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박미희 감독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햇수로 무려 9년 동안 KBS N SPORTS의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다. 당시만 해도 구기종목에 여성 해설위원이 많지 않아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박미희 감독은 차분한 말투와 경기를 읽는 날카로운 눈으로 시청자들에게 높은 신뢰를 얻었다. 특히 연차가 쌓인 후에는 KBS N SPORTS의 젊은 캐스터들을 이끌어 주기도 했다.

그러던 2014년 박미희 감독은 2013-2014 시즌 꼴찌팀 흥국생명의 감독에 선임됐다. 아무리 현역 시절 스타였다고 하지만 현장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해설위원의 감독 데뷔에 배구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자는 박미희 감독이 청보 핀토스 감독을 맡았다가 .273(15승2무40패)라는 민망한 승률을 남기고 해임된 허구연 해설위원(MBC스포츠플러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임하자마자 이재영이라는 최고의 에이스를 얻은 박미희 감독은 5년 만에 흥국생명을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며 '성공한 여성 지도자'라는 칭호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흥국생명은 '슈퍼 쌍둥이' 이재영-이다영에 '배구여제' 김연경까지 가세하면서 더욱 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많은 배구팬들이 '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번 시즌 박미희 감독은 흥국생명의 'V5'를 견인할 수 있을까.

루시아-이재영 부상으로 7연패 당하며 3위로 시즌 마감
 
 '핑크폭격기' 이재영이 없었다면 지난 시즌 흥국생명은 독보적인 최하위에 머물렀을 것이다.

'핑크폭격기' 이재영이 없었다면 지난 시즌 흥국생명은 독보적인 최하위에 머물렀을 것이다. ⓒ 한국배구연맹

 
고교 시절부터 성인 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검증된 공격력을 가지고 있던 이재영은 프로 입단과 함께 박미희 감독의 지도 아래 서브 리시브를 집중적으로 익히며 공수를 겸비한 '완전체 윙스파이커'로 거듭났다. 그리고 이재영이 역대 2번째 MVP 트리플크라운(정규리그,챔프전,올스타전)을 달성한 2018-2019 시즌 흥국생명은 '김연경 시대'였던 2008-2009시즌 이후 정확히 10년 만에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6개 구단 중 가장 먼저 4번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흥국생명의 지난 시즌 목표는 당연히 챔피언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흥국생명은 왼쪽에 이재영과 김미연, 중앙에 김세영과 이주아. 리베로에 김해란, 세터에 조송화(IBK기업은행 알토스)가 건재했고 베레니카 톰시아가 떠난 외국인 선수 자리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주공격수 루시아 프레스코를 데려 왔다. 대회 2연패를 노리기에 손색이 없는 선수 구성이었다.

하지만 흥국생명의 지난 시즌은 박미희 감독의 구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 루시아가 맹장수술과 아킬레스 건염으로 5경기에 결장했고 대체 불가능한 에이스 이재영 역시 올림픽 예선을 치르로 돌아온 후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무려 10경기나 자리를 비웠다. 이 기간 동안 흥국생명은 무려 7연패를 당하며 3위로 떨어졌고 4위 KGC인삼공사의 추격을 받은 채 2위 GS칼텍스 KIXX에 승점 6점 뒤진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부상 때문에 10경기에 결장했지만 '핑크 폭격기' 이재영의 위력은 여전했다. 17경기에 출전한 이재영은 경기당 평균 25.4득점을 올리는 엄청난 공격력으로 득점 5위(432점), 공격성공률 4위(40.58%)에 올랐다. 평균득점으로만 따지면 득점 1위(832점) 발렌티나 디우프(인삼공사, 평균 32점)에 이어 리그 2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지난 시즌 흥국생명이 이재영이라는 걸출한 스타에게 얼마나 크게 의존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즌까지 디그 2위(세트당 6.20개),수비(리시브+디그) 3위(세트당 8.08개)를 기록했던 '미친 디그' 김해란 리베로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출산을 위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물론 은퇴 직전까지 국가대표 주전 리베로로 활약했을 만큼 워낙 출중한 기량을 발휘했던 선수라 배구팬들은 김해란이 김세영이나 정대영(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처럼 출산 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다영-김연경 가세로 '슈퍼팀' 결성, V5 도전
 
 컵대회 패배로 '여제' 김연경은 이번 시즌 더욱 투지를 불태울 것이다.

컵대회 패배로 '여제' 김연경은 이번 시즌 더욱 투지를 불태울 것이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시즌을 끝으로 김해란 리베로가 은퇴를 선언한 흥국생명은 절대적 에이스 이재영이 FA자격을 얻었다. 사실 다른 구단 같았으면 이재영의 잔류에만 힘을 쏟기에도 부족했겠지만 흥국생명은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 FA시장에서 국가대표 주전세터 이다영을 연봉 4억 원에 영입하며 '슈퍼 쌍둥이'를 합체(?)시켰다. 이재영과 이다영 계약을 위해 흥국생명이 투자한 돈은 정확히 10억 원이었다.

흥국생명은 유럽무대에서 명성이 높은 안나 라자레바(기업은행) 또는 헬렌 루소(현대건설 힐스테이트)를 뽑기 위해 루시아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6순위 지명권을 얻었고 라자레바와 루소는 다른 구단에서 먼저 지명했다. 결국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에 함께 뛰었던 루시아를 재지명했다. 박미희 감독이 뛰어난 높이에 비해 폭발력이 다소 부족했던 루시아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주목된다.

도쿄 올림픽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11년의 외국생활을 마친 김연경의 국내 복귀 결정은 흥국생명에게는 커다란 축복이다. 후배들을 위해 3억5000만 원이라는 헐값(?)에 연봉계약을 체결한 김연경이 유럽 무대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면서 예전의 기량을 선보인다면 흥국생명은 엄청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김연경은 이미 통합우승과 트리플크라운 달성을 이번 시즌 목표로 정했다(나머지 하나는 '감독님 말씀 잘 듣기').

국가대표 주전 선수를 3명이나 보유한 흥국생명의 유일한 약점은 김해란이 빠진 리베로 자리다. 당초 조송화의 보상 선수 박상미가 주전 리베로로 나설 것으로 전망됐지만 컵대회를 통해 도수빈이 급부상하면서 리베로 경쟁은 미궁에 빠졌다. 기업은행에서 두 시즌 연속 주전으로 활약했던 박상미와 4년의 백업 설움을 견디고 주전 도약을 꿈꾸는 도수빈 중에서 박미희 감독의 신뢰를 얻는 선수는 누가 될까.

흥국생명은 지난 컵대회에서도 4강까지 4연속 무실세트 경기를 펼치다가 결승에서 GS칼텍스에게 0-3으로 패하며 우승이 좌절된 바 있다. 하지만 컵대회 결승 결과와 별개로 여전히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 독보적인 우승후보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전력을 갖추고 있다. 김연경 시대에 우승 별 3개, 이재영 시대에 1개의 우승 별을 달았던 흥국생명은 김연경과 이재영이 만난 이번 시즌 통산 5번째 우승 별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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