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던 상상이 어느새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연패 기록이 17경기 연속으로 늘어났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KBO리그 역사상 두 번째 최다 연패 기록이자, 현존하는 구단 가운데는 롯데-기아(이상 16연패)를 제치고 단독 최다 기록이다.
한화는 1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0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원정경기에서 0-5로 완패했다. 지난달 22일 NC 다이노스전(5-3 승)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승리를 추가하지 못한 한화는, 이제 어느덧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수립한 KBO리그 역대 최다인 18연패 기록에도 불과 1경기만 남겨뒀다.
일정상 한화는 12일부터 대전에서 디펜딩챔피언 두산과 주말 3연전을 앞두고 있다. 두산은 올시즌도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는 강팀이다. 여기서도 연패 기록을 끊지 못하면 결국 삼미의 기록을 뛰어넘는 불명예 흑역사를 다시 쓰게 된다. 설상가상 다음주에 만날 상대는 3위 LG(홈)-1위 NC(원정)로 모두 상위권 팀들이다. 최악의 경우, 20연패 이상의 초장기 연패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종목을 떠나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다연패는 1998-99시즌 대구 동양(현 고양 오리온)이 기록한 32연패였다
또한 한화는 현재 7승 26패(.212)로 9위 SK 와이번스(11승21패)에도 4.5게임차나 뒤진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어서, 이대로라면 치욕의 1할대 승률 추락도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산술적으로 144경기 체제에서 프로야구 사상 첫 '100패팀' 등극도 가능한 페이스다. KBO 역사상 시즌 종료시까지 1할대 승률을 보였던 팀은 80경기 체제였던 프로 원년 삼미(15승65패, 승률 .188)가 유일하다. KBO리그 단일시즌 최다패는 133경기 체제였던 2002년 롯데가 기록한 97패(35승1무, 승률 .265)였다.
한화의 비상사태는 '전략과 철학의 부재'가 사람이든 조직이든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한화는 올시즌만이 아니라 2000년대 중후반 이후 한두 시즌 정도를 제외하면 10여년 넘게 만성적인 암흑기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책임은 항상 현장에만 전가하기 일쑤였다. 한대화-김응용-김성근-김성근-김인식-한용덕 등 10여년간 외부의 명망있는 인사에서 구단-지역 레전드 출신까지 5명의 감독 체제를 거치고도 모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17연패를 당하는 과정에서도 한화의 철학 부재는 반복됐다. 한화는 지난 시즌 9위에 그쳤고 올시즌을 앞두고도 일찌감치 최약체 후보로 평가됐지만 구단 차원에서 적극적인 전력보강은 전무했다. 몇 년간 육성과 세대교체를 표방했지만 성과가 저조하자 올시즌 다시 베테랑에게 의존하는 노선으로 돌아가면서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됐다. 결국 한화는 얇은 선수층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연패에 빠지자 한용덕 감독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부진에 빠진 주전급 선수들과 코치진도 대거 2군행을 통보받았다. 명백한 문책성 인사였다.
한화는 퓨처스팀을 이끌던 최원호 감독대행에게 지휘봉을 맡기고 2군 유망주들과 백업멤버들을 기용하는 등 선수단 물갈이를 단행했다. 겉보기에는 팀분위기의 쇄신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이 역시 한화 구단 특유의 또다른 '보여주기식 정책'에 불과했다.
우려한대로 한화는 최원호 대행 체제에서도 연패가 계속될 조짐을 보이자 불과 2경기만에 입장을 바꿔 다시 총력전을 선언했다. 현재 한화의 팀운영이 대안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편으로 상대팀 입장에서도 이제는 한화를 상대하는 것이 갈수록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각팀의 순위싸움이 점점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제 한화전은 반드시 잡고 넘어가야 할 경기가 됐다. 한화전에서 만일 1패라도 당한다면 다른 팀에게 당하는 패배보다 타격이 휠씬 클 수밖에 없다. 한화의 연패탈출 기록에 희생양이 되는 모양새도 은근히 부담스럽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제는 '폭탄돌리기'가 되어버린 한화의 연패행진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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