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MBC
희극인 박나래는 최근 방송에서 성희롱 논란에 휩싸이며 곤욕을 치렀다. 박나래는 지난 3월 23일 CJ ENM의 웹예능 <헤이나래>에 유명 유튜버인 헤이지니와 함께 출연했다가 무한대로 늘어나는 남성 고무 인형의 신체를 가지고 부적절한 연출과 수위 높은 발언을 일삼아 도마에 올랐다.
많은 누리꾼들은 '명백한 성희롱'이라며 비판하여 불쾌감을 드러냈다. 더구나 함께 출연한 헤이지니가 주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에 출연하며 아이들도 접하기 쉬운 콘텐츠였던 만큼, 박나래와 제작진이 더욱 조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논란이 거세지자 박나래와 제작진은 공식 사과했고, <헤이나래>는 컨텐츠 삭제와 함께 프로그램 자체가 아예 폐지됐다.
하지만 한달여가 지난 후에도 후폭풍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박나래가 고정 출연중인 기존 프로그램들에서 하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나래를 향한 비난 양상이 지나치게 과열됐다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숙없이 활발한 방송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박나래의 처신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불똥이 가장 거세게 튄 것이 바로 MBC <나 혼자 산다>였다. 유독 <나 혼자 산다>가 주목받은 이유는, 박나래의 여러 출연작 중에서도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박나래는 <나혼자산다>에서 화끈한 입담과 다재다능하면서 소탈한 매력이 넘쳐나는 '싱글라이프'를 보여주며 5년 가까이 무지개 모임의 실질적인 안방마님 역할을 맡아왔다.
박나래는 <나 혼자 산다>로만 MBC에서 세 번이나 연예대상 후보에 올랐고 2019년에는 실제로 생애 첫 수상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오늘날 박나래가 공개코미디를 넘어 예능대세이자 국내 탑급 여성 MC로 올라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만큼 <나 혼자 산다>는 그녀의 인생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 산다>는 그동안 박나래의 성희롱 논란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표명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방송된 회차에서 박나래가 고향인 목포를 찾아 조부모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다루어지며 결국 이 사건이 간접적으로 언급됐다. 박나래의 할아버지는 "그러니까 사람은 미완성이다 100% 다 잘할 순 없다.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위로하며 "남한테 나쁜 소리 듣지 말라"며 손녀를 따뜻하게 위로했다. 박나래는 참고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할아버지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마음이 아프다. 박나래는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객지에서 혼자 학교를 다니고 혼자 컸다"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짐이 되면 안된다. 나래한테 보탬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박나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가 아버지처럼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며 "나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 같아 <나혼자산다> 멤버들에게 너무 미안했던 것 같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고백했다. VCR를 지켜보던 멤버들도 박나래를 따뜻하게 위로했다. 박나래는 "더 좋은 모습으로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방송이 나간 직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박나래가 충분히 사과를 했고 마음고생을 한 만큼 이제는 그만 용서를 해줘야한다는 동정론도 있다. 반면 온전히 본인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구설수를 초래했음에도 오히려 가족과 지인들을 내세워 피해자처럼 위로를 받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을 두고, 제작진이 '감성팔이' 연출로 박나래를 감싸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 혼자 산다>와 박나래 모두 이 사건을 털고 넘어는 가되, 하차 의사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녹록치않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 4월 30일 <헤이나래>에서 박나래가 저지른 수위 높은 성적 표현에 대한 고발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대중들의 비판과 논란이라는 영역을 넘어, 급기야 출연자가 법적인 수사선상에까지 오르게 됐다는 것은, 박나래를 출연시키고 있는 프로그램들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나 혼자 산다>는 다른 프로그램에 비하여 박나래의 비중이 훨씬 더 높다. 박나래는 2016년 첫 출연 이후 줄곧 무지개 모임의 핵심이었고 종전 회장이었던 전현무가 사실상 하차한 이후에는 MC이자 리더의 역할까지 맡아왔다. 다른 고정멤버들이 번갈아가며 등장했던 것과 달리 박나래만큼은 자신의 VCR 에피소드 분량이 없는 회차에서도 스튜디오에서 붙박이 MC 역할로 꾸준히 출연했던 것이 그녀의 비중을 증명한다.
그녀와 함께 무지개 모임에서 오랫동안 함께 활약해왔던 고정멤버들은 이제 기안84 정도를 제외하면 상당수가 하차하거나 비정규적으로만 출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리 차원을 떠나서라도 박나래가 하차한다면 당장 그 빈 자리를 대체할 인물이 마땅치않다는 것도 <나 혼자 산다> 제작진으로서는 고민스러울 부분이다.
<나 혼자 산다>는 유독 출연자들의 개인사를 둘러싼 해프닝과 사건사고 때문에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정멤버였던 전현무와 한혜진이 방송출연중 한때 실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가 결별하며, 그 후폭풍으로 전현무가 하차했고 한혜진도 잠시 프로그램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예전만큼 꾸준히 출연하지는 않고 있다. 지난 해에는 기안84가 본인 집필한 웹툰 작품내 여성 캐릭터에 대한 부정적 묘사 논란으로 비난 여론에 휩쓸리기도 했다.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기안84 역시 각종 논란과 하차요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보호했던 전례가 있다.
어느덧 방영 9년차에 접어든 장수예능이 된 <나 혼자 산다>는 여전히 금요예능의 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예년만큼의 재미와 화제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앤오프> <독립만세> 등 비슷한 싱글라이프 관찰예능의 범람속에서 원조로서 차별화된 매력의 실종, 소수 고정출연자들의 '친목 모임'화된 프로그램 성격의 변질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핵심 멤버들을 둘러싼 연이은 논란은, 정체의 시기에 접어든 <나 혼자 산다>에 뭔가 큰 구조적 변화가 있어야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프로그램의 간판이었던 박나래를 둘러싼 논란으로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른 <나 혼자 산다>가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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