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량우 배우.
박은주
"할머니, 할아버지가 TV를 보며 환하게 웃고 계셨어요."
올해 32살 된 배우 박량우씨가 고등학생 시절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다. 그는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다. 조부모님은 평생 농사일, 방앗간일, 집안일을 해오셨다. 오랜 노동의 고단함이 주름처럼 얼굴에 남아 있었는데 TV를 보며 웃을 때 그 고단함이 사라져 보였다고 한다.
"(조부모님이) 영화 <마파도>를 보고 웃고 계셨어요. 만일 누군가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보고 고단함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는 그 흔한 프렌차이즈 치킨집도 몇 개 없던 시골이라 연기학원이 있을 리 만무했다.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려워 부모님께 도시로 학원을 보내달라고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어릴 땐 빈 교실이나 방에서 영화를 보면서 무작정 배우를 따라 하는 게 전부였어요."
실행력 없는 잠재력은 평생 드러나지 않아
-어린 시절 배우가 되기 위해 꿈을 꿨다면, 배우가 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했나요?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어요. 2년 동안 훈련만 하기 아까워 군악대에 지원했어요."
그가 지원한 군악대는 소위 '예술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군악대에 가면 배우가 되는 데 도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는 하버드·줄리아드 음대에 다니는 학생, 현역 가수, 연예인 등 재주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과 함께 2년여 시간 동안 군내 각종 행사를 진행했다. "재주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랑 생활하다 보니까 '나도 재능 있구나'하고 우쭐해졌어요."
-제대 후 배우로 활동했나요?
"아니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는 그때까지 '제대로 된 연기'를 한 적 없었다. 촬영이라고 해봤자 이름 없는 단역으로 몇 번 출연한 게 전부였고 군악대에선 행사를 진행하는 MC 역할을 주로 맡았다. '연기'와는 거리가 먼 활동이었다. "그때까지 자신감만 가득해서 '연기할 거야'란 생각만 있었던 거예요."
-아주 어릴 적부터 바라던 꿈인데 왜 실행하지 않았나요?
"오래되고 소중한 꿈이라 실력이 부족해서 포기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믿었는데 남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꿈을 포기할까 봐 두려웠어요."
그는 연기를 평가받고 싶지 않으면서 배우가 되고 싶은 '모순'에 빠졌다. "모순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은 결국엔 '연기한다'는 것 뿐이었어요, 그런데 꽤 오랫동안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포기할 용기도 없었고요." 그는 제대 후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도 연기를 시작하지 않고 영화 제작부 스태프로 일했다. "촬영장의 흐름을 알면 연기할 때 도움이 되겠단 생각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까지 연기 할 용기가 안 났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촬영장에 나가 설렜고, 나도 언젠가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제작부는 카메라 밖의 일을 관장할 뿐 카메라 앞에 서는 배우와는 거리가 멀었다.
"스태프로 일할 때 연기하는 배우들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동시에 '나도 연기 하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어요." 갈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꿈이 부서지더라도 시도 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