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선언한 '대장군' 마우리시오 쇼군
UFC
타격, 그래플링, 클린치 등 상대의 약한 부분을 콕콕 찍어 공략하거나 기세와 체력으로 잡아먹었다. 최근 UFC 선수들처럼 미리 전략적으로 꼼꼼하게 플랜을 짜서 실행에 옮긴다기보다는 경기 중 본능적으로 승리 메뉴얼을 가동하는 느낌이 짙었다. 마치 한 마리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같았다.
더불어 그는 MMA 역사상 ´스탬핑 킥´과 ´사커 킥´을 가장 잘 구사하는 선수였다.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히거나 마무리용으로 쓰기도 했지만 스텝을 묶거나 다음 동작을 위한 페이크 동작으로도 곧잘 활용했다. 일단 상대가 바닥에 등을 대고 눕기만 하면 다양한 레퍼토리로 괴롭히기 일쑤였다. 누운 상태에서 무자비하게 발이 날아드는지라 상대 입장에서는 굉장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인 싸움꾼, 생존을 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다
그런 쇼군에게도 UFC 진출은 상당한 모험이었다. UFC 룰에서는 스탬핑, 사커킥이 금지된 기술이었던데다 대신 프라이드 출신들에게 생소한 팔꿈치 공격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차, 포떼고 혹까지 달고가는 격으로 무에타이 선수가 복싱 무대에 진출하는 꼴이었다. 이럴 경우 적응을 위한 세심한 전략 변화가 필요했지만 '본능적인 싸움꾼 쇼군이 얼마나 변할수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대다수였다.
훗날 명예의 전당 헌액자 포레스트 그리핀에게 UFC 데뷔전에서 패할 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리핀이 자신에게 익숙한 무대에서 우월한 신체조건을 살려 편안하게 경기했던 것과 달리 쇼군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쇼군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갔고 평소의 살기등등했던 눈빛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쇼군의 적응력은 남달랐다. 장기인 그라운드 타격을 쓸 수 없게 된 쇼군은 타격 강화에 남다른 신경을 쏟았다. 특히, 연타보다는 한 방의 파괴력이 실린 펀치 카운터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러한 쇼군의 노력은 금세 결과물로 돌아왔다. 열세를 예상했던 척 리델전에서 깜짝 놀랄 카운터를 꽂으며 TKO승을 따내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복싱으로 따지면 인파이터가 슬러거가 된 듯 했다. 이러한 쇼군의 변신은 그리핀과의 2차전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팽팽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쇼군은 1라운드 초반 너무도 가볍게 그리핀을 펀치로 때려 눕혔다. 마치 '1차전은 내가 룰에 적응하지못해서 그렇다. 너정도는 내 상대가 아니다'라고 시위하는 듯 했다.
료토 마치다와의 일전에서도 쇼군은 또 한번의 변신을 시도한다. 잘 알려진대로 마치다는 킥 마스터다. 일정 거리를 두고 킥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능한 선수로, 펀처스타일의 상대들에게는 그야말로 극악의 상성이었다. 실제로 경기가 펼쳐지자 팬과 관계자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에타이식으로 가드를 굳건히 한 채 마치다를 상대로 킥 싸움을 벌였고 오히려 우세를 잡아버렸다. 마치다가 거리싸움을 벌이려하면 끊임없는 압박으로 흐름을 깨트려버렸다. 당황한 마치다는 평소처럼 경기를 풀어나가기가 어려웠고 결국 1차전 판정승, 2차전 넉아웃패로 쇼군에게 챔피언벨트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당시까지가 쇼군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오랫동안 경쟁력을 보이기는 했지만 최상위권에서는 내려와야 했다. 존 존스라는 체급 역사상 최고의 괴물에게 완패하며 벨트를 내준 이후 여러 강자들과 승패를 주고받으며 '재미있는 경기를 펼치는 선수'정도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2002년 공식 데뷔전을 치렀던 쇼군은 2023년까지 무려 20년을 넘게 싸워왔다.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많은 팬들의 가슴 속에서 '누구보다도 피가 뜨거웠던 남자'로 살아숨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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