째주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는 17위를 지키고 있다. 컨트리 슈퍼스타 모건 월렌의 'You Proof', 에드 시런의 신곡 'Eyes Closed', 포스트 말론의 신곡 'Chemical' 등보다 높은 수치다. 피프티 피프티는 8주 동안 빌보드 핫 100 차트를 지키며, 가장 오래 이 차트에 머문 케이팝 걸그룹이 되었다.

지금까지 케이팝 걸그룹이 발표한 곡 중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곡은 블랙핑크의 'ICE CREAM'이다. 블랙핑크와 셀레나 고메즈가 협업한 이 곡은 발매 당시 핫 100 차트 13위까지 올랐던 바 있다. 지난 5월 19일 공개된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는 11위를 차지했다. 8주 동안 차트에 진입하면서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발표 당시에는 국내 차트에서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 했지만, 해외에서의 좋은 성적과 함께 국내 차트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말 그대로 '역수입'이다.

우선 '음악의 힘'이 유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도자 캣(Doja Cat)을 떠올리게 하는 디스코 사운드와 부드러운 멜로디, 멤버들의 성숙한 보컬이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케이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역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이지 리스닝 팝송으로 완성된 것. 대부분의 케이팝 그룹이 막강한 팬덤의 화력에 힘입어 차트에 진입한 것과 달리, 음악 팬들 사이에서 천천히 입소문을 타고 상승한 결과다.

단순히 노래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입소문을 탈 수는 없다. 숏폼 플랫폼인 틱톡에 그 단서가 있다. 최근 틱톡에서는 곡의 속도를 1.5배에서 2배 정도 빠르게 재생한 '스페드 업(Sped Up)' 버전이 유행이다. 한 틱톡커가 'CUPID'의 스페드 업 버전을 두고 '최고의 프리 코러스'라고 극찬했고, 그 후 'CUPID'는 틱톡에서 가장 애용되는 곡으로 올라섰다.

틱톡 사용자들은 이 노래를 가지고 마음대로 놀았다. 춤을 추고, 평범한 일상을 수식하는 배경 음악으로 삼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프로레슬러 출신 배우인 존 시나가 이 곡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밈(MEME)이 되었을 정도다. 그리고 사람들은 틱톡에서 들었던 노래를 찾아 스트리밍 사이트나 유튜브로 향했다. 실제로 미국 MRC 데이터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틱톡 사용자 중 75%가 틱톡을 통해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했다고 밝혔고, 사용자 67%가 틱톡에서 들은 노래를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찾아볼 것이라고 대답했다.

음악 시장의 질서가 바뀌고 있다
 
 피프티 피프티의 'CUPID'가 5월 3주차 빌보드 핫 100 차트 17위에 올랐다.

피프티 피프티의 'CUPID'가 5월 3주차 빌보드 핫 100 차트 17위에 올랐다. ⓒ Billboard

 
빌보드 차트가 절대적인 권위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다. 그러나 수많은 변수가 투영된 빌보드 차트는 대중음악의 절대적인 권위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곡을 가늠하기 좋은 지표는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다.

5월 22일, 현재 피프티 피프티의 'CUPID'는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4위에 올라 있다. 지난달 1800만 명 가까이 되었던 스포티파이 월별 청취자 수는 한달만에 3400만 명을 돌파했다. 올해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를 맡은 블랙핑크(약 2500만 명), 프랭크 오션(2600만 명)보다 더 많은 숫자다.

케이팝이 국내 시장만을 바라보지 않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피프티 피프티를 프로듀싱한 안성일 프로듀서는 기획 과정에서부터 국내 시장이 아니라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발표와 동시에 영어 버전인 'Twin Ver'이 발표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팬덤 대신 대중에 먼저 호소하고자 했다는 것. 그리고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서사가 만들어졌다. 피프티 피프티는 케이팝에 존재하지 않았던 성공 모델의 주인공이 되었고, 앞으로 오랫동안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제 피프티 피프티는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차트에서 상승세를 거듭하고 있는 'CUPID', 그리고 'CUPID' 이후의 피프티 피프티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두고 보자.
피프티 피프티 CUPID 큐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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