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을 구해야 한다고 암시한 것도 우리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라고 묻는 대신에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 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스스로 '워커홀릭'인 면이 있다고 자조한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주입시켜 준 '일'에 대한 이데올로기 때문이었을까? 일을 하지 않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다.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내 자신이란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처럼 여겨진다. 필자는 늦은 밤 허덕이며 원고를 마무리하는 그 순간에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불치병'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여성들에게 일과 노동은 꼭 존재론적 만족의 요건만은 아니다. 본격적인 산업 사회에 접어들면서 더 많은 인력들이 필요했고, 앳된 여성들은 학교 대신 공장에 모여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성들은 우리 사회 주요한 산업 역군이 되었다. 

그들이 번 돈은 가족을 먹여 살렸고 남자 형제들이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 미싱을 돌리고 가발을 만들던, 차를 나르고 주판을 튕기던 그녀들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은 일을 한다. 나 역시도 오랜 시간 생활고라는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큐 잇it - 50대는 마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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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는 마감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 방영된 EBS <다큐 잇it> '50대는 마감되었습니다'는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다양한 처지를 살펴봤다.

37년 동안 은행에서 일한 현창홍씨는 2020년 1월 부지점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감사패에 새겨진 문구인 '청춘과 열정'처럼, 그녀는 스스로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생각할 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집안 형편상 상고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던 창홍씨는 여상 3학년 때 첫 직장인 은행에 입사했다. '커피 한 잔 타 와'라는 심부름은 예사였고, 같이 입사한 남자 동료들과는 호봉부터 달랐다. 억울해하는 대신 일을 하며 대학을 다녔고 배움의 갈증을 해소했다.

퇴직 후의 삶도 대비했다. 공공기관에서 수요가 많다는 직업 상담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30명을 뽑는 곳이었는데 "50대는 마감되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녀에게는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젊어서는 성별 때문에 차별 받았던 그녀는 이제 '나이'로 차별받는 신세가 된 것이다.

좌절의 순간, 50통 이상의 이력서를 제출한 그녀에게 기회를 준 곳은 사회적 기업이었다. 그래도 현창홍씨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여성 고령층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돌보미 등 단순 노무직이 많다. 사무직은 하늘의 별 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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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을 해서 행복합니다

62세의 전영희씨는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다. 15살부터 봉제 공장에 다니기 시작해서 봉제 공장 운영, 제빵학원 사무직, 요양 보호사를 거쳤다. 거기에 4명의 손주까지 키워낸 그녀지만, 지금은 '1년차 햇병아리 가죽 제품 수선공'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병든 어머니를 둔 그녀에겐 중학교에 다니는 것도 사치였다. 학교를 어쩔 수 없이 그만둔 후, 다니던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피하고 온종일 울기도 했다. 그 시절엔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단다. 결혼 후 가난하게 살진 않았지만 남편의 외벌이만으로 부족했던 생활비 를 충당하기 위해 그녀는 끊임없이 일했다. 그리고 그녀의 노동은 가족에 중요한 기둥이 됐다. 그런 그녀는 앞으로도 10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며 늦은 나이게 가죽 수선 일을 시작했다.

1959년생 전영희씨와 같은 베이비붐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왔다. 그런 베이비 붐 세대의 58.2%인 45만 명이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일을 하거나 일을 찾는다. 근로 희망 사유 중 58.8%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 그 다음으로 많은 38.8%가 일하는 즐거움을 들었다.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또 한 명이 있다. 72세의 장계덕씨는 공공기관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운영되는 참기름 공장에 일주일에 2회 나간다. 젊어서 사업을 하던 남편을 돕던 계덕씨는 50대 이후에는 우편물 분리 작업, 노인 관리사 등으로 일했고 작년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지만 일하는 시간이 짧아 아쉽다는 그녀.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지만 남편의 은퇴 후엔 그녀가 실질적 가장이 됐다. 두 아이를 키우느라 아등바등 살아 온 세월 속에 노후 준비는 언감생심이었다.

계덕씨 만이 아니다. 대학 진학만이 계층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계단으로 여겨진 우리 사회에서 60~70대에게 생애 최고 과제는 자식 교육이었다.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건 사치였다. 그랬기에 사회는 풍요로워졌지만 어머니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남성에 비해 국민 연금 가입률이 낮은 여성들은 고용보험, 건강보험 등에서도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나날이 늘어가는 평균 수명에 '어머니'는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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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돌봄 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여성에게 '노동'은 밖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정에서도 여전히 여성들은 '일'을 한다. 

81살 된 홍인보 어르신은 치매를 앓고 있다. 주간 보호 센터에서 하루를 보내는 어르신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내인 박청자씨다. 79세 박씨는 요양 보호사로 이곳에서 일하며 남편을 돌본다. 

남편과 함께 문구 사업도 하고, 딸과 함께 카페도 했던 청자씨는 치매에 걸린 남편을 돌보기 위해 요양 보호사가 되었다. 남편도 돌보고 일도 하고자 했지만 자신만 찾는 남편 때문에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쉽지 않았다. 청자씨의 일은 남편과 함께 돌아온 집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밥을 하고 남편을 먹이고, 재운 다음에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 그렇게 일과가 마무리돼야 그녀에게도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녀는 그 시간엔 '졸려도 자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시도 쓰고 친구들도 만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남편이 치매에 걸린 이후 그녀의 삶은 간병으로 채워졌다. 점점 고립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청자씨는 그만 남편을 붙들고 정신을 차리라며 '절규'했다고 한다. 

여성의 돌봄 노동은 평생동안 계속된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은 뒤 자녀 돌봄으로 시작된 여성의 가사 노동은 노부모 돌봄으로 이어지고, 다시 손주 돌봄으로 이어진다. 2014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인 상황이지만, 그 부담은 92%가 가족들이 짊어지고 있으며 특히 그 중 85%가 여성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자식들이 돕는다고는 하지만 남편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청자씨 몫이다. 치매인 남편을 간병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되어가는 청자씨는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해 한다. 자신을 희생하며 가정을 지켰던 여성들의 돌봄 노동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사회 가족을 지탱하는 건 여성들의 희생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다큐 잇IT - 50대는 마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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