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을 구해야 한다고 암시한 것도 우리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라고 묻는 대신에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 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스스로 '워커홀릭'인 면이 있다고 자조한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주입시켜 준 '일'에 대한 이데올로기 때문이었을까? 일을 하지 않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다.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내 자신이란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처럼 여겨진다. 필자는 늦은 밤 허덕이며 원고를 마무리하는 그 순간에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불치병'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여성들에게 일과 노동은 꼭 존재론적 만족의 요건만은 아니다. 본격적인 산업 사회에 접어들면서 더 많은 인력들이 필요했고, 앳된 여성들은 학교 대신 공장에 모여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성들은 우리 사회 주요한 산업 역군이 되었다.
그들이 번 돈은 가족을 먹여 살렸고 남자 형제들이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 미싱을 돌리고 가발을 만들던, 차를 나르고 주판을 튕기던 그녀들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은 일을 한다. 나 역시도 오랜 시간 생활고라는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