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 스틸 이미지.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실존했던 등장인물에서 가톨릭이라는 공통된 연결 고리만 제외한다면, 이 작품은 종교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역사 영화다. 서세동점의 19세기 초 조선이 처한 현실과 동아시아 정세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어서다. 청년 김대건의 고뇌는 기실 당대 조선 지식인의 처지를 상징한다.
'1845년, 조선 근대의 길을 열다.' 영화의 부제로 내건 문구다. 1845년이면, 김대건이 조선인 최초로 신부가 되어 조선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시작한 해다. 곧, 영화에선 김대건 신부로부터 시작된 가톨릭 선교 사업을 우리나라 근대의 시작점으로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학계의 공식적 견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역사의 시대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을 전근대와 근현대의 분기점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되면서 우리 역사가 비로소 세계사의 흐름에 편입되었다는 인식에서다.
이는 무력을 앞세운 제국주의의 침탈에 식민지로 전락한 시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근대라고 하면, 대체로 서구 문물과 제도가 도입된 시기를 의미한다. 청나라를 오가던 사신과 역관에 의해 그것들이 소개되어 자생적으로 조선의 가톨릭교회가 형성되었으니, 영화가 규정하는 근대의 정의가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다만, 과유불급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에선 김대건 신부로부터 시작된 근대는 그러한 교과서적 정의와 다르다고 은연중에 강조한다. 영국이 아편전쟁을 도발해 청나라를 굴복시키고 수많은 이권을 강탈했지만,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신부들은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섰다는 식이다. 되레 조선의 민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처럼 그려져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세실 제독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제국주의자들과 신부들을 떼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장면마다 역력하다. 그래선지 전후의 맥락이 종종 끊기는 느낌이 든다. 영화 속 세실 제독이 조선 침략을 위해 선교사들을 이용했다고 분개하는 다블뤼 신부의 말은 과연 고증된 것인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