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을 연출한 이돈구 감독.

영화 <봄날>을 연출한 이돈구 감독. ⓒ 콘텐츠판다

 

이 감독의 이야기 방식엔 낯섦과 친숙함이 공존한다. 성폭행 피해자와 가해자의 만남을 섬뜩하게 그린 <가시꽃>(2012), 알츠하이머 증상이 있는 노인으로 파국을 맞이한 가족을 다룬 <현기증>(2014) 등만 봐도 그렇다. 이돈구 감독이 발표한 작품은 당시 사회 이슈와 본인의 경험담의 화학적 결합물처럼 보인다.
 
최근작 <봄날>은 보다 개인 경험의 지분이 많은 작품이었다.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는 기간 동안 벌어지는 소동극인 이 영화는 장남 호성(손현주)의 시각을 중심으로 흐른다. 불편하면서도 동시에 웃음과 눈물이 나는 묘한 힘이 있다. 충남 공주 출신이기에 영화 속 배경도 충청도 지역이다. 과거 폭행과 살인 혐의로 형을 살다 온 호성이 온갖 조문객을 맞이하면서 큰 싸움이 나기도 하고, 자기 자식들에게 되려 혼나기도 하는 상황이 마치 현실 어딘가에 실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의 시작점
 
25일 서울의 모처에서 만난 이돈구 감독은 할아버지 장례식 때 경험이 모티브였다고 운을 뗐다. "10년 전 일이다. 상주로 계신 아버지나 삼촌도 그렇고 여러 관계를 제 3자 입장에서 보니 뭔가 블랙코미디적 느낌이 있었다"며 그는 당시 이야기 일부를 전했다.
 
"상을 잘 치르려다 보니 생기는 일들이었다. 분향소에 홀로 계신 아버지의 처진 어깨를 봤는데 마치 어떤 남자가 겨울 끝자락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이 사람에게 다시 봄이 올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영화 속 이야기는 90프로가 다 허구다. 폭력배 설정은 어떤 모티브가 있던 건 아니고 후회스러운 삶을 산 인물이었으면 해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할아버지 장례식 때 불편한 순간이 있었거든. 조문객이 누나에게 술 심부름을 시킨다거나, 고스톱을 치기도 했고. 그 순간이 모티브가 돼 조폭이 장례식장을 헤집어 놓으면 영화적으로 흥미롭겠다 싶었지."

  
 영화 <봄날> 관련 이미지.

영화 <봄날> 관련 이미지. ⓒ 콘텐츠판다

 
자칫 주인공의 과거가 일부 관객에겐 불편하게 다가갈 여지가 있었지만, 영화 중반부를 지나다 보면 묘하게 설득되기 시작한다. 감독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에 초점을 맞추진 않았다"면서도 "손현주 선배의 몫이 크다. 밉지 않으면서도 뭔가 짠한 감정이 그 분을 볼 때마다 들었는데 역시나 현장에서 호성 캐릭터가 불편해 보이지 않게 조율하셨다"라고 짚었다. 사실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던 배경에는 손현주의 캐스팅이 마중물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영화 <현기증> 인터뷰 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말했는데 이게 바로 그 영화다. 투자 과정에서 잘 안돼서 묵혀두고 있다가 현재의 제작사 대표님을 만났는데 왠지 이 시나리오를 드리고 싶더라. 보시더니 어떻게 해서든 만들자며 배우에게 바로 주자셨다. 손현주 선배님이 보시더니 바로 하겠다고 하셨고. 몇 년을 준비하다 잘 안되던 게 단 몇 달 만에 촬영까지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2015년경 완성한 초고의 제목은 < 12월의 봄 >이었다. 제가 원래 시나리오 수정을 하지 않고 영화를 찍어왔는데 이 작품은 10번 넘게 수정했다가 결국 다시 초고로 돌아왔다. 사실 전 초고의 힘을 믿는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올 때마다 초고는 나침반처럼 방향을 말해주거든.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만들고 싶은 게 있다. <봄날>이 그중 하나였다. 그런 마음이 들면 어떻게든 영화가 만들어지더라."

 
연기의 향연
 
일찌감치 배우를 꿈꾸며 학부생 시절 대학로 무대를 경험했던 이돈구 감독은 한 선배에게 카메라를 빌리며 이것저것 찍고 만들기 시작하다 자연스럽게 연출에 입문한 경우였다. "배우 연기에 집착하는 게 있다. 영화 볼 때도 배우의 연기가 딱 맞아 떨어질 때 희열감을 느낀다"며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봄날> 손현주를 비롯해 호성의 모친 역인 손숙, 호성 동생을 연기한 박혁권, 이웃 친구로 나오는 정석용 등은 모두 감독이 이미 점 찍어둔 캐스팅이었다. 특히 입관 장면에서 배우 정석용이 술에 취한 채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다가 땅 속에 떨어지는 장면은 압권 중 하나다.
 
"다들 오래 연기하셨기에 한 번씩은 작품서 만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서로 처음 만났다더라. 박혁권 배우, 정석용, 손현주 배우님은 대본리딩 직전 때부터 이미 친해져 오셨다. 현장에선 정말 동네 친구처럼 농담도 하시곤 했다. 제작사에서 따로 술자리를 만들기도 했고, 사적으로 몇 번씩 만나셨더라. 손숙 선배님은 정말 현장서 엄마처럼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모든 배우들이 다 저의 1순위였다."

 
여전히 이돈구 감독은 할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현재 그는 코로나19 펜데믹을 지나며 느꼈던 권태감이나 소외감을 주제로 실험적인 영화 한 편을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본격 촬영은 6월부터라며 그가 말을 이었다.
 
"확실히 전 어떤 계획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살면서 받은 자극을 모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 안에 사회적 이슈가 들어갈 수도 있고, 장르 요소를 넣을 수도 있지. 앞으로 할 이야기들도 결국 삶에서 얻어질 것 같다. 그래서 오감을 열어놓으려고 한다. 그래도 안 떠오르면 영화나 책, 예능 프로를 볼 때라도 감각을 열어놔야지. 그럴 때마다 뭔가를 얻는다."
 
 영화 <봄날>을 연출한 이돈구 감독.

영화 <봄날>을 연출한 이돈구 감독. ⓒ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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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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