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 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대신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매튜 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수작,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많은 부분 닮았다. 단순히 특정 시리즈의 프리퀄 작품이라는 포지션만 같은 것이 아니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스케일이 더 크다는 점만 제외하면 영화의 콘셉트부터 핵심적인 갈등 구도와 주제에 이르기까지 판박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우선 두 작품은 모두 대체역사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퍼스트 클래스>가 쿠바 미사일 위기에 엑스맨이 개입했다는 상상력에 기반한다면, <퍼스트 에이전트>는 1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전개, 결말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사건마다 킹스맨이 개입해 있다는 설정을 보여준다.
각 영화의 두 주인공이 폭력에 대한 대조적인 견해 차이로 인해 대립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퍼스트 클래스>에서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는 뮤턴트라는 소수자가 생존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도 활용하는 것이 옳은지를 놓고 논쟁을 펼치며, 이는 마치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퍼스트 에이전트>에서는 아버지인 올랜도 옥스퍼드 공작과 아들인 콘래드가 갈등을 빚는다. 보어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으로 인해 모든 폭력과 전쟁을 혐오하게 된 평화주의자 아버지와 귀족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직위인 공작 가문의 후계자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자진 입대하려는 아들의 충돌이 극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다. 단지 이 대립 구도가 유지된 결과 엑스맨이 창설된 것과 달리, 갈등의 종식으로 말미암아 킹스맨이 조직된 것만이 두 영화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두 영화 간의 유사점이 필연적으로 비교를 낳고, 그 결과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완성도가 저해된다는 데 있다. 우선 한 가지 사건에 집중하고 미국과 소련의 충돌이라는 명료한 세계사적 배경을 제시해 갈등 구도를 단순화하고 극의 밀도를 높일 수 있었던 <퍼스트 클래스>와 달리, <퍼스트 에이전트>는 수년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등장인물과 갈등 구도가 모두 많고 복잡해지면서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옥스퍼드 공작 부자의 갈등이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1차 세계 대전의 주요 참전국인 영국, 독일, 러시아 각국의 정치 상황과 세 나라의 군주이자 사촌관계인 조지 6세, 빌헬름 2세, 니콜라이 2세의 관계성이 또 다른 갈등구도를 이룬다. 이에 더해 세 군주를 조종하려는 흑막의 이야기도 한자리를 차지해야 하며, 뒤늦게 참전하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 이야기까지 묘사해야 하다 보니 영화가 좀처럼 균형점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균형의 붕괴는 영화가 실존 인물들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러시아 제국의 비선 실세였던 라스푸틴이나 실제 능력과는 별개로 미녀 스파이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마타 하리를 그저 한 차례의 액션신을 보여주기 위한 엑스트라로 소비하는 것은 영화 한 편에 담기 어려운 분량의 한계를 여실히 내보인다. 또한 사라예보 사건부터 참호전과 러시아 혁명, 치머만 전보 사건에 이르기까지 워낙 방대한 사건들을 2시간 안에 녹여내야 하다 보니 당시 국제 관계와 개별 사건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영화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남아프리카에서 펼쳐진 보어 전쟁도 오프닝부터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결코 낮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