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드라마치고는 조금 밋밋하네?' tvN <우리들의 블루스>를 4회까지 시청하면서 (드라마에 대한 만족도와는 별개로)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 억척스러운 은희(이정은)와 돈이 절실한 한수(차승원)의 첫사랑 얘기가 펼쳐지고, 성질 더러운 동석(이병헌)이 버럭 화를 내도 왠지 모르게 '순한 맛'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노희경 드라마'에 대한 일종의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노희경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인간미 가득한 서정적 작품을 써왔다. 착하고 곱다고 할까. 하지만 SBS <괜찮아, 사랑이야>를 기점으로 기조가 달라졌다. 파격적인 설정과 실험적인 소재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솔직하고 발칙한 대사들로 시원한 쾌감을 줬다. 매번 고민할 거리를 던져줬다는 점도 노희경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사회가 눈 감은 진지한 문제

5회를 보고 성급했음을 깨달았다. '역시 노희경이구나!'라며 감탄했다. 노희경은 '청소년 임신'이라는 우리 사회가 눈감고 있는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었다. 또, 2021년 1월 1일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공백 상태에 놓여 있는 낙태 문제를 고민했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적나라하면서도 진중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청소년의 사랑'에 대해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다.  

"무슨 말을 해. 네가 사다 준 임신테스트기 세 번 했는데 싹 다 두 줄 나왔다는 말? 내 인생 조졌다는 말? 이제 병원 가서 지울 거라는 말? 억울해. 딱 두 번밖에 안 했는데. 피임도 했는데." (영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tvN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tvN
 
18살 고등학생 방영주(노윤서)와 정현(배현성)은 몰래 연애 중이다. 전교 1, 2등을 할 만큼 모범생인 두 사람이 비밀 연애를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부친들 때문이다. 영주의 아빠 호식(최영준)과 정현의 아빠 인권(박지환)은 알아주는 앙숙 관계인데,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댈 정도이다. 호식과 인권은 오로지 자식만 바라보며 사는 팔불출 아빠이기도 해서 영주와 정현은 입을 꾹 닫아야 했다.

영주는 제주가 지루하기만 하다. "나를 모르는 사람 없는 이 촌 동네"에서 도망치고 싶다 '인서울'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한 건 그 때문이다. 따분한 제주에서 유일하게 지루하지 않은 건 정현 하나였다. 물론 영주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사랑은 한 때야. 우리 감정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질 거야. 흔적도 없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엄마의 영향 때문이다. 

엄마가 떠난 건 정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현은 사랑에 회의적이지 않다. 그는 "우린 다를 수도 있잖아"라며 사랑을 표현한다. 영주는 그런 순수한 정현이 좋았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영주는 자신의 생리가 멈췄다는 걸 알았다. 3달 전이 마지막이었나. 불안감이 엄습했다.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하게 두 줄이 그어졌다. 맙소사, 임신이었다.

"우리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네가 지운다고 하면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볼 거고 낳는다고 하면.." (정현)
"어떻게 낳아? 대학은? 인서울은? 네 인생 내 인생 다 걸고 아기 낳을 만큼 우리 사랑이 대단해?" (영주)


임신 문제는 전교 1등에게도 풀기 버거운 문제였다. 그렇다고 아빠에게 털어 놓을 수도 없었다. "우리가 지금 애 가진 걸 알면 전직 깡패 네 아빠는 너 죽일 거고, 우리 아빠는 차마 사랑하는 나 못 죽이고 자기가 죽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임신 중지'밖에 선택권은 없었고, 아빠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영주와 정현은 부르는 게 값인 병원비를 위해 돈을 모아야 했다.

어렵게 찾은 산부인과에서 영주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의사는 임신 22주라고 진단했고, 6개월이면 유도분만으로 꺼내야 한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영주는 시종일관 반말을 하며 불친절하게 구는 의사에게 "청소년 환자면 반말해도 돼요?"라고 따지기도 했지만, 이 상황에서 '갑'은 정해져 있었다. 영주는 "그냥 수술해주시면 안 돼요?"라고 사정했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었다.  

수소문 끝에 20주 이상도 임신중단을 해준다는 병원을 찾아낸 영주는 혼자 출발했다. 정현은 없는 돈에 택시를 타고 영주를 따라갔다. 영주를 홀로 수술실로 들여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료실로 들어간 두 사람에게 의사는 "아기가 너무 건강하다"며, 태아 심장소리를 들려줬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영주는 비명 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하지 마세요. 무서워요. 정현아, 나 무서워. 제발 안 듣고 싶어." (영주)

영주는 애써 태아의 존재를 외면해 왔다. 정현에게도 "아기란 말 쓰지 마. 죄책감 갖게 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었다. 진료실에서 태아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영주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애써 담담한 척, 강한 척 했으나 18세 고등학생에게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낙태를 결정해야 하는 과정이 어찌 두렵지 않았겠는가. 부모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했던 그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입법 공백과 정책 부재

청소년 임신 및 출산은 그동안 여러 영화를 통해 다뤄진 적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과속스캔들>, <제니주노>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의 성 자체를 금기시하는 어른들에게 이런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는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해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외면한다면 영주나 정현처럼 힘겨운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을 도울 수 없다.

'스마트학생복'이 청소년 6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출산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64.7%(부정적 42.8%, 매우 부정적 21.9%)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청소년의 결혼 및 출산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결혼 및 출산을 한 청소년들에게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2.2%(291명)이나 됐다. 통계청 조사(2020년)에 따르면, 한 해 출산하는 10대의 수가 918명이라고 한다.

물론 영주와 정현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의 선택이 무엇이든 존중받기를 바란다. 임신중단이든 출산이든, 그 판단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며 그 어떤 비난도 부당하다. 

한편, 낙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지만, 아직까지 대체 입법이 마련되지 않아 많은 여성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라 정부와 국회가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신 중지는 여전히 음성적으로 이뤄진다. 영주처럼 인터넷으로 불법 낙태약을 구하거나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몰래 찾아다녀야 한다. 

입법 공백과 정책 부재는 고스란히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수술비가 '부르는 게 값'인 만큼 청소년들의 경우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노희경이 던진 화두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과연 노희경은 어떤 대답을 제시할까. 신인급 배우들로 한 회를 채운 과감한 시도도 흥미롭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우리들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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