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수컷 냄새 물씬 나는 누아르 장르에 빠른 타격감을 붙인 액션으로 포장했다. 심연의 어두움을 담은 정통 누아르라기보다 하드보드 추격 액션이란 장르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쫓는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악다구니에 받힌 레이의 복수는 두 사람의 악연이 어디서부터 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멈출 줄 모르는 끈질긴 질주를 통해 영화 내내 조바심을 유도한다. 이만큼 도망 갔다고 생각하면 저만큼 따라붙었고, 이쯤에서 숨돌리려고 하면 가쁜 숨을 바투 잡아 달릴 수밖에 없다.
내내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기관차처럼 바삐 달리다가도 이내 심폐소생술이라 할만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숨통을 트이게 한다. 그 주인공은 트랜스젠더 유이 역의 박정민이다. 영화의 진정한 치트키, 숨겨진 보물처럼 단숨에 분위기를 사로잡는 유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위험에 처할 줄 알면서도 인남을 돕는 조력자의 운명을 택한 이유가 같은 아버지의 책임감 때문인 건 신의 한수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킬러 본능을 가진 수컷의 운명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예상대로 흐른다는 것이다. 팽팽한 두 남자의 격돌은 누아르 장르의 클리셰를 답습한다. 지친 표범 같은 황정민과 달리 차갑고 매끈한 뱀이 떠오르는 이정재의 이미지가 시선을 빼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