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 그린나래미디어(주)

 
일생에 한 번 받기도 힘든 황금종려상(최고상)을 2번 받은 감독이 있다. <더 스퀘어>(2017)와 <슬픔의 삼각형>(2022)으로 제75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신선한 충격, 발상의 전환으로 다가오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슬픔의 삼각형>은 스웨덴 출신 감독의 첫 영어 작품이다.
 
그의 재능을 드러낸 건 네 번째 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2015)부터였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스키장에 간 가족을 두고 인간 본성을 파헤쳤다. 눈사태란 재해 앞에 가족을 버리고 혼자 도망친 아빠를 용서할 수 없는 가족의 불편한 휴가를 담았다. <더 스퀘어>(2017)에서는 불편함이 더해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위선적인 본성을 희화화한 예측불허 부조리극인데 한층 업그레이드된 인간 본성 탐구 보고서를 보는 듯했다.
 
감독은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더 스퀘어>, <슬픔의 삼각형>을 두고 현대의 남성성 탐구 3부작이라 언급했다. 남성 주인공의 딜레마를 설정하고 궁지로 몰아가며 웃음을 유발하는 형식이 이번 작품에서 더욱 확장되었다. 이번에도 시선을 강탈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움직임이 유난스럽게 설정되어 있다.
 
세 작품 다 "만약에 나라면...?"이란 생각이 커진다. 집단에서 일어나는 돌발 상황, 그때 발현되는 인간의 나약함을 제대로 파고들어 씁쓸함을 남긴다. 어떠한 상황으로 관계가 완전히 뒤틀려 버리곤 했는데, <슬픔의 삼각형>에서는 아예 전복되어 버린다. 계급은 사라졌지만 계층은 그대로인 현대 사회를 제대로 놀려 먹는다. 지상-배-섬을 옮겨가며 뒤집어진 젠더-계층-인종-이데올로기를 들여다본다.
 
과연,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호화 크루즈에 탄 슈퍼리치의 허례허식은 하늘을 찌른다. 실소가 터질 만큼 위선적인 말과 행동을 보인다. 마음만 먹으면 이 배를 살 수 있다며 자본력으로 승무원에게 갑질도 서슴지 않는다. 돈만 있다면 어떠한 진상도 가능했다. 하지만 흔들리는 배 안에서 뒤섞여 버린 고급 요리와 토사물, 배설물은 똑같은 역겨움일 뿐이었다. 부자, 가난한 자, 고용주, 피고용인, 청년, 노인 모두 불가항력 앞에 무력해지고야 만다.
 
협찬으로 크루즈에 무료 탑승한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 야야(샬비 딘)와 칼(해리스 디킨슨)은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아내, 정부(情婦)와 휴가 중인 러시아 비료 갑부, 수류탄 제조업을 자랑으로 여기는 비도덕적인 부부, 애인과 오려고 했다고 둘러대는 외로운 중년 남성,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남편과 여행 온 중년 여성, 그리고 알코올 중독 선장 등. 각양각색의 부자들이 앞다투어 천박함을 뽐내고 있다.
 
위태로웠지만 애써 균형 잡던 크루즈는 폭풍이 오던 밤 완전히 부서진다. 날을 잘 못 잡은 탓일까. 술에 취한 선장과 이성을 잃은 승객의 말장난이 이어지며 정신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습 불가로 치닫고, 급기야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져 가까스로 8명만이 무인도에 살아남는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구조만 기다릴 수 없는 상황, 이들은 생존을 위해 뜻밖의 행동을 하게 된다.
 
다양한 삼각형의 웃픈 권력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슬픔의 삼각형>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야야와 칼의 성(性) 역할을 비추고, 2부에서는 부로 형성된 시스템을 조롱한다. 3부에서는 뒤집어진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작은 사회를 보여준다.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시스템을 상징하는 '삼각형'의 은유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일차적으로 제목 '슬픔의 삼각형'은 미용업계, 성형외과에서 쓰는 용어다. 우리나라로 치면 미간 11자 주름을 뜻하며 스웨덴어로는 '트러블 링클'이다. 찡그린 인상 때문에 인생의 슬픔, 어려움을 겪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는 관객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는 권력 피라미드가 뒤바뀐 패션 업계부터 시작된다. 남성 모델은 여성 모델 급여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며 동성 잠자리를 통해 성공을 보장받는 경우가 존재한다. 가부장제 속 여성이 겪는 부당한 일이 패션 쪽에서는 다르게 흘러간다. 칼과 야야는 저녁 계산을 두고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며 묘한 관계를 쌓는데, 이 상황 속에는 남성이 계산해야 한다는 오랜 성역할을 꼬집고 있다.
 
흔히 삼각형은 피라미드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란 종은 같지만 맨 아래 계층과 맨 꼭대기 층의 간극은 크게 벌어져 있다. 과거의 신분 계급은 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계층은 엄연한 아이러니다. '돈'과 '아름다움'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는 직계 수단이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여기선 내가 '캡틴'입니다. 자, 내가 누구라고요?"
 
크루즈에서는 화장실 청소부였던 필리핀 여성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은 무인도에서 계급이 수직 상승된다. 무인도에 떨어진 8명의 사람에게 '돈'과 '아름다움'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육지, 배에서의 위계질서는 단박에 뒤집힌다. 그로 인한 서스펜스가 유발되고, 새롭게 시스템이 재편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평등하길 원해"라며 전통적인 성역할을 부정하던 칼은 여성 권력자에게 아름다움을 팔아 식량과 편한 잠자리를 얻는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어왔던 수많은 가치가 섬에서는 뒤바뀐다. 외모와 젊음, 명품과 돈은 살아남기 위해서 소용없는 능력이다. 오직 낚시와 불 피우는 능력이 최고가 되는 상황이다. 원시 시대로 돌아간 현대인의 다양한 인간 군상은 씁쓸함을 유발한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슬픔의 삼각형>은 <타이타닉>과 <기생충>이 만나 <캐스트 어웨이>를 겪는 영화다. 147분이란 러닝타임의 피로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예측불가 상황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노골적으로 클리셰를 부수는 과감함과 인생 무상이 수시로 교차한다. 칸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영화는 고루하고 재미없기 짝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
 
놀이 기구를 탄 것도 아닌데 검은 봉지가 절실했던 기이한 4DX급 체험이었다. 구토 유발하는 탁한 공기와 아리송한 뒷이야기가 냉소적으로 다가왔다. 파격적인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게 또다시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답을 완성하길 촉구한다. 시종일관 파리 날리는 소리, 아기 우는 소리, 삐걱거리는 와이퍼, 닫힐 듯 말듯 신경쓰이는 엘리베이터문 소음은 불편함을 더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슬픔의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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