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하는 김민재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우루과이와의 축구 대표팀 평가전. 김민재가 상대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

▲ 수비하는 김민재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우루과이와의 축구 대표팀 평가전. 김민재가 상대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축구대표팀 '수비의 중심' 김민재(나폴리)가 때아닌 '은퇴 논란'에 휩싸였다. 김민재는 3월 2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국가대표 친선경기(1-2)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이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발언을 터뜨렸다.

지친 기색으로 등장한 김민재는 경기를 마친 소감에 대하여 "많이 힘들다"고 운을 뗀 뒤 "멘탈적으로 많이 무너져 있는 상태다. 당분간... 당분간이 아니라 그냥 지금 소속팀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의미심장한 언급을 했다. 놀란 취재진이 "멘탈 때문에 힘들다는 건 이적설 때문인가?"라고 질문하자 "아니다. 그냥 축구적으로 힘들고 몸도 힘들고, 대표팀보다는 소속팀에 더 신경을 쓰고 싶다"고 재차 강조했다.
 
"축구협회와 조율이 된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에 김민재는 잠시 머뭇거리며 한숨을 내쉬더니 "조율이 됐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다. 이야기는 나누고 있었는데... 오늘은 이 정도만 하겠다"라며 설명을 다 끝맺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김민재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축구팬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주요 언론들은 김민재의 발언이 '국가대표팀 은퇴 가능성'을 시사한 뉘앙스가 아니냐는 분석을 일제히 내놓고 있다.
 
김민재 발언에 갈린 여론의 반응

김민재는 한국축구 수비의 기둥이다. A매치 49경기에 출전했고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도 벤투호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16강 진출에 크게 공헌했다. 한국 수비수로는 드물게 유럽 빅리그 세리에A 나폴리의 핵심 수비수로 이탈리아 리그와 UCL(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 홍명보-이영표 등 대선배들을 뛰어넘어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김민재는 1996년생으로 이제 27세에 불과한 젊은 선수다. 축구 선수로서 이제 갓 전성기에 돌입한 시점인데다 황희찬, 황인범, 나상호 등 또래 선수들이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대표팀 은퇴를 시사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인데다, 태극마크의 명예와 책임감을 중시하는 한국 스포츠 문화에서 선수가 대표팀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내며 소속팀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발언하는 경우도 이례적이다.

김민재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여론의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민재가 국민적 응원과 관심을 받는 국가대표 선수로서 신중하지 못한 언행을 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김민재의 상황에 공감하고 오히려 대표팀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단 김민재의 발언 자체는 경솔했던 것이 사실이다. 김민재는 불과 우루과이전 하루 전인 지난 27일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내 몸이 다 하는 만큼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고 고백하며 "저의 목표는 부상 없이 대표팀에 오는 것이다. 부상이 있거나 기량을 유지하지 못 하면 기회를 못 받을 수 있는 만큼 유지를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처럼 대표팀에 대한 책임감과 의욕이 충만해보이는 발언을 했던 선수가 불과 하루 만에 180도 입장이 바뀌어서 "대표팀보다 소속팀에 집중하고 싶다"고 하니 듣는 이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김민재는 중국 프로축구 베이징 궈안에서 활약하던 2020년 5월에는,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여 '소속팀과 동료 선수 비하' 논란으로 설화에 휩싸인 전적이 있다. 그나마 당시에는 가벼운 농담을 하던 분위기에서 개인적인 소감이 그만 선을 넘는 실언까지 이어진 경우지만, 이번에는 국가대표팀과 관련된 내용이었고 인터뷰 자체도 진지한 분위기에서 나온 발언이기에 무게감이 다르다.
 
물론 김민재가 인터뷰에서 직접적으로 '은퇴'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애매한 표현과 뉘앙스를 던져놓고 구체적인 설명없이 자리를 피한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었다. 대표팀에서 불편한 부분이나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던지, 아니면 내부적으로 축구협회나 대표팀 관계자들과 먼저 조율을 하는 게 순서였다. 만인의 주목을 받는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서 김민재는 자신의 공개적인 발언이 미칠 파장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유럽파 선수들의 고충
 
질문에 답하는 김민재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하루 앞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김민재 선수가 27일 파주 NFC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질문에 답하는 김민재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하루 앞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김민재 선수가 27일 파주 NFC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만 김민재가 왜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선수의 입장과 상황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은퇴하겠다는 거야?'라는 데만 초점을 맞춰 선수를 다그치기보다는, '그래서 어떤 부분이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라고 전후사정부터 파악하고 귀를 기울여주는 자세도 필요하다.

일단 현재 김민재로서는 충분히 힘들어할 만한 상황인 것도 맞다. 김민재는 유럽 진출 이후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항상 핵심선수로 중용되느라 쉴 시간이 부족했다. 나폴리로 이적한 이번 시즌에는 리그와 UCL 등 각종 대회에서 벌써 35경기 3015분(세리에 A리그 26경기 2282분)을 소화했다. 대부분이 풀타임이었고, 휴식 차원에서 결장한 경기는 거의 없었다. 시즌 중인 지난해 12월에는 카타르월드컵 일정까지 소화했다.
 
또한 김민재는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첫 A매치였던 콜롬비아-우루과이와의 2연전에서도 총 180여 분 풀타임을 모두 소화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멤버들을 중용하며 여러 선수들을 고르게 활용해보기도 했지만, 김민재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은 체력안배나 로테이션이 적용되지 않았다.
 
피로누적으로 최근 몇 차례나 잔부상에 시달렸던 김민재로서는 체력적-정신적으로 잠시 '번아웃'이 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자신의 힘든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면 그리 이해하지 못할 장면도 아니다.
 
김민재의 문제는 많은 유럽파 축구대표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김민재보다 더 일찍, 그리고 오랫동안 유럽무대를 누비고 있는 손흥민은 몇 년째 '세계에서 가장 혹사당하는 축구선수' 중 하나로 꼽힌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체력적 부담감은 물론이고,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모두 엄청난 기대를 받는 핵심 주전 선수로서의 심리적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손흥민보다 앞선 시대의 대표팀 주장이었던 박지성-기성용-구자철 등은 모두 유럽파 출신으로 어린 나이부터 장기간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혹사 논란'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팀 은퇴를 전격 선언한 바 있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내세워 유럽파 선수들의 부담을 외면해왔고 희생만을 강조해온 게 사실이다. 만일 김민재의 발언이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기적이다', '나약하다'고 무조건 비판만 하기보다는 일단 선수의 입장도 귀담아듣고 대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김민재 A매치 은퇴설 클린스만호 유럽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