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배트맨> 포스터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더 배트맨>이 개봉된 지 45일. 4월 14일 자 기준으로 전국 관객 90만 2680명이 보고 갔다. 유니버스란 이름이 붙으며 몇 개의 캐릭터로 재탄생한 배트맨은 동일한 장르 형식에 여러 의미를 담아왔다. 이번 <더 배트맨>은 부패한 사회 속에서 법이 아닌 스스로 정의를 만들어낸 두 남자의 모습을 그렸다. 타락한 정·재계 인사들을 살해하며 짓밟힌 삶에 대한 복수를 자행하는 리들러와 법망을 벗어나 자경단으로 활동하며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배트맨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불안정한 시대상이 만든 한 끗 차이의 영웅과 악당을 선사했다.
그렇다면 맨 처음 영화화되었던 배트맨은 어땠을까? 1943년 배트맨 말이다. 배트맨은 그 존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조커나 펭귄없이 배트맨은 존재할 수 없다. 빌런 없는 영웅은 없는 법. 영화 <조커>의 주인공은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미국 시민들의 삶을 통째로 갈아 넣었다. 모든 배트맨은 악당을 설계한 후 탄생한다. 배트맨이 싸우는 '악'이 배트맨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1943년 배트맨의 악당은 2차 세계 대전 전범국, 일본이다.
전쟁 영웅 배트맨
지금도 전쟁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미국 국방부는 영화 산업에 주요한 투자자이다. 이것은 자본의 문제를 넘어 국가 이데올로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2차 세계 대전 때문에 태어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에는 미국의 별이 박혀있다. 전쟁영화는 미국의 '애국심'을 드러내는 가장 쉬운 수단이다.
1943년 미국은 전쟁을 겪지 않은 국민들을 영화라는 가상 체험을 통해 2차 세계 대전으로 몰아넣어야 했다. 청년들의 참전을 독려하고 전시 경제와 물자 동원에 대한 거부감도 줄여야 했다. 그리고 '부정 못 할 악마와 싸우는 미국'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전쟁 전에 유행했던 만화는 그 양상이 달랐다.
DC코믹스의 주역인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은 모두 1930년대 전후로 탄생했다. 만화는 대공황 때 삶의 재미를 잃어버린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유흥거리였다. 국가가 공동체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신호는 코믹스를 통해서 자신을 구원해줄 영웅으로 재탄생했다. 악당과 거침없이 싸워나가는 영웅들이 그려진 만화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폭발적인 분노를 소소하게 분산시켰다. 그 후 전쟁이 시작되면서 만화는 본격적으로 영화화되며 프로파간다의 매체가 된다.
DC코믹스의 슈퍼맨은 일왕을 잡아 온다. 원더우먼은 아마조네스 전사의 몸으로 참전한다.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는 아예 2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이다. 그리고 1943년 배트맨은 미국 정보부 소속의 에이전트가 된다. 그는 미국 내에서 일본이 벌이려고 하는 위험한 계획을 저지한다. 여기서 특이한 점이 있다. 배트맨이 경찰과 공조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