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4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SBS
 
SBS <집사부일체>에서 방송인 이경규가 40년 묵은 예능 내공을 선보이며 웃음을 안겼다. 지난 4일 방송분에선 이경규가 지난주에 이어 특급 사부로 출연하여 본격적으로 멤버들에게 자신만의 예능 철학과 연예계 생활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모습이 펼쳐졌다.

이경규는 첫 등장부터 충격적인 '자연인'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나 멤버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굳이 가까운 곳을 놔두고 강원도 인제까지 멤버들을 부른 이유에 대하여 "오늘 (녹화)내용이 재미없으면 '성의라도 보였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구나'라는 걸 시청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여기가 내가 욕 안 먹기에는 딱 좋은 장소"라고 고백하며 "오늘 촬영은 한 3시간 정도만 할 거다. 대신 여기까지 와서 방송이 잘 안 나오면 그건 모두 너희들(멤버들) 탓"이라는 현실적인 가르침으로 시작부터 멤버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이에 희극인 직속 후배인 양세형은 이경규를 가리켜 "미꾸라지의 본능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번엔 SBS에 출연한 것도 KBS에서 대상을 못 받아서 그런 것"이라고 팩트 폭행을 날리기도 했다. 이경규는 "내가 속세를 떠난 이유는 김숙 때문이다. 김숙에게 한방 맞고 때려치우려고 했다. 거의 입에 물고 있던 대상을 빼앗아갔다"며 분노했다. 이경규는 지난 2020년 KBS 연예대상에서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대상이 김숙에게 돌아가면서 이후 여러 방송에서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된 바 있다.

이경규의 황당한 자연인 설정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텃밭에 파인애플을 버젓이 심어놓았는가 하면, 땅 속에 쇼핑몰 브랜드의 이름이 적힌 식료품 박스를 숨겨놓고 멤버들에게 땅을 파보라고 하고, 장독대 속에는 유기농 음식 대신 라면과 통조림 등 인스턴트 음식들만 대거 담겨 있는 등 시종일관 노골적이고 능청스러운 반전 PPL로 멤버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신성록이 무심결에 "(이걸 먹으면)서울에 있을 때보다 몸이 더 나빠지겠다"라며 속내를 토로하자 이경규는 곧바로 "너는 앞으로 이런 광고가 절대 안 들어올 것"이라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이경규는 한 인스턴트 커피를 '세계 10대 커피'라고 소개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는 멤버들 앞에서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방송을 보고 계신 관계자가 중요한 것"이라며 또 한 번 지극히 현실적인 가르침으로 멤버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4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4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SBS
 
그는 한 자리에서 어느 정도 방송 분량을 뽑아냈다 싶으면 바로 장소를 이동해 신속하게 다음 촬영에 돌입했다. 실내에는 광어가 들어 있는 수족관이 있는가 하면, 집 한구석에는 이경규의 과거 연예대상 수상 트로피들이 전시돼 있어 멤버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멤버들은 이경규의 전성기 방송들을 회상하며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이경규는 <집사부일체> 한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은 최소한 5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아해하는 멤버들에게 이경규는 자신이 출연했던 <개는 훌륭하다> <도시어부> <나는 자연인이다> 등 프로그램 이름을 나열하며 지금까지 보여준 설정들이 모두 나름의 의미를 지닌 포석이었음을 설명했다.

양세형이 요즘 대세인 요리하는 쿡방도 할 것이라고 예상하자 이경규는 "요리 잘 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피곤하게 쿡방을 왜 하나. 그럴바엔 먹방을 해야지, 예능에서는 못하는 걸 억지로 하는 것보다 잘하는데 집중하는게 낫다"고 설명했다. 

이후 멤버들은 둘러앉아 이경규에게 질문을 던졌다. '장수 예능프로그램이 오래돼 재미가 없어지는 시기가 됐을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경규는 오히려 "이겨내려고 하지마라, 그냥 쓸려가는 거다. 차라리 언젠가는 끝나겠지라고 생각해라"는 심플한 반전 답변을 내놓았다. 덧붙여 이경규는 "이 멤버 다섯명이 끝까지 간다는 생각은 버려라. 한두 명은 날라가겠구나라고 각오해라"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자신의 최측근인 이윤석, 윤형빈 등 같은 '규라인'멤버들이라도 "바꿔야하면 바꿔야지"라고 현실적인 답변을 날려 웃음을 자아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또 다른 예능 특훈이 진행됐다. 이경규는 자신이 출연중인 <개는 훌륭하다>의 콘셉트를 바탕으로 멤버들을 다양한 종류의 반려견에 비유하며 각자의 예능 활약상과 캐릭터를 관찰하고 훈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경규가 자신을 '셰퍼드'에 비유하자 양세형은 오히려 '비글'에 비유하면서 "비글이 세계에서 3대 악마견'으로 꼽힌다"며 놀렸다.
 
 4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4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SBS
 
이경규는 예능에서 포맷, 캐릭터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리액션'을 꼽았다. 이경규는 최근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고 있는 걸그룹 '브레이브 걸스'를 예로 들며 그 배경으로 군인들의 리액션을 언급했다.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은 발매 당시에는 큰 화제가 되지 못했지만 이후 군부대 위문공연에서 군인들의 열광적인 리액션을 담은 직캠과 댓글들이 큰 이슈가 되며 뒤늦게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이경규는 "리액션이 살아야 나도 살고 멤버들도 산다. 여기 촬영에 수많은 카메라들이 있는 이유도 결국은 리액션을 잡기 위한 것"이라며 "인생이 곧 리액션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이경규 본인은 "리액션을 잘 안 한다"고 당당하게 고백하여 멤버들을 당화시켰다. 그는 대신 "리액션에 능한 후배들을 많이 데리고 다녔다"며 그 예로 절친한 후배인 이윤석을 꼽았다. 반면 영혼 없는 리액션을 남발하는 후배로는 붐을 선정하자 곧바로 멤버들은 공감하는 듯 폭소했다.

이어 이경규는 불어터진 라면 먹방을 소재로 리액션 강의를 진행하며 '리액션을 할 때는 감정을 미리 드러내서는 안 된다', '리액션을 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멤버들의 서툰 리액션을 거듭해서 지적하던 이경규는 정작 본인의 먹방 시범 때는 어설픈 발연기로 웃음거리가 됐고 "연기는 진짜 못 하신다", "사기꾼같다"는 놀림을 받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방송은 다음주에 더 강렬해진 이경규의 실전예능 강의 2라운드를 예고했다.

예능사부 이경규의 특훈은 이전 방송에서 출연한 사부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겉보기에 듣기 좋은 따뜻한 미담이나 격려,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에피소드 따위는 전혀 등장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철저하게 웃음과 분량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예능이라는 장르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이경규만의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실전교육'에 가까웠다.

하지만 예능이라고해서 그저 가벼운 농담만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독설을 날리던 이경규는 방송 중반 "내가 방송에서 자꾸 이런 말을 하면 내 이미지가 나빠지겠나, 좋아지겠나"라고 멤버들에게 역질문을 던졌다.

순간적으로 멤버들이 잠시 머뭇거리자 이경규는 "당연히 나빠지겠지만 그래도 이런걸 밀고 나가야되는 거다. 끝까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언젠가 저 놈은 원래 저런 놈이다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방송 이미지가 잠시 나빠지는 것도)걸 뛰어넘어야 캐릭터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4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4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SBS
 
바로 이경규가 40년의 세월동안 어떻게 자신만의 예능스타일을 정립해왔는지, 대중들도 언제부터인가 그런 이경규의 개그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자연스러운 캐릭터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는지 함축적으로 설명한 장면이었다. 멤버들도 웃음 뒤에 뼈가 담겨 있는 이경규의 가르침에 수긍하고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이경규라는 인물은 40년 동안 굴곡은 있었지만 끝내 방송계의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고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호통과 독설, 시니컬함, 속물성 등으로 요약되는 이경규의 개그는 한발만 삐끗하거나 선을 넘어도 비호감으로 낙인 찍히기 쉽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수십 년간 유지하면서 별다른 구설수나 이미지 하락없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장수하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경규는 <집사부일체>에서 보여준 것처럼 예능의 트렌드 변화와 비결을 짚어내는 분석가로서도 탁월한 안목을 보여줬다. 60대 예능인 이경규의 웃음 코드와 그의 현실주의적인 예능철학이 오늘날 20~30대에게도 여전히 통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경규 집사부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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