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 이미지
엣나인필름
고고학 연구자인 영실은 지방의 발굴현장에서 다른 대원들은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출토된 유물들을 지키고 있다. 마침 지나가던 음악가 인식이 발굴현장에 다가온다. 방금 발굴된 유물을 촬영해도 되겠냐는 그의 요청에 영실은 쾌히 허락한다. 승낙을 얻자마자 인식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현장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줄을 훌쩍 넘어 그는 영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영실도 출토유물과 함께 사진에 담길 청한다. 머뭇거리던 영실은 촬영을 허락한다. 한순간에 영실은 물리적인 선과 정신적인 선이 동시에 허물어진다.
인식은 영실에게 첫눈에 반한 듯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처음부터 마구 들이대는 모양새긴 한데, 영실 또한 딱히 그가 싫지 않은 눈치다. 인식은 근처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역사 전시 관련 창작 음악 파트를 맡고 있었다. 영실은 그날 저녁 인식의 전시 프로그램에 들르고, 다음날도 그가 청한 둘만의 만남을 수락한다. 빗속에서 산책하며 둘은 대화를 나눈다. 발굴 작업과 공연전시에서 공통분모를 이루는 고대사를 테마로 대화는 이어진다. 이야기 가운데 전래설화 서동요가 언급된다. 하지만 둘의 서동요에 관한 인식은 완벽히 대척점을 이룬다. 인식은 낭만적인 전통 설화로 서동요를 대하지만 영실에겐 일방적인 사기 결혼에 불과하다. 마치 선녀와 나무꾼 동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하면 뜻밖의 결론에 도달하듯 말이다.
하지만 영실은 '8시간' 만에 인식에게 반해버린다. 곧이어 둘은 '8년'간의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서동요에 대한 시각차이는 강력한 복선이 되고 말았다. 둘의 관계는 결코 평범한 연인들의 그것을 따라가지 않는다. 인식은 끊임없이 영실에게 집착과 방관을 반복한다.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수위는 물리적 폭력 없이도 보는 이까지 진이 빠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짜증과 의심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도 영실은 관계를 도무지 정리하지 못한다. 결국 '오빠'에서 '형'으로 호칭을 변경하는 과정을 계기로 겨우 공식적인 연인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도 둘은 4년간 간헐적인 만남을 이어간다. 주변에선 답답해하거나 화를 낼 정도이고, 자신도 스스로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실은 느리지만 조금씩 땅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식물처럼 조금씩 변화해간다. 그리고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통념적 '가스라이팅'에 가둬지지 않길 바라게 되는 영화
영화는 고고학자인 주인공이 자신이 늘 행하던 발굴 작업처럼 더디고 답답한 시간을 이어가는 연속이다. 그런 주인공 영실의 행보를 근 3시간 가깝게 고구마를 연발하며 지켜보게 될 관객에게는 상당한 고역의 시간이다. 마치 자신이 묵묵히 정진하는 발굴 작업 형태처럼 스스로의 연애와 삶의 방식을 정리해나가는 과정이 거북이 구보처럼 펼쳐진다. 영실이 10여 년 동안 경험하게 되는 관계의 시간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요즘 같이 인스턴트 속전속결 관계 전성시대에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고고학 차원'의 사랑이다. 하지만 은근히 우리가 주변에서 곧잘 목격하게 되는 어떤 전형처럼 다가온다. 왜 저렇게 세상의 통념에 맞춰 적당히 조건 맞춰가며 안전하고 무난한 남자를 찾는 대신, 꼭 항상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상대만 만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아마 (성별 막론하고) 다수의 관객은 '가스라이팅'이라는 신조어를 금방 머릿속에 떠올릴 법하다. 상대를 끊임없이 자신의 새장에 가둬놓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인식의 행태는 관객이 감정을 이입하는 순간 현실의 공포로 기능한다. 그런 나쁜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는 영실의 답답한 태도가 속을 태우며 뒤따른다. 무심코 따라가게 된다면, 마치 공중파에서 아침저녁으로 양산하는 K-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쌍욕의 추임새로 현실 스트레스 풀듯 <사랑의 고고학> 역시 공분하며 보게 될 테다. 인식이 영화 내내 보여주는 모습은 '한국남자'의 부정적인 형상화 자체다. 인식의 캐릭터가 아주 정교하게 재현되기에 본인이 실제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거나 주변에 유사 사례가 있다면 이 영화는 그야말로 3시간 내내 독성을 사방에 흩뿌리는 발암물질처럼 여겨질 법하다.
장인의 경지에 이른 몇몇 스타 방송작가들이 자신들의 막장드라마에서 욕받이 용도로 설정하는 메인 '빌런' 캐릭터들과 인식의 존재감은 얼핏 별반 다르지 않다. 고 김기영 감독의 전설적인 1960년 고전명작 <하녀>가 선풍을 일으키던 당시 극장가에서 목격되었다는 세태 관련 언론보도가 떠오른다.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던 중산층 가정주부들이 주인집 안주인 자리를 위협하며 빼앗으려는 '침입자' 하녀의 활약(혹은 만행)을 참다못해 "저 X 죽여라!'며 절규했다는, 자신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경험하던 위기를 연상하는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이 떠오를 지경이다.
주인공의 주체적 변화에 포커스를
▲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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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사랑의 고고학>을 그런 사골 우려내는 차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인 막장 드라마와 동일한 방식으로 보는 게 맞는 걸까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황색 저널리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총체적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꾸준히 변죽을 울려댄다. 시민들은 의심스럽긴 하지만 끊이지 않고 펑펑 터뜨리며 시선을 현혹하는 자극적 가십과 지엽적인 선정적 단면에 거듭 교란되곤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농간에 또 당해서 정작 중요한 걸 놓쳤다며 탄식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과거의 물리적 탄압 대신에 미디어 여론조작을 통해 기득권 질서를 수호하고 세를 확산하는 이념의 '진지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굳이 그에 포섭되는 방식으로 이 영화를 봐야할 이유가 있을까?
살짝 발상을 전환해서 영화를 보자면, <사랑의 고고학> 속 '인식(과 현실의 수많은 인식들)'에 너무 과잉 몰입하면 지는 싸움이 되어버린다. 인식의 언행과 심리를 일일이 분석하고 규명해가며 분노를 터뜨리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마치 미디어가 희생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고민하기보다는 가해자에 관한 '완벽한 악마화', 혹은 억지로 '인간의 얼굴화'를 시도하는 작업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효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식'과 유사한 '인식'들은 그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한'국'남'자들의 지극히 부정적인 사례일 뿐이다. 딱 그에 걸맞게 인식 역할을 맡은 기윤 배우는 열연을 해낸다. 그러한 수고를 경유해 영화는 우리가 현실에서 목격하곤 하는 어떤 초상을 퍽 진하게 그려내는 데 성취를 이뤘다. 딱 여기까지다. 더 이상 굳이 인식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분석해야 할 특별한 사유를 찾을 수 없다. 인식은 영실이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거대한 장벽이자 암초로써 제 몫을 다한다.
그 대신에 (보고 있으면 안쓰럽고 답답하긴 하지만) '가스라이팅'의 가련한 희생양이 아니라 그래도 결국 스스로를 조금씩 변화시켜가는 도상에 있는 영실에 포커스를 집중하고 그를 응원하는 게 훨씬 더 이 영화를 흥미 있고 풍요롭게 독해하는 방향일 테다. 그리고 (이 영화 감상을 획일화시켜버리는 주범인 '가스라이팅' 카피와 흡사한 활용법으로) 굳이 '트라우마' 개념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영화 속 영실이 보여주는 행동의 전제가 되는 조건들에 조금 더 착목할 필요가 있다. 극중 영실과 인식의 관계를 남녀 성역할이 반전된 것처럼 선보이는 영실의 부모님 캐릭터는 요즘 트드인 영 페미니즘에 기반을 둔 남녀 역할 전제보다는 조금 더 광의의 '관계'를 표현하고픈 것처럼 다가온다.
영실이 부모와의 만남을 통해 무언으로 묘사되는 그녀의 과거 성장과정과 그로 인한 정체성 형성은 현재의 영실이 보여주는 답답한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필수 전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그분들이 거듭 주요 분기점마다 등장할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등장인 작업실 장면에서 무례한 입주 작가의 시비에 부모님을 보호하려는 영실의 (그 이전에는 보여준 바 없는) 선연한 분노와 즉각적 대응은 '늘 눈치만 보며 살았던' 주인공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 '찰나'에 속한다.
멀찍이 떨어져 조망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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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영화 속에는 오직 영실과 인식 사이의 속 터지는 관계에만 집중할 경우 놓치게 될 장치들이 제법 다양하게 포진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뜻 보자면 초기 버전 인식으로만 간주될 수 있는 영실의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 변천사 또한 여전히 제 2, 제 3의 영실을 찾는 인식의 행태와는 변별점이 확연하다. 그리고 인식 이후 영실이 근접하게 되는 대상과의 관계성까지 시야를 넓히면 2중, 3중으로 두텁게 형성된 포석들이 발견된다. 이런 고고학 연구과정 마냥 섬세하고 차분한 관찰이 훨씬 더 유익한 독해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제목처럼 <사랑의 고고학>은 고고학 방법론을 충실히 재현한다. 영실이 생계수단 겸 소일하는 고등학교 진로특강에서 자유연구자로서 본인의 삶을 설명하는 내용 그대로 주인공은 위태로운 여정을 자신의 삶으로 구현한다. 학문과 일상에서 이중으로 고고학의 탐구과정을 전개해 나간다. 이를 통해 주인공은 그가 일생 매진하고 있는, 과거를 관찰하는 행위를 통해 현재를 확인하고 해석하는 여정을 이어나간다. 2시간 동안 꼬박 (자신의 선택으로, 물론 그 결정에는 지나온 영실의 자아형성과정이 진하게 반영된) 하필이면 만나도 꼭 그런 상대를 만난 바람에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신음하는 과정이 보는 관객조차 힘겹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결국 자기 스스로 눈치를 보지 않고 후련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역사적 전환점을 경유하는 데 이른다. 누구의 도움도 의지하지 않은 채 스스로 탈출에 성공하는 후반부 30분간의 도전이 거대한 역사화처럼 그려진다. 마치 고대인의 지혜와 분투가 한눈에 다가오는 반구대 암각화처럼, 영실의 싸움이 세속의 성공담과 같진 않겠지만 영화가 끝난 후 주인공의 삶은 더 이상 과거와는 같지 않으리라 믿는다. 옥자연 배우가 그림 속 모델이 된 것처럼 단아하게 자리한 영실의 모습을 3시간 동안 목격하고 나면 다들 비슷한 심정이 될 테다.
<작품정보> |
사랑의 고고학 Archaeology of love
2022|한국|드라마
2023. 4. 12. 개봉|163분|15세 관람가
감독 이완민
주연 옥자연(강영실 역), 기윤(여인식 역)
출연 이혜정(수연 역), 김중기(지도교수 역), 강태영(우도 역). 최희진(희원 역),
최정인(효운 역), 김용삼(환민 역), 한미자(영실 모 역), 이동찬(영실 부 역),
김정화(사표 역), 박현서(아영 역), 원향라(소리꾼 역), 김태희(공동집필실 작가 역)
제작 맑은시네마, 키스톤필름즈
제공/배급 맑은시네마
배급 엣나인필름
2023 46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 잉마르베리만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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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48회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장편경쟁: 독불장군상-이완민, 독립스타상-기윤
2022 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발견(국제장편경쟁)
2022 13회 광주여성영화제 초청
2022 23회 제주여성영화제 초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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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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