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포스터 이미지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포스터 이미지 ⓒ 판씨네마㈜

 
애나 릴리 아미푸르, 전종서와 만나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국내에선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인상적인 데뷔 후 팔색조 매력을 발휘중인 전종서 배우의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홍보되고 있다. 하지만 아마 해외에선 애나 릴리 아미푸르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로 더욱 주목받을 작업이다. 감독이 일관되게 지향해 온 작가주의 인장 또렷하게 박힌 도시형 판타지 스릴러 계보를 충실히 잇는 신작이다. 낯선 이름처럼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감독이지만 독창적인 스타일로 전 세계 장르영화계 신성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름 외우기 쉽지 않은 만큼 감독의 내력도 이채롭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 영화계에서 활동 중이지만 부모는 이란계 이주민이다. 다문화와 경계자로서의 환경에 친숙하지 않다면 더 이상할 정체성이다. 그런 감독은 12살 때부터 꾸준히 인상적인 공포 장르 단편영화들을 제작하며 소소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외에도 회화, 조각, 음악 등 문화예술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재능을 발산하던 중 2014년, 자신의 이전 단편을 확장한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로 장편 데뷔를 치른다. 가상의 공간 Bad City를 무대로 소녀의 외모를 가진 뱀파이어가 등장해 공포와 멜로를 버무려낸 기묘한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화제에 올랐다. 이후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2016년 작품, <더 배드 배치>는 미연방정부가 통제를 포기한 텍사스 사막 한 구석의 디스토피아에서 펼쳐지는 SF 생존 장르와 로맨스의 독특한 결합이었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그런 감독의 최신작이다.
 
감독은 다양한 장르를 융합해 우리에게 익숙한 실제 현실과는 미묘하게 엇갈리는 초현실적 배경 아래 몽환적인 이야기를 펼쳐왔고 신작에서도 그 특유의 스타일은 여전하다. 전 방위적 예술인인 감독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현실화한 영화 속 세계에선 감독의 자의식이 투영됨직한 소녀들이 늘 중심에 서 있다. 그녀들이 처한 상황은 암울하지만 어떻게든 자신들이 강제로 속박된 부당한 세계에서 벗어나길 꿈꾼다. 10대 소녀들이 자신들을 옥죄는 억압에서 해방되길 바라는 심리가 가상현실에서 폭발하듯 펼쳐진다.

그런 주인공들이 역부족에 처하면 소수의 선한 조력자들이 등장해 도움을 준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든 꿈을 이루려는 소녀의 로망으로 끝까지 돌파하는 세계관은 감독의 작품세계에서 늘 동일하다. 이번 영화에서 감독은 전작의 주인공들, 뱀파이어 소녀와 식인종에게 팔과 다리를 하나씩 빼앗긴 금발 백인소녀에 이어 정신병원에서 대부분의 생을 감금당해왔던 동양계 소녀에 자신의 비전을 투영해낸다. 그 퍼즐의 마지막 단추가 전종서 배우였던 것.
 
뉴올리언스의 밤거리에서 펼쳐지는 자유-해방 향한 폭주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스틸 이미지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스틸 이미지 ⓒ 판씨네마㈜

 
영화의 주인공 '모나 리'는 12년간 폐쇄병동에서 구속복을 착용한 채 갇힌 상태로 세상과 격리되어 왔다. 병원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10여 년 내내 산송장처럼 침만 흘리며 지내왔을 정도다. 어떤 재활을 위한 지원도, 인간적인 관계 형성도 이뤄지지 않았음이 시작과 함께 드러난다. 아무 희망 없는 죽지 못해 사는 삶 그 자체다. 하지만 붉은 보름달이 떠오르는 어느 날 밤 모든 것이 역전된다. 모나는 그날 밤 무의식중에 발견한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해 그곳을 탈출한다. 모나가 가진 초능력은 상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 마치 최면을 건 것처럼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다. 병원 정문을 그렇게 쉽게 돌파했지만 미지의 세상으로 갑자기 뛰쳐나온 주인공은 교외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불빛에 얼어버린 야생동물을 닮은 형상이다.
 
그런 모나에게 첫 번째 은인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다시 병원행이 되었을지도 모를 터. 하지만 병원 인근에서 어울려 놀던 청년들 중 또래 소녀가 호의를 베푼다. 동료의 신발을 징발해 맨발인 모나에게 신겨주고 도시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그 호의 덕분에 모나는 뉴올리언스로 향한다. 하지만 10살 때 모종의 이유로 입양가정에서 파양된 후 병원에 강제수용된 모나는 사회에 대한 상식이 거의 없는 백지상태다. 오직 바깥 세상에 대한 궁금함과 원초적 본능(식욕)만이 존재할 뿐.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능력을 가진 아름답지만 위험천만한 야생동물 격이다.
 
뉴올리언스 밤거리를 헤매고 다니던 중 모나는 도시의 몇몇 주민들과 인연을 쌓아나간다. 클럽 DJ '퍼즈'는 낯선 매력을 가진 그녀에게 먹고 마실 것을 사주며 호감을 표하지만 아직 모나는 타인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모른다. 퍼즈는 신비한 매력에 끌리지만 (거친 외모와 달리) 적정선에서 욕심을 자제한 덕분에 별 탈 없이 헤어진다. 모나는 햄버거 체인점 바깥에서 시비에 휘말린 스트립 댄서 '보니'를 자신의 능력으로 구해준다. 일단 당하는 약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천성은 확인된 셈.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모나의 신비한 능력을 확인한 보니는 모나의 능력을 이용하고자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 집에서 며칠간 지내던 중 모나는 헤비메탈을 답답한 일상 탈출구로 삼는 보니의 11살 아들 '찰리'와 친해진다.
 
물론 모나에게 아직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 밤거리 순찰 도중 우연히 그녀를 체포하려던 중 모나의 위험한 능력을 (자기 발의 총상으로) 확인한 경찰 '해롤드'는 집요하게 모나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런 경찰의 추적 상황에서 일확천금을 위해 모나의 초능력을 이용하려던 보니의 행각 덕분에 모나는 다시 쫓기는 몸이 된다. 과연 주인공은 어떤 길로 접어들게 될까.
 
미술관 밖으로 걸어 나온 '모나리자'가 만난 사람들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스틸 이미지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스틸 이미지 ⓒ 판씨네마㈜

 
영화 내내 '모나리자'로 불리는 주인공은 이름의 유래가 된 명화 속 인물처럼 강렬한 눈빛과 인상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주인공 모나는 하필이면 붉은 달이 떠오른 밤에 사실상 평생을 속박되던 멍에에서 자력으로 탈출해 생애 최초의 자유의지로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 세상으로 향하려 도전한다. 그런 그녀가 뉴올리언스 밤거리에서 만나는 주요 인물 중 다행히 순수한 의미의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의 태도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선역과 악역을 규정해놓고 관객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배치하면 쉽고 편하지만 그만큼 이야기는 뻔해질 텐데 영화 속에서 주인공과 관계를 형성할 만큼 인연이 생기는 이들 중 그런 단조로운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모나를 끈질기게 추격하는 경찰 해롤드가 주인공에겐 자유를 향한 장벽 노릇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롤드가 그녀에게 악의를 품은 건 아니다. 해롤드 자신은 그저 경찰로서의 직업의식에 충실한 나머지 모나와 끝까지 대립하는 데에 가깝다. 하지만 해롤드가 직분에 성실하게 임할 뿐이지만 일단 모나에게 해롤드의 존재는 인생 처음 누리게 된 자유를 다시 빼앗아가려는 대악당인 셈이다.

해롤드는 (극중에선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모나가 가졌음직한 박복한 사연이나 학대당한 속내를 이해해보려 도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의 임무를 최대한 단순화해 사고한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위험천만한 시한폭탄 같은 존재를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미션이다. 그는 오직 그런 공식적인 경찰 업무에 집요하리만큼 충실한 캐릭터다. 해롤드의 이런 태도는 사회의 공식적인 잣대로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영화 초반 선보이는 모나의 초능력은 통제되지 않는다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위험분자 그 자체이니 말이다. 하지만 원칙에는 '유도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게 해롤드의 한계다.
 
모나의 초능력을 알아본 덕분에 그녀를 활용해 자신의 고단한 처지를 벗어나려는 스트립 댄서 보니 또한 악랄함과는 거리가 있다. 보니는 그저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시민적 캐릭터다. 처음엔 자신을 도와준 모나에게 베풀던 호의는 어느새 악덕 고용주의 심리로 바뀐다. 그는 자신의 욕심이 점점 이뤄지는 데 흥분해 그만 한도를 벗어나고만 것이다. 백지상태의 순수 그 자체이던 모나는 금방 보니의 타락을 알아챈다. 결국 보니는 소탐대실 덕분에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만다. 그 결과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실패 덕분에 (상당한 희생을 치르긴 하지만) 자신이 겪던 일상의 위기에서 겨우 탈출하는 존재다.
 
해롤드와 보니가 주인공이 경험하게 되는 위험한 세상의 상징이라면, 모나의 세상 적응을 돕는 조력자들로 찰리와 퍼즈가 있다. 해롤드가 너무나 충실하게 경찰임무를 수행하고, 보니가 일확천금의 유혹을 합리화시키는 동안 이 둘은 그저 주인공에 대한 대가 없는 호의로 모나를 대한다. 자신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선의로 도움을 주려는 이들이 있기에 모나는 야생동물에서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다.

자신을 해치려는 이들에게 서슴없이 초능력을 행사하는 모나가 유독 이들에겐 강제로 자기 의지를 관철하지 않는다. 그 대신 찬찬히 신용을 쌓아나간다. 그런 신의로 축적된 선한 이들과의 관계 덕분에 폐쇄병동에서 짐승과 다를 바 없던 모나는 점점 표정이 생기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발전한다. 물론 모나는 여전히 서툰 것 투성이지만 이는 주변의 관심과 협력이 이어진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 수준임이 밝혀진다. 그렇게 주인공은 영화 말미에서 어느새 자연스럽게 세상에 섞여들게 된다.
 
다양한 사회문화코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매력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스틸 이미지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스틸 이미지 ⓒ 판씨네마㈜

 
앞서 언급했듯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일관되게 자신의 10대 시절을 극중 주인공에게 투영해 자신이 추구했던 자유와 해방감을 스크린을 캔버스 삼아 종횡무진 펼쳐낸다. 록 밴드의 현역 보컬이자 연주자이기도 한 경력처럼 호쾌하게 말이다. 거시적 정치나 역사적 배경이 감독의 영화에서 주동력은 아니지만, 스스로 체험했던 경계인으로서의 자각은 꽤나 흥미로운 배경장치 활용법과 함께 장르에 갇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융·복합을 추구하는 스타일의 매력을 뿜어낸다. 이민자 후속세대로서 자신이 겪었던 드러나지 않는 억압과 스테레오 타입 규정화를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거부하려 한다. 주인공 모나가 당하던 것처럼 일방적 통제가 아닌 열린사회로의 통합 노력이 본인 스스로 체득한 미래지향적인 세계일 테다. 영화는 그런 감독의 비전에 충실한 결말로 향한다.
 
극중에서 중요하게 활용되지는 않지만 모나는 한국계 입양아로 드러난다. 10살에 정치적 망명을 통해 입양되었지만 극심한 조현병 증세로 파양되고 병원에 강제수용된 것으로 병원에선 그녀의 내력을 언급한다. 모나가 어떤 유년기를 보냈는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어린 나이에 급격한 단절과 낯선 환경에 처해진 것은 분명하다. 험한 일을 겪고 만리타향에 고립되면 멀쩡하던 사람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하필 의지할 데 없는 이민자 10살 소녀라면 말해 뭣하리. 아마 초능력도 그런 극단적 상황에서 발현된 것일 테다. 그렇지만 붉은 달이 떠오르기 전까지 누구도 그런 모나를 귀찮은 짐으로 치부할 뿐 인간적인 재활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 뿐 아니라 복지비용을 염려하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간주하는 보수적 복지개념에 도전하는 관점이 역력하다.
 
스쳐 지나듯 방송되는 트럼프 정부 뉴스는 이민자와 다문화에 대한 보수적 관점을 조소하는 것처럼 새겨진다. 정신병원에 격리하는 게 아니라 열린 세상에서 더불어 적응하도록 지원하는 게 주인공에게 즉효였다는 영화적 결말은 역시 아시아계 이민가정에서 마음고생 치렀을 감독 본인의 경험적 지혜가 투영된 것일 테다. 그렇게 영화는 정치사회적 배경을 최소한도로만 활용하지만 명백히 미국사회 소수자인 아시아계가 겪는 상황과 입양아동의 위기를 골격으로 삼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하다못해 제법 쫄깃하게 관객에게 주인공의 운명을 저울질하게 만들던 공항 장면에서 위기를 벗어나는 작은 사건 또한 그저 흘러가듯 넘길 게 아니다. 분명히 현존하는 인종차별과 사회적 편견의 존재를 지적하는 코드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이 모든 사건이 펼쳐지는 공간이 뉴올리언스라는 것 또한 감독의 노림수다. 미국 대중문화의 용광로 중 하나인 이 도시의 지역적 배경 덕분에 과잉으로 치부될 법한 많은 장치들이 자연스럽게 정착하는 셈이다. 재즈의 발상지, 흑인 노예들의 정착지, 부두교의 고장, 이런 문화코드들이 영화 속에 가득한 감각적인 음악과 현란한 시각적 비주얼과 합류해 매혹적인 시공간을 창조해낸다. 여기에 전종서라는 주목할 만한 뉴 페이스의 활약은 놀랍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여우상을 가진 이 배우의 표정이 떠나지 않는다. 극중 모나의 변천사는 마치 구미호가 인간이 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소녀의 미래는 비록 알 수 없지만 저절로 응원하게 만드는 표정이 '심쿵'하다.
 
여기에 케이트 허드슨, 크레이그 로빈슨, 에드 스크레인 등 상당한 지명도를 가진 배우들이 각자 구축한 역할 모델들이 모나리자의 자유를 향한 여정을 탄탄하게 떠받친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도, 유럽 아트무비와도, 한국 독립영화 전통에도 속하지 않지만 작가주의 장르영화 정체성에 충실한 독창적인 영화세계를 펼친다.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연속성을 두고 관람한다면 더 매력적일 작업이다.
 
<작품정보>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Mona Lisa and the Blood Moon
2021|미국|미스터리 펑키 스릴러
2023.03.22. 개봉|107분|15세 관람가
감독 애나 릴리 아미푸르
주연 전종서(모나 역), 케이트 허드슨(보니 역)
출연 크레이그 로빈슨(해롤드 역), 에드 스크레인(퍼즈 역), 에반 휘튼(찰리 역)
수입 및 배급 판씨네마㈜
 
2021 54회 시체스국제영화제 오피셜 판타스틱-음악상, 판타지장르 작품상
2022 29회 제라르메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음악상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애나 릴리 아미푸르 감독 전종서 케이트 허드슨 에드 스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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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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