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정규리그 고양 캐롯과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경기. 고양 전성현이 돌파하고 있다. 2023.1.9
연합뉴스
올시즌 리그 최고의 선수로 불리우며 뜨거운 시즌을 보내던 전성현(고양 캐롯)이 비매너 행위로 논란에 휩싸였다.
27일 수원 KT 아레나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정규 시즌 KT와 캐롯의 경기, KT는 22점을 기록한 하윤기와 나란히 더블-더블을 기록한 양홍석(16점 12리바운드), 재로드 존스(18점 13리바운드) 등의 고른 활약을 앞세워 캐롯을 90-76으로 제압했다.
캐롯은 김강선(22점, 3점슛 7개), 전성현(20점, 3점슛 4개)을 앞세워 무려 15개의 3점슛을 터뜨리는 '양궁농구'로 맞섰지만 리바운드 24-38, 2점슛 13-27로 크게 뒤지며 높이의 극복하지 못했다.
문제의 장면은 2쿼터에 발생했다. KT 정성우는 전성현을 집중마크하다가 외곽에서 전성현에게 연결된 볼을 스틸하여 그대로 속공을 시도했다. 전성현이 곧바로 따라갔지만 타이밍상 정성우를 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골밑까지 쇄도한 정성우가 노마크에서 레이업을 시도하려는 찰나, 전성현은 갑자기 정성우를 밀어버렸다. 공중에서 균형을 잃은 정성우는 코트에 나동그라지며 광고판에 강하게 부딪혔다. 잘못 넘어졌으면 큰 부상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장면이었다.
다행히 정성우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으나 격분하여 전성현에게 다가가 항의했다. 하지만 전성현은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뭐?', '뭐하는 거야?'라고 말하는듯한 입모양도 중계화면에 잡혔다.
양팀 베테랑인 김영환과 김강선이 재빠르게 끼어들어 중재에 나서며 과열될뻔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정성우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돌아섰지만, 정작 전성현은 심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성우에게 여러 차례 손가락질을 하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내비쳤다. 위험한 파울을 당한 정성우보다 오히려 전성현이 더 당당한 반응을 보이며, 마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듯한 기묘한 풍경이 연출됐다.
전성현에게는 결국 U파울이 선언됐다. KT는 이날 대승을 거뒀고, 정성우는 이날 8점 4어시스트 3스틸로 팀의 완승에 공헌하며 농구로서 전성현에게 설욕했다.
전성현의 이날 행동은 최악의 비매너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농구에서 등 뒤에서 파울을 한다거나 공중에 떠 있는 선수를 밀어버리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플레이다. 동업자 정신에 위배되는 데다가, 상대 선수가 대비하기 어려워 큰 부상으로 이어질 위험도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성우는 부상에 시달리다가 이날 캐롯전이 복귀전이어서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하던 중계진들조차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지적했을 정도였다.
그 상황에서 꼭 파울을 할 수밖에 없는 명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정성우의 속공 상황은 KT의 적극적인 압박수비에 밀린 전성현과 캐롯 선수들 스스로의 실책에서 비롯됐다. 타이밍상 완벽한 노마크 득점 찬스였기에 파울로 끊는다는 것도 이미 무의미했다. 결국 전성현의 파울은 본인의 실수로 자초한 위기를 두고 상대 선수에게 감정적인 화풀이를 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직후에 벌어진 전성현의 행동이었다. 농구에서 격렬한 경기 도중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과열되어 위험한 하드파울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신 그 직후에 상대 선수에게 사과하거나 유감을 표하는 게 최소한의 매너다. 그런데 전성현은 항의하는 정성우에게 미안한 기색은 고사하고, 손가락질까지 했다. 전성현은 자기가 저지른 파울보다도, 정성우가 자신에게 대들었다는 것을 더 문제삼아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전성현은 정성우보다 2년 선배다.
정성우가 이날 전성현을 악착같이 수비했던 데다 팀 경기 내용도 잘 풀리지 않아 내심 짜증이 났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성우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고, 전성현에게 특별히 잘못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위험한 하드파울을 저지르고 잠시 흥분하기는 했지만, 동료들의 중재에 그 정도 선에서 참고 물러난 것도 전성현이 선배라서 그나마 자제한 것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이다.
물론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승부욕 때문에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질수도 있고, 종종 상대와 신경전이나 기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격렬한 승부에서도 최소한의 동업자 의식과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 코트에서는 선후배들을 따질 필요 없이 대등한 위치에서 공평하게 존중하고 존중받아야할 동료일 뿐이다.
리그 최고의 슈터로 꼽히는 전성현은 현재 경기당 19.89점(전체 2위), 3점슛 4.03개(1위)를 기록하며 득점과 3점슛 부문 각종 신기록을 수립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약체로 거론되던 신생팀 캐롯이 올시즌 6강 진출 이상을 넘보는 돌풍을 일으킨데는 에이스 전성현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일찌감치 올시즌 국내 선수 MVP는 전성현이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찬사가 쏟아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날 정성우에게 보여준 충격적인 행태로 농구 팬들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프로스포츠는 팬들을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산업이다. 농구를 아무리 잘하고 성적이 좋아도 팬들을 실망시키는 선수는 스타가 될 수 없다. 뛰어난 재능과 성적에도, 경솔한 처신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선수도 많다.
특히 '공정'을 중시하는 요즘의 스포츠 팬들은 인성과 매너 문제에 더욱 민감하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패배보다 더 부끄러운 '흑역사'를 남긴 이날의 경기에 대해서 전성현이 무겁게 성찰해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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