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골때리는 그녀들> 스틸 컷
SBS <골때리는 그녀들> 스틸 컷SBS
 
SBS 예능 프로그램 <골때리는 그녀들>이 '조작 논란'으로 방송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22일 방송된 FC구척장신과 FC원더우먼의 경기에서 제작진이 방송의 재미를 위하여 골 순서과 경기 내용을 의도적으로 바꿔서 편집한 사실이 드러나며 시청자들을 기만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제작진은 논란이 커지자 결국 지난 24일 조작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이후 캐스터인 배성재와 '개벤져스' 감독으로 출연 중인 축구인 김병지도 사과하며 상황을 해명했다. 하지만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민원이 속출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역시 방송조작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던 Mnet <프로듀스> 시리즈나 TV조선 <아내의 맛> 등과 비교하며 프로그램 폐지까지 주장하는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SBS는 지난 27일 세 번째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전의 사과에서는 제작진이 주체였다면, 이번에는 방송국이 직접 나서서 자체 조사결과와 문책 내용까지 알렸다. SBS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프로그램 책임 프로듀서 및 연출자를 모두 교체하고 징계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전했다. '액셔니스타'와 '원더우먼'의 경기가 예고되어있던 29일 방송은 끝내 결방이 확정됐다.
 
SBS는 "조사 결과 <골때리는 그녀들> 시즌 1, 2 모든 경기의 승패 결과 및 최종 스코어는 바뀐 적이 없음을 확인했으나 일부 회차의 골 득실 순서가 실제 방송된 내용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일부 회차'라는 표현은 들어간 것은 지난 22일 방송외에도 내용이 조작된 경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SBS는 "아무리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라는 가치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하더라도 골 득실 순서를 바꾸는 것은 그 허용범위를 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골때녀>는 제작팀을 재정비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심기일전하겠다.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성원과 출연진의 진심을 잊지 않겠다. 2022년 새해에는 더욱 진정성 있는 스포츠 예능으로 거듭나 시청자 여러분께 돌아오겠다"고 덧붙였다.
 
불과 몇주 전까지만 해도 <골때리는 그녀들>에 쏟아지던 찬사와 호평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이 프로그램은 여성 연예인-스포츠스타-유명인들로 구성된 선수진에 2002 한일월드컵 축구 전설들이 감독을 맡아, 국내 예능 최초 '여자축구 미니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을 표방했다.
 
<불타는 청춘> 속 여성 멤버들과 제작진의 축구대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 기획은 올해 2월 설 연휴 특집 파일럿으로 이어지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어 6월 정규편성까지 성공했다. 게다가 기존 남성 위주의 프로그램에서는 보기 힘든 '여성들의 축구 도전기'를 다룬 스포츠 예능이라는 희소성, 출연자들이 서투르고 미숙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축구에 몰입하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얻었다.
 
참가자들이 전문 선수가 아닌 축구 초보들이라 경기 수준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인식보다는 진짜 대회에 임하는 각오로 시종일관 치열한 경기를 보여줬다. 이는 연출이나 극본으로는 만들 수 없는 진짜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원동력으로 이어졌다. 축구 초보들의 성장기, 결과보다 페어플레이와 스포츠맨십의 진정한 가치를 부각시키는 감성적인 연출도 호평을 얻었다.
 
시즌2에 접어들어, 22일 방송분은 시청률 9.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는 등 시청률 두 자릿수 돌파까지 눈앞에 두고 있었다. 비인기 종목인 여자 축구의 매력을 재해석해냈다는 점, 많은 여성 캐릭터들을 발굴해냈다는 점에서 Mnet <스트릿우먼파이터>와 함께 2021년을 대표하는 예능으로 손꼽혔다. 지난 18일 방송된 SBS 연예대상에서는 무려 8관왕을 휩쓸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골때리는 그녀들>은 지난 1년간의 성과와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다. 제작진은 1차 사과문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 스포츠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해명의 행간에서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이번 조작 논란이 그동안 방송계에서 오랫동안 허용되어 온 관행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점이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대본이나 편집 등을 통해 부적절한 사실관계 및 순서 조정을 당연하게 여기는 관행 말이다.
 
예능에서 제작진의 의도가 반영된 편집은 어느 프로그램에나 존재하며 다소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사실관계를 속이거나 거짓을 만들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이는 방송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을 넘어선 것이다. 더구나 스포츠를 다루는 예능이라면 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게 다수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걸핏하면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들먹이면서도 시청자의 판단을 현혹하고 기만하는 행위를 당연하게 여긴다면 방송의 신뢰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SBS 제작진뿐만 아니라, 편집권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남용하는 모든 방송가 구성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골때리는 그녀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신뢰도가 이미 추락한 상황에서 제작진 교체만으로 당장 상황을 진정시키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망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방송이 재개되더라도 예전처럼 몰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만약 방송 중단이나 프로그램 폐지로 이어진다면, 애꿎은 피해를 봐야하는 것은 조작과 아무 상관도 없었던 대다수의 출연자들이다. 방송 조작을 사전에 인지했거나 관여한 인물들이라면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많은 출연자들이 축구에 보여줬던 순수한 진심과 노력까지 모두 거짓이었다고는 폄하할 수는 없다. 또한 조작 논란과 별개로 <골때리는 그녀들>이 '여성 버라이어티 예능의 확장성'과 '여자축구의 매력'을 알리는 데 기여한 순기능까지 부정하기는 어렵다.
 
잃어버린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해당 방송국의 책임이다. 축구의 매력에 빠져서 기꺼이 대회에 참가하여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이번 사태에 휩쓸려 덩달아 비난 받아야 했던 출연자들, 방송 내내 순수하게 성원을 보내준 시청자들에게도 두 번 상처를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방송 이래 최대의 위기에 놓인 <골때리는 그녀들>을 두고 SBS가 쇄신과 폐지 사이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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