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웠던 어느 여름 날,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를 간 아들 은찬이가 물에 빠진 친구 기현(성유빈)을 구한 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로부터 1년 뒤 은찬은 의사자로 선정된다. 시간이 약이었을까.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은 자식을 잃은 부모라면 으레 겪어왔을 법한 충격과 고통에서 차츰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한 상황이었다. 문득문득 솟구치는 분노와 아픔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에 비해 슬픈 감정은 많이 잦아든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철은 은찬의 생명을 대가로 목숨을 건진 기현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기현은 부모 품을 벗어나 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살아가는 중이었다. 도배 업체를 운영하는 성철은 어린 기현이 짊어진 고단한 현실이 안쓰러웠는지 그에게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줄 요량이었다.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는 데다가 말수마저 적었던 기현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 했다. 하지만 성철은 괘념치 않았다. 그의 끈질기고도 정성스러운 관심과 도움으로 기현은 업계에서 차츰 자리를 잡아간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
영화 <살아남은 아이>CGV 아트하우스 , (주)엣나인필름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아들의 사망 사건으로 고통을 겪어온 부모가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아들의 생명과 맞바꾼 친구의 목숨, 그의 진술로 모든 게 뒤바뀌어버린 상황에서 아이 잃은 부모는 진실을 원치 않는 이들과의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간다. 제20회 우디네극동영화제 화이트 멀베리상,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장편상, 그리고 제15회 스킵시티디시네마인터내셔널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미숙은 아들의 값진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기현이 성철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이 내심 못마땅하고 꺼림직스러웠다. 기현 역시 미숙과의 접촉이 껄끄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미숙 앞에만 서면 괜스레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평소에도 소극적인 편이었으나 그녀 앞에서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기현을 향한 성철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됐던 것일까. 기현은 비교적 잘 적응해 나간다. 미숙의 굳었던 마음도 서서히 누그러진다. 부모처럼 세심하게 다가가는 미숙. 그녀의 따뜻한 배려는 기현의 심경에 조금씩 변화를 일으킨다. 어느 날 기현은 미숙에게 아들 은찬이와 관련한 충격적인 고백을 풀어놓는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
영화 <살아남은 아이>CGV 아트하우스 , (주)엣나인필름
   
이후 영화의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철석 같이 믿고 있던 사실이 180도 뒤바뀌면서 가장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건 은찬 부모였다. 기현의 발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미숙은 다른 아들 친구들과 어렵사리 접촉해 보지만, 그들의 반응은 한결 같이 미온적이었다. 경찰에 사건을 의뢰하여 진실을 밝혀내려 해도 이미 1년 전에 종결 처리된 사건인 데다가 관련자들은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수 명이 같은 내용을 진술하는 데 반해 단 한 사람만이 정반대의 진술을 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현실. 혹여 기현의 진술이 사실이라 한들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물적 증거 등이 전혀 없어 철저하게 그날 물놀이를 함께했던 아이들의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기현의 진술 그대로 사건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게 된다면 어떨까. 은찬이는 이미 죽은 아이라 살아 돌아올 수 없고, 진실이 밝혀져 봐야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 은찬 부모에게조차 이로울 게 전혀 없었다. 은찬이는 이미 의사자로 선정되어 보상금까지 받아놓은 상황이라 기현의 발언이 사실이 되면 자칫 은찬이의 명예로운 죽음마저도 모두 헛된 결과가 돼버린다. 은찬의 담임교사가 은찬이를 위해서도 그냥 진실을 묻고 가자며 종용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
영화 <살아남은 아이>CGV 아트하우스 , (주)엣나인필름
   
사람들은 은찬의 사망 사건 이후 은찬 부모와의 우연한 만남조차 꺼려했다. 만나게 되더라도 건네는 안부 인사는 지극히 형식적이었으며, 진짜 관심은 의사자가 된 은찬이의 몫으로 보상금을 얼마나 받았는가 하는 금전적인 문제에만 온통 쏠려 있을 뿐이었다. 사람의 목숨마저도 화폐가치로 재단하려드는 씁쓸한 현실. 이러한 속물 근성은 은찬 부모를 더욱 힘들게 했다. 받은 보상금을 1원 한 장 쓸 수 없어 결국 보상금 전액을 학교 장학금으로 기부한 데엔 이러한 속사정이 있었다.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려는 은찬 부모, 그와는 반대로 진실을 외면하려는 다수의 사람들. 은찬 부모의 싸움은 외로웠고, 어찌 보면 무모했다. 이로 인해 평소 잘 지내온 일부 지인들과도 등을 돌리게 된다. 진실은 이미 연기처럼 홀연히 증발된 상황. 이를 밝혀야 하는 사람과 반대로 이를 감춰야 하는 사람들의 아귀다툼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기현의 고백을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었다. 객관적인 증거물이 전혀 없고 오로지 사람의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는 허술함 때문이었다.
 
분명한 건 오직 하나. 숨진 은찬이는 어떤 경우에도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진실 여부와 관계 없이 은찬의 사망으로 인한 고통을 은찬 부모가 오롯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진실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아이 잃은 부모를 통해 상실과 고통을 이야기한다. 한 아이의 죽음은 사건의 진실 여부와 관계 없이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과 상처로 남게 된다. 아이 잃은 부모 배역을 맡아 때로는 고통스러워하고, 때로는 분노를 표출하며 섬세한 연기를 펼친 베테랑 배우 최무성과 김여진의 수고로움이 특별히 인상 깊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살아남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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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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