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결혼 제도를 비판하며 호기롭게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을 자신이 있다던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1982년생 박강아름 감독은 비혼주의자였던 남편 정성만씨를 설득해 연애했고,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돌연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는데 그 곁엔 성만씨도 함께 있었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프랑스에서 이 부부는 무탈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

1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첫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에 이어 자신의 삶을 소재로 삼았는데, 좌충우돌하며 다투고 화해하는 영화 속 두 사람, 그리고 이들의 아이 보리와 반려견 슈슈가 마냥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날 것 그대로의 삶에 담긴 진실함 때문일까.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박강아름 감독을 17일 오후 서울 명동 인근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연출한 박강아름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연출한 박강아름감독.영화사 진진
 
결혼과 임신, 그리고 가사와 육아에 대해 

영화는 소위 바깥일 하는 아내, 내조하는 남편이 타국에서 함께 게스트하우스 식당을 운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술 공부가 하고 싶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던 박강아름 감독과 달리 남편 성만씨는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전혀 계획에도 없던 곳에 살게 됐다. 가사 및 육아를 전담하는 성만씨와 학업과 경제적 문제로 지쳐버린 감독 사이에 도는 묘한 긴장감과 갈등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본래 "첫 장편 이후 자전적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며 박강아름 감독이 말을 이었다. 

"원래 <외길식당>이 제목이었다. 프랑스에 따라오게 된 남편이 우울해하다가 집밥 프로젝트를 하면서 관계를 회복하는 걸 기획했었거든. 프랑스판 <카모메 식당> 남편 버전이랄까. 근데 촬영 분량을 보니 뒤바뀐 성 역할 이야기가 재밌었고, 제 말과 행동이 너무 충격이었다. 결혼생활을 돌아보게 됐지. 첫 장편 프로듀서였던 김문경 피디님이 '네가 잘하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고 해서 용기를 얻어 방향을 틀었다."  

영화에 나오듯 이 부부의 인연이 참 재밌다. 진보신당 당원의 인연으로 만났다가 박강아름 감독의 제안으로 연애를 시작했고, 동거했으며 결혼까지 했다. 프랑스 유학도 영화 전공 후 현대미술을 배워보고 싶었던 감독의 의지였지, 성만씨의 의지는 아니었다. 영화 곳곳엔 이런 사정으로 사사건건 갈등하고 서로에게 모진 말을 내는 모습도 담겨 있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관련 사진.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관련 사진.영화사 진진
 
"스물한 살 때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1학기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 한국보다 더 적은 생활비와 학비로 공부할 수 있겠구나 싶었지. 대학생 땐 목돈도 없었고, 학자금 대출은 다 갚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원래 혼자였다면 2천만 원을 모은 뒤 갔겠지만 성만씨가 있으니 3천만 원을 모은 뒤 떠난 거다. 근데 실수였지. 엄청 힘들게 생활하게 됐다(웃음).

<외길식당> 프로젝트로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성만씨는 좋아했다. 협업자로 함께 하고 싶었다더라. 근데 방향을 바꾸게 됐을 때 좀 아쉬워했다. 본인 스스로를 글쓰는 요리사라고 할 만큼 창작에 대한 욕구가 있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제 작업을 존중하기에 출연자로 협조하기로 했다. 다만 제가 처음부터 성숙하게 성만씨와 협의하거나 합의를 끌어낸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지점이 미안하지."


감독이 동반자에게 느끼는 미안함은 곧 자신 또한 가부장 시스템을 내재화하고 있다는 깨달음과 연결돼 있었다. 이 지점에 이 영화가 갖는 가치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박강아름 감독은 "남자가 가사와 육아 노동을 했을 때 왜 더 도드라져 보이는지 그 지점을 봐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동거할 땐 안 그랬는데 외국에서 경제적 압박을 받으며 살게 되니 제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거지. 제가 자라며 봤던 가부장적 모습에 제게서 나오는 걸 확인하게 됐다. 한국에선 둘 다 일이 있었다. 물론 가사는 성만씨가 전담했고, 전 청소를 했는데 돈을 제가 더 많이 벌었기에 전세 대출이나 집안 행정은 제 이름으로 다 했다. 그러다가 프랑스에 남편과 함께 오면서 그의 경제력을 상실시키고, 집에서 밥만 하게 한 셈이지. 

여성이 가사 노동과 육아를 맡고, 남편이 바깥일 하는 모습은 국적 불문이더라. 프랑스도 똑같다. 근데 성별을 바꿔서 보니 그게 더 확 눈에 띄는 거다. 여성이 해야 한다고 당연시된 일들이 왜 남자가 할 땐 힘들어 보일까. 함께 생각해 볼 지점이다."


진솔함과 솔직함의 힘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연출한 박강아름 감독(좌측)과 주인공이자 남편인 정성만씨(오른쪽), 그리고 딸 보리.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연출한 박강아름 감독(좌측)과 주인공이자 남편인 정성만씨(오른쪽), 그리고 딸 보리.영화사 진진
 
박강아름 감독은 주저 없이 연애와 결혼, 공부를 자신의 욕망이라 말했다. 결혼제도를 비판하면서도 왜 일반적 가족을 열망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단다. 보다 진보적인 사회로 생각했던 프랑스에서 일종의 동거에 대한 보호 수단처럼 여겨지는 팍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도 영화에서 소개한다. 사실혼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에서 이런 제도가 대안일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며 고민하게 된다.

"제가 직접 팍스 제도를 겪어본 건 아니라 잘 모르겠으나 주변 얘기에 의하면 결혼해서 받을 수 있는 보장과 똑같다고 하더라. 출발은 게이나 레즈비언 커플에게 정부가 일종의 가짜 결혼 제도를 준 거였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성애자 커플들도 결혼보단 가벼우니 팍스를 활용하고 있다. 외국인 애인과 같이 살기 위해서도 많이들 활용하는 추세로 알고 있다.

제 영화들이 어떤 정답을 내리기 위함은 아니었다. 첫 번째 장편도 여성의 몸에 대해 얼마나 사회가 압박하고 요구하는 게 많은지를 묻는 영화였다. 타인들이 제 외모를 평가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직접 그걸 재현해내는 퍼포먼스였고, 결국 타인의 시선보단 스스로 그런 요구를 내재화한 게 문제였다고 알게 된다. 이번 영화도 그렇다. 남과 다를 줄 알았는데 내 안의 가부장적 모습을 발견한 거지.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태어날 때부터 고정된 게 아닌 젠더 권력에 따라 뒤바뀔 수 있다는 걸 보인 셈이다."


박강아름 감독은 "20대에 느꼈던 외로움과 지금 느끼는 외로움은 같다"고 정의했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해소된다고 학습된 거였다"며 "이젠 그런 외로움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누구나 품고 있다는 걸 안다. 영화 작업 할 때 성만씨 없이 혼자 있고 싶다가도 막상 없으면 우울해지는데 그런 게 참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삶을 재료로 성찰한 결과 성별 자체가 문제가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의 문제임을 오롯이 깨달은 건 아닐까. 서로 이혼 이야기를 종종 꺼낼 정도로 큰 다툼을 경험했다던 박강아름 감독은 "두 영화로 스스로가 확 달라진 건 아니지만 결국 제가 나중에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건 중요한 것 같다"며 나름 성찰한 결과를 소개했다.

"김문경 피디님이 해준 말인데 이 영화는 결국 일과 사랑 모두 하고 싶었던 82년생 박강아름의 이야기다. 그래도 박강아름이 좀 다른 면이 있다면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다는 것이다. 다른 분들도 좀 더 솔직했으면 한다. 자신의 한계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홍보차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이후 자신의 아이와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계획 중이다. 동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인권운동가 나혜석의 이야기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자신의 삶 외부로 그가 어떻게 이야기를 확장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박강아름 결혼하다 프랑스 사실혼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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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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