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12월. 연말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겨울의 어느날, 대한민국 영공에 미지의 비행물체들이 등장했다. 경기도 서북부,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강화군 등에 잇달아 등장한 이 수상한 비행물체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놀랍게도 그 정체는 바로 북한이 보낸 무인기였다. 북쪽에서부터 군사분계선을 넘어 무단으로 대한민국 영공을 침범한 것이다. 과연 그들이 노린 것은 무엇이었고, 대한민국은 왜 이 무인기의 침범을 막지 못했을까.
북한의 무인기 침투 사건
2월 4일 방송된 SBS 시사교양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공습경보 - 미지의 침입자는 무엇을 노렸나' 편을 통하여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무인기 침투 사건을 조명했다.
북한 무인기가 대한민국에서 처음 목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백령도에서 성인남성 수준의 180cm 정도 길이에 파란 색상을 한 무인기가 추락하여 현지 주민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이후로도 경기도 파주와 강원도 삼척, 인제 일대 등에서 총 5대의 무인기가 발견되었고, 이들은 외형 외에도 기체 내부에 카메라가 장착되었다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카메라에는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와 민가에서, 청와대-성주 사드기지 같은 중요한 군사보안시설까지 촬영되어 있었다. 당시에 무인기가 사고로 추락하지 않았더라면, 국군은 아예 무인기의 침투를 탐지조차 하지못했을 뻔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구멍뚫린 영공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다.
2022년 12월 26일 오전 10시 19분, 군사분계선 인근 영공에서 반짝이는 수상한 물체가 포착됐다. 6분 뒤 육군은 그 정체가 북한 무인기라는 것을 파악했다. 무인기는 서울 방향으로 빠르게 접근했고 오전 10시 38분에는 수도방위사령부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11시 20분에는 수방사에서는 북한 무인기라는 자체 판단을 내렸다.
곧바로 비상 대응에 나선 군은 전투기에서 공격헬기를 연이어 출동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오전 11시 40분 경 KA-1 경공격기가 이륙중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우리 군이 무인기를 한창 추격하고 있던 12시 57분에는 4대의 북한 무인기가 추가로 영공을 침투한 것이 포착됐다. 군도 다시 전투기와 헬기를 출동시켜 추격에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100발이 넘는 사격에도 불구하고 격추에는 실패했다. 북한 무인기들은 오후 1시 40분부터 3시 사이에 레이더망에서 사라지며 유유히 대한민국 영공을 벗어났다.
당시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주민들 중에는 전투기가 출격한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도 많았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주민들에게 대피시설을 개방한 곳도 있었다. 주민들은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목격자 박선욱씨는 "단체 채팅방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만일 무인기에 뭐만 달아서 툭 떨어뜨렸으면 진짜 큰일나는 거다'라고 하더라. 하늘에서 그런 게 보이면 그 자리에서 사진찍거나 하지말고 도망가야 한다는 말씀도 들었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무인기 혹은 전투용 드론 들은 현재 분쟁국가들에게서 자주 사용되는 살상무기들이다. 미사일을 장착하고 수천킬로미터를 비행하여 목표물을 타격하는 미국의 '프레데터', '리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통하여 실제전쟁에서 무인기의 가공할 위력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또한 무인기는 2018년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암살시도, 2015년 일본 총기 관저 테러 사건 등 암살과 테러 등에도 자주 사용되며 공포감을 심어줬다.
북한 무인기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국군의 발표는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더 키웠다. 합동참모본부는 무인기 침범 이후 작전진행시간을 당초 발표된 7시간에서 5시간으로 정정하며 의구심을 자아냈다. 무인기의 항적이 비행금지구역은 P-73(서울 용산구 일대)를 침범했는지를 두고도 입장을 번복하여 혼란을 안겼다.
무엇보다 큰 충격은 우리 군이 무인기를 격추는 고사하고, 그 행적을 제대로 파악하고 추적하는 것 조차 실패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 정도로 북한의 무인기 기술이 뛰어났다는 뜻일까.
군은 북한 무인기가 다행히 살상무기를 장착하지 않은 정찰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당시 해당 무인기의 고도와 기술 정도로는 의미있는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미 민간에서도 고해상 위성지도를 구할수 있는 시대에, 굳이 하필 그 시간-그 장소에 무인기를 침투시킨 목적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북한이 무언가 확인할 것이 있어 위험을 무릅쓰고 무인기를 보낸 것이라고 추측했다.
1996년 5월 23일 북한 공군조종사 리철수 대위의 귀순은 대한민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리철수는 미그기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수원비행장에 착륙했다. 군이 미그기의 탐지부터 리철수의 귀순의사 확인, 유도착륙까지 걸린 시간은 26분에 불과했고 이는 지금까지 완벽한 방공작전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그런데 이번 무인기 사태에서는 왜 방공망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걸까.
전문가들은 기존의 방공시스템이 전투기나 폭격기같은 대형 항공기를 상대하는 것에 맞춰져 있으며, 작은 무인기를 상대할 때는 '방공의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전파를 쏴서 물체에 반사된 전파를 다시 확인하여 물체의 속도-고도 등을 확인하는 것이 레이더의 작동 원리다. 그런데 물체가 작은 소형 무인기는 크기나 움직임에서 새와 비슷하여 레이더를 통한 탐지와 식별이 어렵다는 것.
이번 무인기 영공침투 사태의 경우, 레이더가 무인기를 식별해낸 이후에도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추격에 어려움을 겪었다. 레이더 전문가들은 산간지역이 많은 한번도 지형의 특성상, 골짜기같은 사각지대가 많고, 방해전파에 취약하다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그렇다면 무인기를 파악하고 출동한 전투기는 왜 격추시키지 못했을까. 제작진은 전투기 조종사 출신 전문가와 함께 당시 상황을 재현한 시뮬레이션에 나섰다. 소형 무인기는 전투기 레이더로 포착이 불가능하고 조종사의 육안으로 식별할 수밖에 없는데, 전투기와 무인기의 속도 차이가 너무 커서 격추시키려고 해도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공중에서의 대응이 어렵다면 지상에서의 요격은 어떨까. 현재 군은 발칸, 신궁 등 소형 무인기를 대비한 다양한 대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인기가 700-800미터 정도 고도로만 올라가도 식별이 어렵다고. 사실상 지상무기로 무인기를 상대할 유일한 격추 수단은 자주포인 '비호' 정도인데 사거리가 3Km에 불과하고 넓은 휴전선에 일일이 다 배치하기도 어렵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또한 실제로 무인기를 포착했다고 해도 사격 결정은 내리기는 쉽지 않다. 대공 사격은 목표를 정확히 노린 조준이 아닌, 비행경로를 예측하고 탄으로 벽을 쌓는 이른바 탄막 사격 형식이다. 그런데 이런 사격의 경우, 목표물을 빗나가 흩어지는 탄이 대량 발생하기 쉬운데, 자칫 인명피해로 이어질수있기에 도심에서는 함부로 시도하기 어렵다.
물리적 요격이 어렵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위성신호를 받아 움직이는 무인기의 가장 큰 약점은 전파방해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위성에서 수신되는 전파를 교란시켜 무인기를 무력화시키는 GPS 재밍이나 GPS 스푸핑은 보편화된 기술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도심이 밀집된 한국에서 격추시 민간인 피해 등의 우려로 인하여 쉽게 시도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무인기의 군사적 비중이 늘어나면서 세계 각지에서는 무인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대응책이 나오면 다시 이를 뛰어넘는 기술이 개발되는 등 치열한 두뇌싸움이 거듭되고 있다.
가장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이 세계 6위의 군사력을 지녔음에도 북한 무인기에 이토록 취약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씁쓸한 현실이다. 제보자 김도윤 씨(가명)은 놀랍게도 민간인인 개인이 제작한 무인기로 북한 영역인 금강산 일대를 촬영할 동안, 우리 군도 북한도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했다.
제보자의 드론은 북한 무인기와 비슷한 위성항법장치를 사용한 구조였고 이에 든 비용은 고작 100만원 남짓에 불과했다고. 국내 민간에서는 이미 이러한 소형 드론을 활용하는 기술과 노하우가 보편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북한도 앞으로 지금보다 더 값싸고 규모가 작은 소형 무인기를 계속해서 대한민국 영공에 보내서 언제든지 '하늘의 틈'을 노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문가인 강왕구 한국항공우주원 무인이동체사업단 단장은 "2000년대가 오면서 민간용 드론이 발달했다. 드론 기체만이 아니라 핵심 부품들도 민간에서 발전하면서 GPS 장비를 갖추는데 10만원대면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예전에는 무인기 자체가 기술적인 장벽이 있었다면, 지금은 고성능의 드론을 누가 더 잘 만드는 것이 아니고, 유사한 성능의 무인기를 얼마나 '가성비있게' 만드느냐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VS 중동 전쟁 등을 통하여 전세계의 분쟁에서 무인기의 비중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제 드론은 하나의 특별한 무기가 아니라, 소총같은 보편적인 무기체계가 됐다"는 전문가의 지적은 우리곁에 가까이 다가온 드론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우리 군과 북한의 무인기에 대한 대응 시스템의 수립이 몇 년전부터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국회에서도 군의 책임있는 조치를 강조하며 질타했고 군은 실절적인 전력화 배치가 진행중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군에 복무했던 제보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무인기를 대비한 매뉴얼이나 실질적 훈련은 거의 전무했다고 폭로했다.
또한 합참-수방사-공군작전사령부-지상작전사령부에 이르기까지 분리된 지휘체계간 원활한 소통의 부재로 신속한 대응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비상사태를 대비한 군 내부의 고속상황 전파체계가 이미 마련되어 있음에도 무인기 사태에서는 유명무실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이후 이런 무인기 활용시스템에 대한 연구와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 양측의 벌어진 국력차와 핵무기의 등장으로 비대칭 전력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북한은 앞으로도 높은 가성비를 기대할 수 있는 무인기 발전에 많은 투자를 할 것이 유력한만큼 우리도 이에 대한 대비태세를 증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물리적인 무기로서만이 아니라 '사회갈등을 노린 심리전 도구'로서 무인기의 영향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무인기의 영공침범은 뭔가 작전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계에 갈등을 만들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의견이 많이 다르다. 보수파는 무인기 도발을 허용한 데 분노하고, 진보는 북한을 너무 몰아붙여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내 이런 갈등은 북한이 의도한 반응일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무인기 사태로 일어난 내부적인 혼란을 경계해야 한다고 우려한다. 무인기의 운용 그 자체가 상대를 흔드는 '심리전'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인기 침투로 인한 발생한 보완점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되, 정치적 언쟁과 군에 대한 불신같은 소모적인 대응을 반복한다면, 그야말로 북한의 무인기가 진정으로 노리는 덫에 빠지는 것일 수 있다는 경고다. '적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방심하지말고, 우리가 대비함으로서 적이 공격할수 없음을 믿어야 한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야기를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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