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틱 리버> 포스터.

영화 <미스틱 리버>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1930년생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90세를 넘겼지만, 여전히 영화의 최전선에서 종횡무진하는 현역이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미 서른 작품을 연출했고 최근의 <리처드 주얼>까지 2010년대에만 여덟 작품을 내놓았으니 2020년대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 같다.

1950년대에 연기로 경력을 시작해 60~70년대에 연기자로 최고 전성기를 보낸 후 70~80년대에 배우 시절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암흑기라 할 수 있는 감독 시절을 보낸 뒤 90년대에 안정을 찾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은퇴할 나이인 70대에 꽃을 피운다. 2010년대에도 이어진 감독으로서의 전성기에 그는 수많은 걸작들을 쏟아냈다. 이 시절 그는 흥행에도 많이 신경을 쓴 듯했는데, 아마도 계속 차기작을 내놓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으리라. 

2003년작으로 그의 24번째 작품인 <미스틱 리버>는 영리한 동명 걸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탄탄한 시나리오, 3명의 주인공과 3명의 주연이 빚어내는 연기 앙상블, 묵직하게 형상화되어 가슴 저릿하게 만드는 메시지까지 완벽에 가까운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굵직한 수상 소식을 전하진 못했고 다음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공을 돌린다. 대신 숀 펜과 팀 로빈스는 사이좋게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을 비롯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독식한다. 

세 친구를 평생 따라다니는 운명의 소용돌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작은 동네, 세 친구 지미, 숀, 데이브가 하키 놀이를 하고 있다. 공이 하수구에 빠져 할 게 없는 그들. 지미가 나서서 완성되지 않은 보도블록에 이름을 써넣는다. 마지막으로 데이브가 이름을 쓰고 있을 때 자신들을 경찰이라고 소개한 낯선 남자 둘이 차를 타고 나타나 그들을 협박한다.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집이 가장 먼 데이브를 차에 태우고 엄마를 만나러 가자고 한다. 끌려간 데이브는 사흘 만에 그들의 변태짓으로부터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이후 동네 친구 셋은 잘 만나지 않았고 그 상처를 공유한 채 살아간다. 

시간은 흘러 25년 뒤, 데이브는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만 딱히 직업 없이 지내고 있다. 지미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숀은 형사가 되어 있다. 그러던 어느날 지미의 19살 난 딸 케이티가 남자친구와 다음 날 라스베이거스로 떠날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술집에 가서 논다. 그때 그 술집에 데이브도 있었는데, 새벽 3시쯤에 집에 돌아온 데이브는 피범벅을 한 채 손과 배에 상처가 나 있었다. 그는 아내를 상대로 횡설수설 이야기를 늘어놓고, 자신이 때린 누군가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한다. 아내는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 동네가 발칵 뒤집힌다. 케이티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 것이다. 숀은 파트너와 함께 전력으로 이 사건을 수사하고, 지미는 장례를 치르는 한편 소싯적 건달 친구들을 동원해 자체적으로 사건을 파헤친다. 그런가 하면 데이브의 아내 셀레스트는 데이브가 케이티를 죽였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숀의 파트너가 데이브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데이브가 거짓말한 게 들통나면서 사건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정황상 데이브가 케이티 살인 사건의 범인이 될 수 없지만, 운명의 소용돌이가 그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피해자에게로 향하는 상처의 낙인

영화는 사건선과 감정선이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방식을 쓴다. 하여 감탄이나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조금씩 가슴을 조여오는 묵직함을 느낄 수 있다. 그 묵직함의 중심에는 세 친구의 어릴 때 기억이 자리한다. 그리고 25년 만에 세 친구가 다시 모이게 되면서 기억의 구름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 사람의 관계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낙인이란 다시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럽고 욕된 판정이나 평판을 이른다. 즉 만장일치의, 다시 없을 나쁜 짓을 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낙인을 찍는 경우를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가해자에겐 당연하다시피 행해져야 할 낙인이지만, 피해자는 낙인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가? 

<미스틱 리버>는 낙인이 찍힌 피해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간접적인 피해를 받은 이들이 가해자가 되는 서늘하고도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가해자는 일찍이 세상에 없기에 남은 피해자들만 풀 수 없는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와중에 직접적인 피해자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곤 강에 쓸려보내듯 마치 없었던 일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행동 안에는 "너 때문에 우리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어디에도 직접적인 피해자를 생각하고 위해주지 않는다.  

인간 본성의 추악한 면모와 왜곡된 비밀

영화는 어릴 때 직간접적인 피해를 당한 세 친구의 심리적 부딪힘을 '안'으로, 케이티 살인 사건을 '밖'으로 설정하는 이중창 형식을 띤다. 뿐만 아니라 안팎을 이어주는 여러 줄기로 영화를 꽉 채운다. 세 친구들 각각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관된 다양한 인물들이 따로 각개전진을 하면서도 같이 엮어들어가는 모양새가 탁월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영화는 시작 30여 분만에 세 친구의 어릴 때와 현재 모습과 케이티 살인 사건까지 빠르게 진행되다가 이후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가곤 다시금 달리기 시작한다. 사건의 전말에 다가갈수록 지미의 이면과 옛 일들이 밝혀지는 한편 아무도 관심 없고 모를 데이브의 또 다른 사건과 그때 그 일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러곤 거짓말처럼 지미와 숀뿐만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데이브를 향해 마수를 뻗는다. 말하진 않아도, 그러는 편이 손쉽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지미와 숀의 행각은 추악하지만 이해하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 역시 간접적 피해자이고 25년 동안 상처를 안은 채, 그 때문에 순탄치는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브의 아내와 숀의 파트너와 지미의 건달패들은 왜 그러는가. 그들은 왜 데이브를 보호하고 위해주지 못할망정 가만 두지 않는가. 

이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인간 본성의 또 다른 추악한 면모이겠다.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고 생각되는 무엇을 눈앞에서 치워버림으로써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끔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걸 알고 무엇인지 또는 누구인지 안다. 기억이란 게 참으로 간사해서, 그러곤 시간이 흐르면 아무 일 없는 듯 사라지는 것이다. 

보스턴엔 실제로 '미스틱 리버'가 존재한다. 미스틱강과 찰스강이 보스턴만으로 흘러들어 이루는 하구 지역에 보스턴이 발달한 것이다. 미스틱은 보스턴 외곽이라 할 만한 북부 지역에 있기에 여러 면에서 취약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원작에서 중심을 이루는 사회문제의 주요 무대가 미스틱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영화에선 미스틱강이 또 다른 의미로 쓰인다. 신비롭고 비밀스러움을 뜻하는 'mistic', 그곳엔 얼마나 많은 '데이브'가 비밀을 간직한 채 잠겨 흘러가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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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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