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작곡가의 '진혼' 연주 장면

이정호 작곡가의 '진혼' 연주 장면 ⓒ 이정호 제공

 
"음악적 갈망을 실현시켜 주기 때문에 작곡가로서는 꿈의 무대인 셈이죠."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with 아창제>(8월 19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의 네 번째 곡을 작곡한 이정호(40)씨는 자신의 등용문이었던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를 이렇게 소개했다. 특히, 그의 대표곡인 '합창과 진도씻김굿, 국악관현악을 위한 진혼'은 2017년에 진행된 제9회 아창제의 선정작이다.

'아창제'는 서양의 클래식이 주도하던 국내 순수 음악계에서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들이 창작활동에 몰두할 수 있도록 아르코(ARKO,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다. 더구나 아창제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완성도를 드높인 이정호 작곡가가 자신의 터전에서 선보이는 무대는 이전과 다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에 시작한 이래 13회째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창제가 지금까지 수도권에서만 열렸던 전통(?)을 깨고 지방으로 투어를 나선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준비한 음악페스티벌에서 첫 주자로 나서는 그의 책임감이 막중해 보인다.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대 국악과를 졸업한 이정호 작곡가는 오스트리아 프란츠슈베르트음대에서 잠시 석사과정을 밟은 적이 있었지만, 영남대 음악과 겸임교수와 대구시립국악단 상임단원을 거쳐 지금은 부산대 한국음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일 정도로 줄곧 대구와 부산에서만 활동해왔다. 지난 22일 수화기 너머 구수한 톤으로 얘기하던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페스티벌 '아창제'와 촘촘하게 쳐진 거미줄 같은 인연을 들려줬다. 총 세 번까지 선정될 수 있는 아창제에 그는 9회와 13회에 걸쳐 두 번이나 선정되었다. 이 덕분에 아창제를 두고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시켜준 무대라고 소개하는 이유도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제2의 수도이지만 이런 축제를 자주 접할 수 없었던 부산 관객들 앞에 서는 그의 심정이 궁금했다.

"아창제는 여느 작곡가들이 평소에 생각해왔던 것을 음악적 상상들을 실현시켜주는 곳입니다. 저도 여기에서 수상한 이후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됐어요. 사실 아창제는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같은 작곡가들에겐)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부산이지만, 그동안 아창제와 같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국악페스티벌이 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비록 그의 작품들이 전국의 다른 지역에서 꾸준하게 위촉받아 연주를 했던 적이 많았더라도, 그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 이번 연주회를 여는 심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설렘에 가득찼다.
 
10년 만에 완성된 진혼곡을 들려줍니다.

이 작곡가가 이번에 공개하는 작품은 2017년 아창제에 선정된 합창과 진도씻김굿, 국악관현악을 위한 '진혼(Requiem)'이다.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주는 무속음악인  '굿'을 소재로 합창과 국악관현악이 함께하는 국악레퀴엠인 것이다. 이처럼 망자의 혼을 기리는 진혼곡이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영남 출신인 그가 경상도의 '오구굿'을 놔두고 굳이 전라도의 '씻김굿'을 토대로 곡을 완성시킨 배경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 있을까. 

"예전에 씻김굿에서 크게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솔직히 진혼곡을 만든 계기는 진도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 있었어요. 원래 진혼곡을 염두하고 곡을 만들 계획이었지만, 세월호 당시의 감정이 격하게 올라왔어요. 초연은 2017년에 했지만, 사건이 터졌던 2014년 직후부터 착수했습니다. 충격적인 장면을 뉴스로 접하면서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던 것 같아요. 특히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종합행위예술인 씻김굿에서 아주 극적인 선율을 듣고 제대로 된 진혼곡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진혼'은 부산뿐 아니라 서울, 대구, 전주, 청주 등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꾸준하게 연주를 해왔다. 하지만 이 곡을 통해 자신은 작곡가로서 완성도를 높였고 외부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진혼과 관련된 활동 때문에 더 다양한 지역에서 작품의뢰가 오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창제가 부산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는 감회가 새롭네요. 특히 지역 출신이다보니 이렇게 지역에서 공연하는 것이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그의 작품들을 이어주는 하나의 메세지에 관해
 
 이정호 작곡가

이정호 작곡가 ⓒ 이정호

 
여기에 이 씨가 줄곧 작업해왔던 작품들을 살펴보면 일정한 공통점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이번에 연주하는 <진혼>을 비롯해 <별> <초인> <기억의 시> <별한> <불꽃> <부활> <야연> <바다> <역동의 강> <시간의 흐름> 등 300여 작품의 제목만 들어도 한 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아련한 상상을 그리워하며,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세계관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죽은 이의 영면을 위한 선인들의 마음가짐을 오롯이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가 추구하는 일련의 음악적 세계관은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다.

"제게 가장 큰 관심사는 삶과 죽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이 세계와 사람은 어떻게 될까?'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어요. '내가 죽으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말이죠. 사실 죽음이 누구에게나 두렵지 않나요? 그래서 음악을 통해서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음악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한 번쯤은 되돌아보고 더나아가 이 삶을 더욱 의미있고 윤택한 삶으로 만들어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고요."

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9회 아창제 선정작인 '합창과 진도씻김굿, 국악 관현악을 위한 진혼'은 무속음악 '진도씻김굿'을 모티브로 쓴 국악 레퀴엠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의 합창 가사와 진도씻김굿 길 닦음 중 '애소리'와 '나무아미타불'을 차용해 가톨릭, 불교 등 종교를 뛰어넘는 곡으로 완성시켰다. 여기에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으로 제목을 붙인 이유는 살아남아 있는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힘주어 말했다.

"곡은 크게 세 구간으로 구분됩니다. 우선, 어둠의 지배자에게 몸이 빼앗기는 장면인 <서곡, 비극의 시작> <혼란 속 두려움> <휘몰아치는 파도, 귀신의 춤> <슬픔, 분노, 고독>이 끝나면 넋을 위로하는 의식인 <진혼, 넋을 고이 달래어 잠들게 하다> <떠나보내는 길, 잡고 싶은 마음> <흩날리는 꽃>으로 이어져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모두를 위한 기도'로 매듭짓게 됩니다."

하나의 음악으로 흐르지만, 세 흐름으로 이어지는 곡은 2017년 초연 당시에는 15분 내외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씻김굿이라는 소재를 더 추가하여 20분이 넘는 곡으로 완성시켰다. 이제는 더이상 손을 보지 않을 완성작으로 매듭짓겠다며 이후에는 또다른 소중한 전통소재를 활용하여 작곡에 도전할 것이라 말했다.

"도전할 계획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늘 시간이 문제인 거 같아요. 처음 아창제에 선정되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 도전하지 못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세 번까지 선정될 수 있는 아창제에도 더 좋은 곡을 출품할 수 있도록 늘 정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창제는 제 음악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더 열심히 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고, 그로 인해 곡 작업에서 작품을 대하는 집중도가 높아졌거든요. 그것은 제 음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