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회심의 프리킥19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랑싯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한국과 요르단의 8강전. 김진규가 프리킥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망의 도쿄올림픽까지 이제 1승 남았다. 자칫 공든 탑이 무너질 뻔한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승리의 여신은 김학범호에게 미소를 보였다. 한국 남자축구가 요르단의 모래바람을 넘어 9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란 대업에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23세 이하(U-23) 대표팀은 19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태국 방콕의 탐마삿 경기장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8강전에서 조규성과 이동경의 연속 골에 힘입어 2-1로 승리했다.
이겼지만 반성도 필요했던 경기였다. 김학범 감독은 시작 전부터 요르단의 전력을 경계하며 쉽지 않은 경기를 예상했다. 23세이하 대표팀간 역대 전적에서 요르단에 3승 3무로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 지지 않았지만 2014년 초대 대회 3, 4위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석패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더구나 한 번만 지면 그대로 끝인 8강 '데스매치'는 대회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김학범호에게도 분명 부담스러운 경기일 수밖에 없었다.
전반 15분 비교적 이른 시간에 조규성의 선제골이 터졌을 때만 하더라도 손쉽게 8강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후 추가골 찬스를 놓치면서 오히려 요르단의 거센 파상공세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후반 30분 동점골까지 내주면서 경기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연장전의 분위기가 짙어가던 후반 종료 직전, 이번에도 김학범 감독의 교체 카드가 먹혔다. 후반 투입된 이동경이 페널티 아크 부근에서 상대 파울로 얻어낸 프리킥을 직접 키커로 나서서 수비벽과 골키퍼를 절묘하게 꿰뚫는 환상적인 결승골을 작렬시켰다. 만일 연장까지 갔다면 승부를 장담할수 없었고 이겨도 준결승을 앞두고 체력소모를 피할수 없었던 상황에서 이동경의 한 방은 그야말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천금같은 골이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 들어 4연승을 거두는 동안 공교롭게도 모든 경기가 '한골차 승부'였다. 조별리그 첫 경기 중국전(1-0)을 시작으로 이란과 우즈벡, 요르단까지 모두 2-1로 승리하며, 겉보기엔 순항한 것 같지만 한 번도 쉽게 이긴 경기는 없다. 중국전도 무승부의 기운이 짙어지다 추가시간 이동준의 골로 기사회생한 것을 포함하여 '극장골'만 벌써 두 번째다. 두 번 모두 교체 투입한 선수들이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김학범호가 매 경기 조마조마한 승부를 펼치면서도 승기를 놓치지 않았던 원동력은 일단 한 번도 선제골을 먼저 뺏기지 않으며 경기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 다양한 선수들을 고르게 가동한 덕분에 후반 막판까지 체력전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점, 그리고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공격루트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면 우세한 경기흐름을 잡고도 상대를 확실하게 제압하지 못하여 어려운 경기를 자초했다는 점은 오히려 지적받아야할 대목이다. 이란전에서는 전반 두 골차의 리드를 잡은 상황에서 후반 이른시간에 만회골을 허용하며 경기 막판까지 아슬아슬한 승부를 펼쳐야했다. 우즈벡전에서는 골키퍼 송범근의 아쉬운 위치 선정 실수로 동점을 허용했다. 요르단전에서도 볼점유율에서는 우위를 보였지만 역시 선제골 이후 후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장면이 또 반복됐다. 매번 실점 장면을 보면 수비에서 수적으로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데도 유리한 상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선수들이 성급하게 대처하거나 시야를 넓게 가져가지 못한 것도 아쉽다.
특히 요르단전에서는 다소 늦은 시간에 동점골을 내준 이후 이동경의 극장골이 터지기 전까지 경기 흐름이 눈에 띄게 밀리는 등 선수들이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장면은 김학범호에 중원에서부터 경기 흐름의 변화에 따라 템포의 완급을 적절히 조율해줄 수 있는 선수가 없기 때문에 연출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김학범 감독이 어려울 때마다 교체 선수를 투입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올림픽 본선행이 걸린 토너먼트에서 결국 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어려운 경기를 치르면서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는 경험을 쌓은 것은 남은 준결승과 결승에서 전화위복이 될수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4강에 진출한 한국은 3위까지 주어지는 2020 도쿄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있다. 한국을 비롯하여 호주, 우즈벡, 사우디 등 전통의 강호들이 예상대로 모두 4강에 올랐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김학범호가 대결해 본 경험이 있는 익숙한 상대들이다. 우리가 상대를 잘아는 만큼 상대도 우리를 잘 안다.
일단 김학범호는 22일 오후 10시15분 태국 방콕의 탐마삿 경기장에서 호주를 넘어야한다. 호주는 아시아-오세아니아를 대표하는 강호이지만 U-23 대표팀 간의 전적에서는 한국이 10승 2무 2패로 절대 우세다. 김학범호도 지난 1년 사이 이미 두 번(비공식 경기 1회포함)이나 격돌했지만 2무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대결과 비교했을 때 호주의 선수 구성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호주는 지난 18일 시리아와의 8강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준결승에 올라왔다. 한국보다 휴식일이 하루가 더 길지만 대신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치렀기 때문에 한국과 체력적인 면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짜릿한 극장 승부도 좋지만 이제는 안정적인 승리가 더 절실하다.
호주를 이기면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올림픽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요르단전에서 보여준 아쉬운 모습들은 떨쳐버리고 다시 한번 집중력을 끌어올려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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