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스캠(Romance scam, 신용 사기)' 모바일이나 SNS에서 이성에게 호감을 산 후 교제를 빌미로 돈을 갈취하는 신종 사이버 사기 범죄 수법을 의미한다. 피해자들로서는 막대한 금전적 피해에 더하여 믿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심리적 절망감까지 더해져서 자칫 영혼이 무너질 수도 있는 악질적인 범죄다.
 
소셜 네트워크가 발달하여 거리와 지역에 상관없이 다양한 상대와 통신이 편리해지고 '온라인 데이팅'이 활발해지면서, 한편으로 상대방에게 접근하여 마음을 악용하는 로맨스 스캠 사기범도 급증하고 있다. 최근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피해사례가 잇달아 등장하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12월 7일 방송된 JTBC <세계다크투어>에서는 '온라인에서 만난 백마 탄 왕자, 당신의 계좌를 노린다'편을 통하여 유럽에서 벌어진 영화보다 더 충격적이고 황당한 실제 로맨스 스캠 범죄이야기를 조명했다. 범죄학자 박미랑이 이날의 다크 가이드로 나섰다.
 
피해액 121억, 희대의 '로맨스 스캠'
 
 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 JTBC

 
2021년 기준, 미국에서만 로맨스 스캠 피해자는 약 2만 4천 명에 이르며 피해 손실액은 1조 430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미국 FBI(미 연방 수사국)는 로맨스 스캠이 단순히 사기를 통한 금전적 피해를 넘어서, 신분도용을 통한 각종 불법거래 및 금융범죄와의 연관성이 심각하다고 보고 중대범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9년 유럽을 떠들썩하게한 로맨스 스캠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단 1명이고 피해자는 다수의 여성으로 총 피해액만 무려 121억에 이르렀다. 한 데이팅앱을 통하여 범인을 만난 수많은 여성들은 훈훈한 외모에 화려한 재력을 과시하는 남자의 달콤한 속삭임에 반하여 사랑에 빠졌다.
 
사건의 시작은 2012년 영국 런던이었다.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런던에서 홀로 거주하던 브리지타는 데이팅 앱에서 알게된 모디체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연인이 됐다. 모디체이는 자신이 비행기 조종사이자 전직 비밀요원이라고 소개했다. 브리지타는 모디체이와 함께 고급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세계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모디체이는 브리지타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과 계속 함께 있을 것을 제안한다. 사랑에 바진 브리지타는 모디체이의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이는 함정이었다. 모디체이는 브리지타가 자신의 통제권 안에 들어왔다고 확신하고 본색을 드러낸다. 그는 브리지타의 개인정보로 신용카드를 발급한 뒤 돈을 물쓰듯이 쓰고 다녔다. 브리지타는 순식간에 1억 3000만 원에 이르는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다. 그런 브리지타를 남겨두고 모디체이는 어느날 혼자서 태국으로 떠나버렸다.
 
브리지타는 자신이 사랑이 아닌 사기를 당했고 모디체이에게 감정적으로 학대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모디체이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브리지타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뒤집어씌우는가 하면, 그동안 두 사람이 주고 받았던 통화-메시지 등 자신과 관련된 기록을 모두 삭제하라고 협박했다. 개인정보가 모두 모디체이에게 넘어간 상태였던 브리지타는 두려움에 그의 협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9년, 모디체이는 사이먼 레비예프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등장한다. 이스라엘 출신의 다이아몬드 사업가로 자신을 소개한 사이먼은, 실존인물인 이스라엘의 다이아몬드 부호 레브 레비예프의 아들을 자칭하며 SNS에 매일같이 부유한 '영앤 리치'의 일상을 과시했다. 화려한 금수저 가문에다가 훈훈한 외모와 패션감각까지 갖춘 사이먼의 모습은 여성들의 호감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실리 피엘호이도 사이먼에게 빠진 여성 중 하나였다. 런던대 출신의 IT 컨설턴트였던 세실리는 동화같은 사랑을 꿈꾸는 연애지상주의자였다. 세실리는 데이팅앱을 통하여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이먼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그의 제안으로 첫 만남을 가진 이후 화려한 재력과 로맨틱한 매너에 홀딱 반하여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두 사람은 교제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런던에 집을 구하고 동거를 약속한다.

사이먼은 세실리와 연인이 된 후 놀라운 이야기를 고백한다. 자신의 기업에 대규모 계약을 진행하면서 라이벌 기업의 협박을 받고있다는 것. 사이먼은 세실리에게 자신의 집에 무단침입한 괴한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가 하면, 자신을 수행하던 경호팀장이 피습을 당하며 피를 흘리고 있는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전송했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세실리는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이며 사이먼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 JTBC

 
사이먼은 다급한 상황과 보안 문제를 이유로 자신의 신용카드를 쓸 수 없게 되었다며 세실리에게 임시방편으로 돈을 빌려줄 것을 요구한다. 세실리는 부탁을 받아들여 자신의 신용카드를 사이먼의 계좌로 연결해줬지만 카드는 순식간에 한도초과에 이르렀다. 이후로도 사이먼의 금전요구는 그치지 않았고 세실리는 결국 25만 달러(약 3억 원)에 이르는 은행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세실리가 큰 돈이 필요한 이유를 질문하면 사이먼은 자신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고 둘러댔고 세실리의 송금이나 연락이 늦어지면 끊임없이 메시지 폭탄을 날리며 독촉했다. 견디다 못한 세실리는 돈을 갚아줄 것을 요구했으나, 사이먼이 보낸 것은 가짜 수표였다. 세실리는 사이먼에게 연락했지만 그는 이미 돈을 송금했다며 나 몰라라로 일관했다.
 
궁지에 몰린 세실리는 결국 카드회사에 연락하여 자신의 사정을 솔직히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직원들은 세실리에게 요청하여 사이먼의 사진을 확인한 뒤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알고보니 사이먼은 진짜 이름도 다이아몬드 CEO도 아니고 그저 여자들을 등쳐먹는 '프로 사기꾼'이었다는 것. 사이먼은 앞서 모디체이라는 이름으로 브리지타를 갈취한 것을 비롯하여 2015년에도 3명의 핀란드 여성에게 사기를 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상습범이었다.
 
큰 충격에 빠진 세실리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세실리는 노르웨이로 도피했지만 사이먼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세실리에게 끊임없이 연락을 취하며 보복하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용기낸 피해자들... 5개월 만에 출소한 범인
 
 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 JTBC

 
세실리와 비슷한 시기에 사이먼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여성들은 또 있었다. 사이먼은 세실리처럼 피해여성들에게 갈취한 돈으로 값비싼 클럽을 돌아다니며 탕진하거나 다시 새로운 사냥감을 물색하는 비용으로 써먹는 패턴이 이어졌다. 스웨덴 출신의 사업가인 페르닐라 쇼호름, 러시아 출신의 모델 폴리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페르닐라는 사이먼과 연인관계는 아니었지만 함께 럭셔리 여행을 다니면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사이먼이 초호화여행에 지불한 비용은 물론 모두 세실리같은 피해자들이 보내준 돈이었다.
 
사이먼은 페르닐라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세실리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레퍼토리, 똑같은 사진을 활용하여 '적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고 속여서 금전을 요구했다. 알고보니 피를 흘리고 있던 경호팀장은 사이먼의 지인이었고, 피를 흘리는 사진은 술집에서 다른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서 얻은 부상이었다. 우연한 사고조차 여성들을 속여서 동정심을 끌어내기 위한 수법으로 악용한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페르닐라는 사이먼과의 우정을 믿고 선의로 여러 차례 거액의 돈을 빌려줬다. 그리고 사이먼의 사기극이 이어지는 동안 경찰은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사이먼의 사기극을 멈춘 것은 피해자들의 용기였다. 세실리는 "더 이상 자신같은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노르웨이 최대의 언론사를 찾아가 자신의 사적인 부분까지 모두 드러내야 하는 피해를 감수하며 사이먼의 실체를 폭로한다.
 
사이먼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페르닐라에게도 SNS를 통하여 기자들이 연락을 취해온다. 큰 충격을 받은 페르닐라는 사이먼을 직접 만나 진실을 확인하려 했지만, 기자들이 잠복해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이먼은 현장에서 도주했다. 사이먼은 전화를 통하여 페르닐라에게 보복하겠다는 협박까지 해온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로 일관하는 사이먼에게 분노한 페르닐라 역시 세실리와 마찬가지로, 프라이버시 공개까지 감수하며 그의 범죄를 폭로하는 데 앞장서기로 결심한다.
 
심지어 이들보다 더 한 수위였던 피해자가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던 아일린 샬럿은 사이먼의 또다른 피해자였다. 그녀는 사이먼의 기사를 보고 자신이 다른 피해여성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이먼에게 속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아일린은 대담하게도 오히려 사기꾼인 사이먼에게 빌려준 돈을 다시 받아내야겠다고 결심한다.
 
패션업계쪽에서 일하던 아일린은 사이먼이 입고 다니는 옷이 모두 값비싼 명품이고, 실제로 그가 소유한 유일한 재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이먼은 돈이 궁해질 때면 명품 옷을 팔아서 비용을 충당하곤 했다. 아일린은 사기행각이 들통나 사방에서 쫓기고 있는 사이먼이 당장 의지할 곳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사이먼을 적당히 구슬려 그의 옷을 대신 판매해주겠다며 모두 챙겨간다.
 
그리고 아일린은 사이먼의 옷을 온라인 사이트에 올려 판매하기 시작하여 그 수익을 챙겼다. 사이먼에게 돈을 독촉하는 전화가 걸려오면 옷이 아직 팔리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뒤늦게야 속은 것을 알게 된 사이먼은 길길이 분노하며 날뛰었지만 아일린은 비웃으며 SNS에 사이먼의 고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사진을 올려 조롱하기도 했다. 더이상 사기도 못 치고 명품 옷도 모두 잃어버린 사이먼은 결국 구차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일린은 끈질기게 비행기표 값을 요구하던 사이먼이 어느날 연락이 끊기자 그가 해외로 도피했음을 직감하고 그제서야 경찰에 신고했다. 사이먼의 지갑에서 몰래 확인해둔 위장용 신분까지도 경찰에 전달했다. 결국 사이먼은 공항에서 인터폴에 의하여 체포되며 기나긴 사기행각은 막을 내렸다.
 
레비예프-모디체이 등 수많은 가명을 사용했던 사이먼의 진짜 정체는 이스라엘 출신의 시몬 예후다 하유트였다. 1990년생으로 10대부터 위조, 절도, 사기를 저질렀던 사이먼은 2011년 처벌을 피하여 해외로 도주한 이후 자신의 이름을 사이먼 레비예프로 개명하고 다이아몬드 재벌가의 후손 행세를 해왔다.

하지만 수많은 피해자들이 양산했던 사이먼이 모국 이스라엘로 인도되어 받은 형량은 고작 징역 15개월, 그나마도 코로나19의 영향과 모범수 판정으로 실제로는 5개월만에 출소했다.

피해자들의 피해는 개개인으로는 컸지만 범죄의 경중으로 봤을 때 경찰이 전면에 나서서 공조할 정도의 큰 규모는 아니었다. 사이먼이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을 넘나들며 사기를 쳤다는 것도, 국제범죄의 특성상 공권력의 추격이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가해자는 한없이 가벼운 처벌을 받고, 피해자들이 받은 피해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인 모순적인 현실이었다.
 
다행히 피해자들을 위하여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사이먼이 사칭하고 다녔던 다이아몬드 재벌 레비예프가의 진짜 상속녀인 허기 레비예프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문과 기업도 사이먼의 사기 행각으로 이미지 실추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사이먼을 고소했다.
 
또한 허기는 피해여성들을 돕기 위하여 세실리, 페르실라, 아일린 등이 동참하여 주얼리 컬래버레이션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판매수익은 전원 로맨스 스캠 피해자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에 기부됐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불미스러운 사건과 무관하다며 모른 척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피해자들도 돕고 기업 이미지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마케팅 효과가 된 셈이었다. 또한 대형 기업의 참여와 홍보로 피해자들을 향한 부정적 시선이 개선되는 효과도 있었다.

사이먼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사이먼은 출소 이후에도 여전히 SNS를 통하여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피해여성들에게 오히려 책임을 전가하는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범죄를 소재로 한 OTT 다큐멘터리에 불쾌감을 드러내는가하면고, 여전히 활발한 SNS 활동과 책 집필, 팟캐스트 출연, 부동산 컨설턴트 활동 등 오히려 자신의 사기 전과를 유명세로 활용하여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거짓말 중독이 자기 자신까지 세뇌시키며 삶 자체가 되어버린 사기꾼의 모습이다.
 
로맨스 스캠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도, 특정 성별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온라인 상에서 외국인들을 통한 로맨스 스캠 범죄가 잇달아 등장하며 극성을 부르고 있다. 군인을 사칭하여 연애와 결혼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거나, 투자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자식의 수익 상황을 보여주며 투자를 권유하는 방식 등이 주된 패턴이다.
 
사이먼 사건의 피해자들인 페르실라와 세실리, 아일린 등은 다행히 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자신들의 일상을 열심히 회복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피해자들이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들은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피해자 탓을 하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악플이었다. '공정한 세상 가설'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나만 제대로 행동하면' 불행을 당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피해자들은 '그럴 만해서' 당했다는 선입견으로 빠지기 쉽다.

사이먼의 사기를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손가락질을 감수하며 앞으로 나서서 자신의 피해사실을 밝힌 그녀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차 가해'라는 용어가 익숙해진 요즘 시대에, 다양한 신종범죄의 위협에 노출된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와 배려가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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